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카페에는 '출입문'이 없다.

치앙마이 농호이, 경계가 사라진 곳에서 마주한 다정함.

by 나들레



화려한 님만해민의 소음도,

올드시티의 북적이는 관광객도 없는 곳.


치앙마이 한 달 살기의 마지막 챕터를 보내기 위해 내가 선택한 곳은 핑강 근처의 조용한 동네, '농호이(Nong hoi)'였다. 여행자의 캐리어 바퀴 소리보다 현지인의 느긋한 숨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이곳에, 나도 모르게 단골이 되어버린 로컬 카페가 하나 있었다.





이 카페를 발견한 건 순전히 우연이자 필연이었다. 땡볕이 내리쬐는 한낮, 숙소 밖으로 나가려면 호출 앱으로 차량을 부르거나 한참을 걸어야 했는데, 매일 아침 생명수 같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간절했던 나에게는 바로 코앞에 있는 이 카페가 유일한 피난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카페, 구조가 기묘했다. 상점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출입문'이 아예 없었다. 좌우와 뒤쪽만 벽으로 막혀 있고, 사람들이 드나드는 정면은 뻥 뚫린 개방형 그 자체였다. 마치 제주의 옛 초가집 대문이 그러하듯, 혹은 시골 마을 어귀의 정자처럼. 카페는 지나가는 바람도, 동네 강아지도, 그곳에 사는 동네 사람들도 그리고 이방인인 나도 아무런 경계 없이 묵묵히 품어주었다.


꽉 막힌 유리창 하나 없이 동네의 소리와 냄새를 그대로 품은,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투박함이 좋았다. 인공적인 에어컨 바람 대신 느릿하게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이 윙윙거리는 그곳. 멍하니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여행을 온 건지 이곳에 원래 살던 사람인지 헷갈릴 만큼 평온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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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방문했던 날은 앞서 이야기한 '방문 잠긴 소동'으로 정신이 없었고, 일본인 룸메이트와 함께였기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커피 두 잔만 비우고 일어섰다. 하지만 혼자 노트북을 들고 찾았던 두 번째 날, 그 '문 없는 카페'의 진짜 매력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Where are you from?"


쭈뼛거리며 입구 구석에 자리를 잡은 나에게 직원분이 대뜸 말을 걸어왔다. 한국인이라는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들의 눈이 반짝였다.


"오! 코리아!"


그녀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쏟아냈다. 치앙마이는 처음인지, 오늘은 어디를 가는지, 한국으로 언제 돌아가는지... 낯선 이방인을 향한 그들의 소소하고 따뜻한 관심 덕분에 어색했던 공기가 금세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이어진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K-드라마'로 흘러갔다.


"나 OOO 드라마 좋아해. 그 OOO 배우 알아요?"


치앙마이 변두리 작은 카페에서 'K-드라마' 토론회가 열릴 줄이야. 그녀들의 유창한 영어 실력과 나의 서툰 영어와 손짓발짓, 그리고 배우와 드라마 이름만으로도 금세 한마음이 되었다. 국적도, 나이도 달랐지만 '잘생긴 남자 배우' 앞에서는 만국 공통이었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한국의 유명 남배우를 언급하자, 한 직원이 정색하며 소리쳤다.





"No, no!! He is MY husband!"


"내 남편"이라며 소유권을 주장하는 그녀의 진지한 표정과 이에 질세라 맞서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만 배꼽을 잡고 말았다. 한국에서도 안 해본 '남편 쟁탈전'을 태국 치앙마이에서 하게 될 줄이야.


우리는 서로의 '가상의 남편'을 지키기 위해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그곳에 있던 모두가 한바탕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유쾌한 웃음 끝에, 낯선 이방인을 향한 미묘한 경계심도, 낯선 곳이라 나도 모르게 세웠던 마음의 벽도 따사로운 볕을 받은 아이스크림처럼 스르르 녹아내렸다.


그날 이후, 나는 그곳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내가 숙소 근처나 카페 근처에 나타나기만 해도 그녀들은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환하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자매와 엄마가 함께 꾸려가는 '가족 운영 카페'였다.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니 단지 나라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조건 없이 건네는 그 다정함. 그 마음이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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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후에는 카페 사장님의 아들이라는 꼬마를 만났다. 카페 이름도 아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그 당시 여섯 살 된 아이였다. 녀석은 패드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나는 슬그머니 그 아이에게 계속해서 눈짓을 보냈다. 그 결과, 아이가 하던 패드를 챙겨 들고 내 옆자리로 와 앉았다. 이 상황을 보셨는지 눈치 빠른 사장님(아이의 엄마)은 아이에게 영어 공부도 할 겸, 그림도 그리라며 유리 공병과 스티커, 색색의 마커펜을 잔뜩 내주셨다.


각자 공병을 꾸미기에 집중하며 띄엄띄엄 영어로 대화를 나누던 중, 아이가 먼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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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붙여볼래?"


사교성 좋은 녀석은 낯선 외국인 이모를 전혀 어려워하지 않았다. 내 공병에 고사리 같은 오동통한 손으로 스티커를 꾹꾹 눌러 붙여주고, 신중하게 고른 알록달록한 마커펜으로 그림까지 그려주었다. 태국어가 모국어일 텐데, 영어 유치원을 다닌다는 아이는 나보다 영어가 유창했다. 우리는 말이 통하는 듯 안 통하는 듯했지만, 색깔과 따뜻한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며 한참 동안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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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지 않기를 바랐던 시간은 야속하게도 흘러, 어느덧 한국으로 떠나야 할 날이 밝았다. 마지막 인사를 전하러 점심쯤 들렀는데, 카페에는 아쉽게도 늘 수다를 떨던 직원들과 사장님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음료를 마시며 홀로 남은 직원분과 아쉬운 시간을 보내고, 작별 인사와 함께 처음이자 마지막 기념사진을 남겼다. 텅 빈 문 너머로 보이는 익숙한 풍경을 눈에 담으며, 나는 발길을 돌렸다.





한국의 견고한 콘크리트 숲으로 돌아온 지금, 문득 그 뻥 뚫린 카페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단순히 그곳의 커피 맛이나, 평화로운 풍경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곳에 문이 없었던 건, 바람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막힘없이 드나들라는 무언의 신호가 아니었을까. 마음의 벽을 높게 세우고 문을 걸어 잠그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그곳은 "그냥 언제든 들어와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던 유일한 공간이었으니까.


당신의 마음에는 타인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문 없는 공간이 한 뼘이라도 마련되어 있는지.



오늘따라 유난히 그 카페의 느릿한
선풍기 바람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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