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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야 Jan 20. 2023

택시 안 보물찾기

여름이었다. 비가 갑자기 많이 와서 길 가다가 택시를 급하게 잡아 탔다.

택시를 타고 조금 있다가 기사님이 갑자기 나한테 질문을 하셨다.

" 택시 안에서 봄을 본 적이 있어요? "

" 봄이요..? "

저 말을 듣고 기사님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뜻을 파악하느라 머리가 갑자기 복잡했다. 봄은 매년 보는 건데.. 왜 갑자기 봄을 본 적이 있냐 하지? 시적 의미가 있는 질문을 하시는 건가?


" 봄을 본 적이 있어요? "

" 봄이요..? " 기사님은 내가 무슨 말인지 몰라 대답을 안 하고 있으니 한번 더 질문하셨다.

" 보물! 택시 안에서 보물을 본 적이 있냐고요 "

" 보물이요??? "

아 보물~! 근데 무슨 갑자기 보물??

" 이 택시 안에 보물이 있는데, 그게 뭔지 알아맞히면 내가 보여줄게요. "

보물!! 갑자기 탄 택시에서 무슨 보물 찾기란 말인가. 일단 보물이란 단어를 너무나 오랜만에 들어서 어색한 느낌이 들었고 보물이란 말에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뭔지 알아맞히고 싶었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지가 않았다. 택시 안에서 보물이라니??!


" 힌트 주세요 힌트! "

" 에이 무슨 힌트야, 내가 이 택시 일을 20년 넘게 한 사람이에요, 이 일을 하면서 내가 보물을 쌓아 놨는데 그 보물을 보여준다 말이에요. 이거 콜 부른 사람한테는 물어보지도 않아. 손님이니까 내가 한번 물어보는 거지. 맞혀야 보여줘요~ 택시 기사가 보물이 돈이겠어, 보석이겠어 잘 생각해 봐요 "

뭐지 뭐지?? 뭘까

" 오래된 거예요?? " 기사님이 20년 넘게 일을 하셨다 하였으니 기사님이 말하는 보물은 오래된 가치가 있는 물건일 거 같았다.

" 에잇 오래된 거냐 물어보니까 한번 보여줘야겠네. "

기사님이 갑자기 다이어리 같아 보이는 것을 꺼냈다.

" 다이어리 아니에요? "

" 한번 열어서 봐요 "

연보라색 다이어리를 펼쳐보니 그 안에는 여러 글씨체로 이루어진 글씨들이 요리조리 빼곡하게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 택시를 탄 손님들의 방명록 같은 것이었다. 손님들은 대부분 기사님에 대한 감사 인사와 본인의 소망, 꿈들을 적어 놓았다. 본인의 건강, 대학과 취업 합격을 위한 이야기, 첫 출근인데 택시 탄 이야기 등의 글들이 쓰여 있었다. 아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구나..

" 이런 게 600권이나 돼요, 옛날에 어떤 손님이 기사님 다이어리 쓰라고 이런 걸 주고 갔어, 그 후에 손님들한테 택시 탈 때마다 조금씩만 적어달라고 했지. 요즘에는 안 해 근데."


이런 노트를 실제로 보니까 너무 신기했다. 예전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택시를 탄 손님들에게 노트에 글을 쓰도록 한 기사님의 말씀을 듣고 나도 저런 택시를 타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다른 기사님이지만 이런 글들을 실제로 보는 날이 오다니. 진짜 보물이었다. 거기에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꿈, 바람, 일상, 심지어 전화번호까지 적혀있었다. 전화번호까지 적혀있는 걸 보고 놀랐는데 기사님 말로는 자신하고 얘기를 하면서 손님들이 마음을 열었다고.. 그래서 전화번호까지 적었다고 한다. 자신이 꿈꾸는 대로 이뤄지는 택시라고 하셨다. 나는 노트에는 적지 못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으로 내 꿈을 간절히 빌어보았다.


기사님 말로는 요즘엔 글을 쓰게 하지도 않고 노트를 잘 보여주지도 말을 잘 걸지도 않는다는데.. 나한테 보물을 보여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기사님이 말하고 싶은 타이밍에 내가 탄 거 같기도 하지만!

기사님과 얘기하면서 좀 더 타고 갔으면 했는데 너무 금방 내려 아쉬웠지만 보물 찾기에 하루 종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택시 기사님 하면 또 생각나는 한 분이 계신다. 몇 달 전 야근하고 열한 시쯤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데 택시 기사님이 뒤에서 봤을 때도 나이가 많으신 여성분이셨다. 얼핏 60대 중 후반의 할머니로 보였는데 이상하게 자꾸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례지만 용기 내서 말을 건넸다.

" 기사님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

" 어머 저 나이 많아요~ 칠십 대 후반이에요 "

" 칠십 대 후반이요?  전혀 그렇게 안 보여요! 어려 보이세요 "

" 어머 감사합니다~ "

" 너무 건강해 보이세요, 이 일을 한지는 얼마나 되신 거예요? "

" 저는 50년이 넘었어요 "

그 말에 나는 너무 놀랐다. 한 가지 일을 50년 넘게 하다니.. 나는 그 당시 내가 하던 일을 그만두려고 생각하던 차라 한 문장이었지만 기사님의 대답에 너무나 존경스러웠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힘든 일을 겪으셨을 거며 어려운 일들이 있으셨을까. 기사님은 아직도 이 일이 너무 좋고 운전하는 게 즐거우며 재밌다고 하셨다. 진심을 담아 항상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를 남기고 내렸다.

돌이켜보면 그 택시 안에서는 기사님 자체가 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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