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캐
게임에서는 잡캐라는 말도 있다. 앞편에서 말한 만능캐와 비슷하지만 정반대의 잡종 캐릭터라는 의미로 뭐 하나 빼어난 것 없는 모든 능력치가 어설픈 캐릭터를 지칭한다.
잡캐와 만능캐는 모든 능력치를 고루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모든 능력치가 뛰어난지, 어설픈지에 따라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잡캐는 어디에도 쓰기 애매한 캐릭터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중간한 기자는 어느 분야에도 전문성이 없는 어중이떠중이, 말 그대로 잡캐가 된다.
반면 잡캐형 기자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업계 지식도 없고, 구조적으로 갑의 자리에 위치해 있다 보니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떨어진다. 기사를 받아서만 쓰다 보니 자기 생각을 글로 정리할 줄도 모르고, 비판과 억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런 와중에 자기 객관화는 전혀 되지 않고, 자기는 잘난 줄 알면서 기자뽕에 가득 차 있는 건 덤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겠다마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건 여러모로 주위사람을 힘들게 한다. 그리고 고연차 기자 중 자질 미달의 잡캐는 널리고 널렸다.
기자로 남은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기자직이라는 직종을 정말 좋아해서 남아있거나, 불러주는 곳이 없어 탈출하지 못한 잡캐거나.
우선 전자의 경우도 꽤나 있다. 어쨌거나 갑의 위치에 있을 수 있고, 업무 자체가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다. 언론계의 문화 자체는 수직적이지만 취재를 다닌다면 상사를 만날 일이 많지 않다. 또 공적 가치를 지킨다는 보람과 함께 여러 유명인과 전문가들을 만나기 비교적 쉽고, 일 자체는 재미있게 하는 경우가 많다. 기자는 돈이 많아 일을 취미처럼 할 수 있다면 최고의 직종 중 하나다.
또한 사양산업 특성상 업무에 익숙해지고 크게 성공하고 싶은 욕심도 없다면 직장에 남아있는 것도 비교적 쉽다. 지원자는 점점 줄어들고 좋은 인력은 빠져나가니 대체자를 구하지 못해 일을 못해도 자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다녔던 언론사는 2명 채용을 목표로 1년 내내 채용공고를 올려놨지만, 2년 넘게 1명을 제대로 채용하지 못했다. 취업을 했다가도 쥐꼬리만 한 연봉과 장례가 없어 보이는 회사 상황에 며칠후면 퇴사해 버렸기 때문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빠져나가니 평균 능력치가 내려가 과거 못하던 사람이 잘하는 사람이 되는 마법도 발생한다. 사양산업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후자의 경우 잡캐의 말로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만큼 어떤 기업에서도 불러주지 않는 것이다. 기자라는 직업이 포토샵이나 엑셀 같은 오피스 툴을 능숙하게 다뤄야 하는 직업도 아닌 만큼, 스스로 발전욕심이 없다면 일반 사무직 경력 직원보다 기업 입장에서는 특별히 나은 점이 없다. 이런 상태로 나이와 경력이 차다 보니 갈 곳이 없어 그냥 기자로 남아있는 거다.
그리고 어떻게든 언론업계에 남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광고영업을 해야 한다. 이때부터 기레기의 운명은 피해 갈 수 없다.
지금은 방송매체가 아닌 언론사에 광고를 아무리 줘봐야, 제대로 된 광고효과가 나오기 어렵다. 그렇기에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잘 부탁한다, 일종의 보험과 같은 개념으로 의미로 광고비를 준다. 물론 기업에서도 언론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언론이 사회에서 필요한 공적 역할을 하는 존재라는 점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이 역할을 위해 지금처럼 언론사가 많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공적 가치 구현의 역할을 하는, 정말 언론사 다운 언론사는 극소수고 대부분 메이저 매체에서나 가능하다. 대다수의 작은 인터넷매체는 인력을 갈아 넣어 오너의 배만 불려주는 구조로, 누군가의 돈벌이 수단으로 존재한다.
또한 2023년 기준 네이버에 기사가 노출되는 언론사가 1000개가량 되고, 이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반면 기업이 가진 돈은 제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사 숫자는 늘어나니 집행되는 개별 언론사로 보자면 광고비가 줄지만 않아도 다행인 것이다.
하지만 회사라면 모름지기 성장해야 한다. 그렇기에 중소 언론사는 언론의 권리를 휘두르며 '협박성 광고영업'을 한다.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회사 오너의 이름을 기사 제목에 넣고, 정말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거다. 이런 경우 기업은 기사를 내리는 대가로 광고를 집행해 준다. 먹고 떨어지라는 의미다. 내가 전에 근무하던 매체의 사장은 이를 보고 '밀당'이라고 표현했었지만, 그 언론사는 외부에서 '삥 뜯는 곳'이란 인식이 박혀있었다.
KBS나 SBS, MBC, JTBC 등 자생가능한 방송기반 언론사가 아닌 신문사, 특히 중소 인터넷 매체 기자생활의 끝은 기사를 돈으로 바꾸는 '기레기'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물론 중소매체에서 수차례 이직을 통해 메이저 언론사로 넘어가는 경우도 요즘에는 상당히 잦지만, 이직에 성공하더라도 공채 출신들을 밀어내고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긴 하늘의 별따기다.
단, 처음부터 기렉시트를 목적으로 2~3년 정도 경력을 쌓고 이직을 할 계획이라면 언론사 입사는 비교적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입사가 쉽고, 회사생활을 잘 버티며 커리어를 쌓는다면 꽤나 그럴싸한 경력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스트레스 관리 능력이 매우 뛰어나고, 강철 멘탈을 가지고 있으며, 똥밭에 굴러도 웃을 수 있는데 커리어 시작이 어렵다면 기자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도 고려해 볼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