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em Aug 15. 2023

[나는 기레기다] 나는 (가끔) 기자다(상)

법적 대응을 검토 중입니다

“법적 대응을 검토 중입니다.”    


기자생활을 하다 일 년에 한 번쯤 듣는 말이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이 말을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공교롭게도 단독 기사를 쓸 때마다 들은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을 듣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기자임을 느낀다. 밥은 펜보다 강하다는 현 언론계의 슬픈 현실에도 내가 옳다고 믿는 최소한의 신념은 지키고 있음을. 아직까지는 이 사회에서 미디어로서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고 있음을. 그렇기에 가끔은 스스로를 기자라고 말할 수 있음을.     


갈 때 가더라도, 법정 한 번 정돈 괜찮잖아?  

   

처음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말을 들은 건 모 대기업의 내부 이슈를 단독 보도했을 때였다. 기자생활을 한 지 3개월쯤 지났을 무렵의 첫 단독이기도 했다. 당시 해당 기업의 인사팀이 직장 내 한 직원을 조직적으로 헐뜯는다는 제보를 받았고, 이를 기사로 작성했다.     


팩트확인을 위해 해당 이슈에 대해 처음 문의를 했을 때 기업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당시 나와 통화한 홍보팀 직원은 내 질문을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대다수의 홍보팀 직원들이 기자에게 친절하지만, 정말 간혹 까칠한 직원들이 있다. 그 직원도 그랬다. 아마 내가 당시 다니던 매체가 신생 인터넷신문사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내 질의에 답변은 오지 않았고, 기사를 송고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격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다른 직원이 답변을 한 직원이 휴가 중이라 제대로 답을 주지 못했다며, 내가 문의한 질의에 답변을 기사에 반영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그다음에는 기사 내용의 부분 수정 요청이 수차례 들어왔다.

     

기사 작성 전에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다가 기사가 송고되고 나서 수정요청을 하는 건 언론사 입장에선 황당한 일이다. 기자가 일부러 사측 입장을 넣지 않은 게 아닌 이상, 취재 때 충실히 답변했다면 발생하지 않을 일 아니겠는가? 또한 과거처럼 지면신문이었다고 생각해 본다면, 인쇄되고 나면 끝이다. 수정요청 자체가 불가능하다. 인터넷 신문사이기에 수정 요청이 가능한 것이고, 이런 요청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기사를 내려달라는 요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내가 처음 연락했던 직원이 “해당 이슈가 공론화되며 직원들이 힘들어한다. 사측 입장에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이때 처음 ‘기자생활은 이런 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과 짜릿함이 몰려왔다. 또한 법적 공방 과정이 더 궁금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오히려 국장이 이 말에 더 속앓이를 했다고.

     

결과적으로 법적 공방은 일어나지 않았고, 기사는 내려갔다. 해당 기업의 임원이 직접 찾아와 사내 상황에 대해 설명해 줬는데, 들어보니 내가 기사를 작성하며 의도했던 것과는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었다. 나는 해당 이슈를 공론화해 괴롭힘 당한다는 직원에 힘이 실리길 바랐지만, 오히려 더 괴로워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그렇게 내 첫 단독기사는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번째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말을 들은 건 어느 그룹 회장 관련 기사를 작성했을 때였다. 해당그룹의 회장은 소위 ‘꼰대’로 유명했고, 그 꼰대 기질로 추진하는 사내 이벤트가 젊은 직원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는 처음부터 사측입장을 충실히 반영해 기사를 작성했다. 당시 해당 기업에서는 직접적 말은 안 했지만, 여러 차례 통화를 하며 기사를 내려주길 바라는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리고 며칠 후 해당 그룹에 또 다른 이슈가 있어서 팩트확인 차 전화를 했더니 통화말미에 “쓰시려면 쓰셔라. 저희도 기사 관련해 법무팀 차원에서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나는 해당 기업에 “제 행동에 잘못이 있으면 책임지는 거 아니겠는가. 나는 내가 기자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얼마든지 (소송을) 걸려면 걸어라”라고 답했다.


이때는 내심 법적 공방이 불거지길 기대했다. 기사에 대한 자신이 있었고, 법적공방으로 이어지면 다른 언론사에 제보를 해 판을 키울 생각이었다. 이런 일로 법정에 서는 건 기자로써 나름 명예로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회삿돈으로 소송절차를 밟아보겠는가? 여러모로 많은 공부도 되고 인생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이벤트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법적 공방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 기사는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기레기다] 당신네 공장은 안녕하신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