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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maseve Feb 13. 2024

그.삶.안 II

프랑수와즈 질로: 피카소는 천재일까 난봉꾼일까

누구에게나 '로망' 이라는 것이 있다. 같은 단어를 조금씩 다르게 사용하는 몇 개의 나라들이 떠오르지만,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에게는 대부분 '동경'과 결을 같이 해왔다. 

어릴 적부터 여러가지 꿈을 꾸어 가며 결국에는 이러저러하게 그 꿈들을 이뤄온 삶을 살아왔고 또 현재진행형이라고도 믿고 있지만, 꿈이 꿈으로 남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의 로망 중의 하나는 바로 '예술가의 뮤즈'이다. 특히, 깊이 감명 받는 예술작품 앞에 서 있을 때와 해당 작가가 마음 깊이 품었던 누군가로부터의 영향을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했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때에는 '얼마나 멋있는 사람 이길래', 혹은 '얼만큼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면 이 만큼의 작품이 탄생하도록 기운을 북돋아주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다다르고 나도 모르게 두손 가지런히 동경해 마지않게 되는 것이다.


프랑수와즈 질로 님의 타계 소식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질로, 그 이름만으로도 훌륭한 화가 였음을 아주 늦게 알아가고 있는 와중에도, 그녀의 이름 앞에 항상 붙어있는 수식어 '피카소를 정복한 유일한 여자'가 끈덕지게 따라온다. 

예술가의 사생활에 관하여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나 스스로는 철저히 작품과 구별해왔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피카소는 온전히 천재이자, '한국에서의 학살'을 그린 은인 그리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추상화를 개척한 엄청난 화가일 뿐이다. 한때는 그의 큐비즘에 정말 한껏 미쳐있었다. 그의 영향을 받아 작품활동을 했던 한국 화가들 중에서도 '박래현'님의 '노점 (195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과 같은 그림은 아직도 내게 '세상에 어떻게..'하는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선사한다.

그런데 질로의 타계 소식에 피카소의 난잡했던 여성편력 역사가 다시금 오르내리는 것을 또한 목격 중이다. 질로의 작품들을 찾아볼라치면, 어김없이 피카소의 다른 여성들까지 강제소환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쯤되면 인터넷에서는 과연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해 이런 정보를 제공하는가 가히 의심스러워진다. 예술가의 사생활은 시대를 불문하고 참으로 필요 이상 시끄럽게 떠다닌다.


그렇지만 나 역시도 질로를 떠올릴 때, 한때 '피카소의 뮤즈'로서 피카소가 엄청난 양의 작업에 몰두하게 한 그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가 가장 궁금하긴하다. 이후 그것은 분명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현하는데 온전히 쓰이지 않았겠는가. 그녀는 100세가 넘도록 장수하는 동안 단 10년을 피카소와 함께 했다고 알려졌는데, 이후 더 오래 함께 지냈던 (이 분 또한 유명인) 남편보다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사람으로 각인된 듯하다. 그녀의 작품들을 스윽 훑어 보는데, 피카소의 그림들과 닮은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뉴욕의 MoMA, 워싱턴 DC의 National Museum of Women에서 질로의 작품을 마주한다면, 나는 대부분 피카소? 하며 다가갔을것이다. 혹은 어, 피카소가 또 있네? 하며 지나갔을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로가 피카소와의 10년을 청산하고 본인만의 길을 개척하려고 애썼던 것에는 비할바가 못되지만, 그녀의 인생 그리고 작품은 피카소와 별개로 두는 작업을 나 또한 시도해보려고 한다. 

'나는 사랑의 노예이지, 당신의 노예가 아니에요'

아- 이 투철한 독립정신으로 무장한 왕언니의 철저한 자기객관화에 힘입어 오롯히 질로만의 작품에 한껏 빠져보련다. 그리고 그 애티튜드에도! 피카소가 희대의 난봉꾼이었던 천재였던 알게뭐람. 잠시나마 이렇게 멋진 여성의 온세상이었던 한 남자였을 뿐인걸. 그리고 질로의 회고록 'Life with Picasso'의 출판을 막지 못해 종종거렸던 옹졸했던 한 인간이기도..

(피카소 편은 진짜 잘 써야겠다. 존경합니다, 피카소.)

The Kiss 1948, Françoise Gi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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