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회 셀프청탁 에세이
"유산처럼 보여요. 피검사 해보고 가시죠."
의사의 말에 S는 드라마 마지막 회의 닫힌 결말을 본 시청자처럼 시원섭섭해했다.
"네. 어쩐지.. 순조롭다 했어요~"
Y는 집에 돌아와 침대에 풀썩 누워버린 S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귀 안 아파? 귀걸이 빼줄게~"
그녀의 귀는 왜 이렇게 작고, 귓불에 박힌 귀걸이는 또 왜 이리 작은지.
Y는 솥뚜껑만 한 두 손을 조심스레 놀리며 겨우 빼냈다.
말도 없이 모로 누워 베개에 얼굴을 박고 있는 S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벌써부터 좌절모드인 걸까.
내일 피검사 결과가 나온다고 했으니, 그전까지는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의 인생 무기는 낙천적인 태도였다.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마음보다는 뭐든 잘될 거라는 기대를 갖는 게 더 쉬웠고, 그 덕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 같은 것에 별로 침범당한 적도 없었다. 삶이 힘들어도 세상에 웃을 수 있는 일은 많았다.
"당신 임신 부담 갖지 않았으면 해.
난 아기 없어도 당신이랑 평생 살 수 있어."
Y가 보기에 S는 자신의 삶을 잘 개척하고 가꾸어 온 용기 있는 여자였다.
평판이 좋은 대학을 나왔고 대우가 좋은 직업을 갖고 있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이루어낸 것이 참 멋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과정 중에 겪었을 긴장과 강박, 고독감과 슬픔 같은 것이 그녀를 얼마나 힘들게 했을지 눈에 선해, 안쓰러운 마음도 함께 들었다.
Y에겐 그런 연민의 마음도 사랑의 일부였다.
결혼 후 S는 안정을 찾은 듯했지만, 그녀의 습성은 바뀌지 않아 보였다.
가령, 운동을 할 때도 그녀의 본성은 나왔다.
힘들면 다음에 해도 되는데, 쥐어짜 내고 스스로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S의 근성이 보일 때마다 Y는 걱정이 됐고 마음이 짠했다.
신중하고 여유로운 자신과 달리, S는 행동이 빨랐고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행동이 머리보다 앞서는 게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진 않았다.
부엌에서 칼질하다 다치기 일쑤였고 다리에는 어딘가에 부딪혀 멍든 흔적이 있었다.
임신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좀 대하면 될 텐데, S는 결혼한 지 1년이 지나자 다급함을 숨기지 못해 보였다.
내가 남자라서 그런가.
임신은 여자가 하는 것이긴 하지만,
나는 뭐든 자연스러운 게 좋은데.
아내의 결정에 따라 시술을 시도하긴 했으나, Y가 생각하기에 좀 더 자연스럽게 시간을 가지면 임신이 될 것 같았다. 더군다나, Y는 아이가 없어도 S와 잘 살 자신도 있었다.
아이 없이 사는 게 어때서.
아이 낳으려고 결혼한 것도 아닌데. 단지 이 여자가 좋아서, 이뻐서 결혼한 것인데 뭐.
"비협조적인 남편들도 많다는데, 자기가 그렇지 않아서 난 너무 좋아. 고마워."
그간 산부인과에 대동할 때마다 S는 그런 말을 했었다.
Y에겐 당연한 처사였다.
왜냐하면, 자신이 정말로 지켜야 하는 것은
남편으로서 혹은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아니라
아내의 편안한 마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피검사 결과 44네요. 비임신 상태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S는 일단 안도했다.
가장 많이 든 감정은 감사함이었다.
왜냐면, 초음파 화면을 보고 어제 의사가 말하길 포상기태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밤새 찾아본 포상기태의 내용은 S를 우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포상기태는 자연임신 때 나타나는 유산 형태 중 하나인데, 다음 임신까지 최소 6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운이 나쁘면 암까지로 진행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병이었다.
하지만, S처럼 hcg호르몬이 자동으로 저렇게 자동으로 감소하였다는 것은 포상기태일 가능성이 0%이기 때문이다.
S에게 서러움이나 슬픔은 없었다.
오히려 배아의 심장소리를 듣기 전에 자연유산 되어버린 이 상황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파술을 앞두고 Y는 얼마나 아픈지, 밥은 뭘 먹여야 하는지, 몸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단히 찾아보았다.
자기야.
난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해.
자기도 나도,
임신이 되기도, 임신을 유지하기도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됐으니까.
다음날 아침, 부부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병원을 향했다. 수술장 앞에서 Y는 S를 어느 때보다 꽉 안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