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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맘 Apr 12. 2021

[육아] 계속 ‘아기’이고 싶은 너

아기와 아이를 대하는 나의 자세

아이는 이따금씩 서운한 듯 내게 말한다. 아가였던 때가 좋았다고도 하고, 더 어린 동생을 만나고 와서는 그 애를 대하던 내 모습을 보고 질투하기도 한다. 그러다 가끔은 왜 나를 전처럼 대해주지 않으냐며 직접 불만을 표해내기도 한다.


나는 너를 변함없이, 아니 어쩌면 매일 더 커지는 마음으로 사랑하는데. 어쩐지 순순히 인정할 수가 없다.

“엄마는 매일 윤슬이가 더 예쁜데? 전에는 우리 이만큼 같이 이야기도 못했잖아, 엄마도 윤슬이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몰랐고. 지금은 같이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은걸.” 설득도 해보았다가, “너도 전에는 엄마 말 이렇게 안 듣지 않았거든..”과 같은 유치한 말로 대응해보기도 한다. “윤슬이가 좋은 사람이 되려면 엄마가 알려줘야 하는 것들이 있어서, 아가 때처럼 마냥 다 봐주기만 할 수는 없는 거야 이해해줘.” 라고 덧붙이기도 한다.


근데 문득 너의 한살, 두살 때 모습을 담아둔 영상을 보다보니 네가 억울한 만도 하다. 미처 몰랐던, 그 안에 함께 담겨있는 내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꼭 내 아이여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아기’를 대하는 특유의 톤과 말투라는 게 있는 듯 싶다. 길 가다 우연히 처음 보게 된 ‘아기’에게도 무심코 “아유 예쁘기도 해라. 몇 개월이에요?”를 묻게되는 바로 그 말투와 마음. 그저 무해한 존재, 어떤 행동을 할지언정 그 안에 어떠한 악한 의도도 담기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고 믿어지는, 성선설에 기반해 아이를 바라보며 대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하이톤의, 무한정 수용의 목소리랄까.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고 자아가 생겨가는, 더이상 마냥 아기가 아닌 것 같은 ‘아이’에게는 아무래도 자연스레 그 자세가 취해지질 않는다. 언젠가는 모든 걸 이해받고, 밥만 잘 먹어도, 잠만 잘 자도, 응아만 잘 해도 칭찬받기 일쑤였던 너는 바뀐 세상과 엄마가 분명 억울하겠지 싶다.


네가 원하는 그런 태도로 널 대한다면, 그래서 네가 좀 더 사랑받는 기분이 들고 네 마음이 행복해진다면, 그런 변화의 가장 큰 수혜자는 너 뿐만 아니라 바로 엄마인 나라는 것을 잘 알고있다.


오늘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너를 만나면 그냥 마냥 내 품 속의 아가였던 그 때처럼 안아주고 맞아줘야겠다 생각한다. 네가 “엄마, 나 이제 아가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지 말아줄래”라고 말할 날도 생각해보면 멀지 않은 것 같아서 조금 아쉽기까지 하다. 이미 제 식사를 무심코 ‘맘마’라고 말한 내게 ‘맘마 아니야, 밥’이라고 알려주며 여러차례 혼을 낸 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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