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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maseve Feb 24. 2024

그.삶.안 VII

빈센트 반 고흐: 공교롭게도, 노랑.

'노랑의 미로'를 마쳤다. 미국에서는 월요일 공휴일이 이어져 긴 주말이 된 아침에, 월간 독서모임을 한 주 앞서 일독을 끝낸 참이다. 


노란색이 이토록 무겁게 마음을 억누르는 것은 고흐의 '해바라기' 이후로 처음이었다. 꽤 오랫동안 고흐의 예의 그 '크롬 옐로'가 나에게는 무척 어둡고 우울했다. 영국 생활의 두번 째 해, 런던에서의 두번 째 룸메이트와 반씩 나누어 쓰던 화장대 반대쪽 끝, 한국인 룸메이트가 어지러운 우리의 화장대 위에 항상 올려두었던 그 엽서 속의 그림. 항상 명랑하던 그녀의 성격과 정반대의 느낌만 나에게 물씬 풍기던 고흐의 '해바라기'를 나는 한동안 너무 '우울해서' 바라보기 어려웠었다. 몇달 뒤, 사보이호텔 연회부에서 일을 시작하며 주구장창 드나들던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이 '해바라기' 원화와 지척에 걸려있던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밀밭'의 밝은 노랑을 발견하고 나서야 '고흐'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 노란색을 쓸 수 있는 화가가 '해바라기'에서는 왜 어두운 노랑을 선택했을까. (고흐의 선택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나중에 알려진다.)


그때까지 알려진 고흐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부정하는 것으로 고흐를 향한 나의 애정을 발현했다. 그는 친구와 싸우고 화를 참지 못해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른 미치광이가 아닐 것이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정신병자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한없이 깨끗하게만 보이는(실상은 탁하기 그지없다.) 흰색의 물감을 마구 섞어내 이토록 맑은 빛의 노랑이 캔버스 위에서 실재하게한 화가의 인생이 그랬을리 없다, 하는 부정이 몇 년을 이어졌다. 얼마 뒤, 그가 자주 드나들었다는 술집의 여주인이 어느 창고엔가 쳐박아 두었던 장부가 세상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고흐에 관한 역사가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고흐를 '다시' 살린 이 미술사학자들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문명의 역사를 통틀어 '약자'에게 '집'이란 공간은 단 한번도 '오롯이' 그들 자신을 위해 존재했던 적은 없었다. 그 지난한 역사에 비해 보잘것 없는 나 개인의 역사에서도 '나만의 공간'은 내 경제 수준의 '척도'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학교 진학을 위해 향했던 대도시 '서울'에서의 첫 공간은 한평 반짜리 고시원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열악함을 목격한 엄마는 빚을 내어 빛이 들어오지 않는 서울 변두리의 문간방에 나를 들이고서야 겨우 발걸음 뗐었다. 정확히 10년 뒤 다시 돌아간 서울에서의 내 공간은 결국 다시 고시원이 되었다. 그 동안 나는 서울에서의 4년 동안 삼수까지 실패했고, 영국에서의 4년은 아르바이트로 전전했으며, 제주도에서의 3년은 전문대학으로 다시 진학해 온갖 알바와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을 모두 끌어냈으나, 변변찮은 방 한칸을 마련하는 것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와중에 그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내 생활의 불편함으로 보장 받은 가족의 '안정' 이었다. 


'노랑의 미로'를 읽으며 고흐가 프랑스 남부 아를로 이사해 얻은 그 만의 첫 공간을 그린 '아를의 방'이 아른거렸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파리 생활을 일단락하고, 새 인생을 기대하며 도착한 그곳에서 그는 낡고 헤지고 유일했을 그의 신발부터 그렸을 것이다. 그 신발 그림에 묻은 그의 고단함과 새출발을 향한 그의 의지는 비단 나에게만 전해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도 일말의 '안정'이 찾아오기 시작했을 것이다. 새로운 시작에의 기대는 또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무의식 속 불안감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이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아를의 방', 이 한장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책 '노랑의 미로'에서 이문영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제도'에 관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다. '가난의 경로'를 치밀하게 쫓아갔던 작가가 기록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개인의 역사를 완전히 개인의 것으로만 두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의 마무리를 고민하던 나의 시선에 고층 아파트 창 너머로 미국의 스쿨버스 한 대가 지나간다. '노랑'은 연대와 결속의 컬러로 모두를 위해 다시 쓰였으면 좋겠다. 고흐가 '아를의 방'을 그리며 온갖 컬러들과 노랑을 고심하며 골라 붓질해내던 그때의 에너지로 말이다.


*'노랑의 미로'에서 '노랑'은 쪽방촌 거주자들의 주거공간에 붙여진 철거 최종 통지서의 컬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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