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회 셀프 청탁 에세이
S는 배아 이식 후 세 번에 걸쳐 피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아주 좋았다. 임신.
배아가 자궁 안에 제대로 착상이 이루어지면, HCG 호르몬이 나오는데, 그 수치가 모두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기 때문이다.
미열, 자궁의 뻐근함 등 온몸으로 착상통을 느끼며, 비로소 임산부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남들에게 아직 알리긴 조심스럽지만, 스스로 임신을 확신하고 안도했다.
S가 갑자기 초조해지기 시작한 건 화장실에서 처음 피를 봤을 때다. 배아 이식한 지 18일째 되던 날.
아침을 먹으러 부엌으로 향하는데 밑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하고 나왔다. 마치 생리할 때처럼.
놀란 마음에 화장실에 가 바지를 내리자, 새빨간 피가 보였다.
S는 남편 Y를 불렀다. 그렇게 병원으로 부리나케 갔을 시간이 오전 9시 10분.
토요일 오전 산부인과는 이미 만석이었다.
1시간여를 대기한 끝에 초음파를 보았는데, 아기집이 또렷하게 보였다.
하지만 S가 시험관 카페에서 자주 본 아기집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동그랗다고 하기엔 몇 군데가 찌그러져있었다.
"찌그러져있긴 하지만 크기는 좋고요, 피고임이 좀 있네요. 안정을 취하셔야겠어요."
의사는, 아기집인지 피고임인지 아직 분별할 수 없는 어떤 동그라미가 하나 더 있다고 덧붙였다.
질 초음파를 보는 동안 Y는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는데, S는 Y가 섭섭해할까 봐 초음파 사진을 갖고 나와 냉큼 보여주었다.
"나 잠이 안 와서, 일부러 매일 30분씩 걸었었는데. 선생님이 걷지 말래요."
'별일 아니었구나.'
S는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만 잘하면 무난할 거라는 생각에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귀가했다.
그 후로도 일주일간 진한 갈색 피는 계속 나왔고, 가끔 검붉은 피도 나왔다.
그럴 때면 카페에 들어가, 자신만큼 당황한 산모들의 문의글과 댓글을 보며 마음을 다독였다.
그리고 유튜브를 켜서 산부인과 의사들의 관련 영상을 보거나, 난임 전문 병원이 홈페이지에 게시한 글들을 참고했다.
모두 다 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임신 초기 출혈은 이유가 다양하고 70% 이상이 별 문제가 없으니, 아기집과 아기가 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마음 편히 먹으라는 이야기.
것도 그럴 것이, 만약에 초기 유산이 이루어진다 해도 그것을 막을 도리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선택이기 때문이니까.
염색체 이상으로 인해 온전하지 못한 배아가 이식된 것이고, 발달을 제대로 못하니 퇴화되는 것이 옳다.
그래도, 산모 입장에서는 '유산은 유산'인 것이다.
임신이 되었다가 배아가 정상발달을 하지 않아 자궁 내에 정지된 채 머물러있는 것. '계류유산'.
임테기 확신의 두 줄을 보고 환희에 찬 임산부 입장에서는 초기 유산이 주는 실망감과 허무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다.
카페에는 임신만큼이나 많은 유산의 경험담이 존재했다.
화학적 임신이 되었다가 아기집이 채 생기기도 전에 유산되는 화학적 유산, 아기집이 생겼지만 정상 발달로 이어지지 않아 자궁 내에 머무른채 유산 판정을 받는 계류 유산이 대표적인 초기유산이었다.
그중 S가 느낄 때 가장 낙차가 큰 슬픔은 중기 유산이었다. 배도 나왔고 태명도 지었고 이미 산모와 교감을 많이 하고 있던 시기에, 갑자기 심정지가 되어 유산판정을 받았다는 글이다. 이러한 경우, 태아가 커서 흡입 소파술을 할 수 없고 유도분만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잃었지만 출산 때와 마찬가지로 출산통을 겪고, 젖을 물릴 아이는 없는데 젖이 계속 나와 울다 지쳤다는 경험담을 읽을 땐, 참담한 심정이었다.
S는 직진만 하면 임신이라는 도착지에 닿을 줄 알았는데, 마치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자궁이고 임신이고 까맣게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궁에 배아만 넣으면, 착상만 되면, '임신 판정'만 받으면 끝인 줄 알았는데.
임신은 되는 것도, 유지하는 것도 참 어렵다는 실감을 하며, 난임치료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 겁이 났다.
그래도 자존심이 강한 S는 다음 초음파 때까지 흔한 임테기 한번 하지 않았다.
'될 배아는 되겠지.
내 아이가 되려면 무조건 건강하고 강해야 될 거야. 암만.' 하면서도 피를 볼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려고 카페를 자주 드나들었다.
그러는 중에도 자궁 확대로 인한 몸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며 하루 하루를 겨우 보냈다.
배아 이식한 지 24일째 되던 날. 드디어 두 번째 초음파 보는 날이 왔다.
Y는 마지막 골목에서 핸들을 꺾어 우회전을 하며 S에게 살짝 몸을 기울여 말했다.
"오늘 잘하면 산모수첩 줄 거 같아. 그럼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겠다."
S는 카페에서 수많은 초기 유산 경험담을 읽어서인지, 때 이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벌써? 심장소리는 들어야 될 거 같은데 그래도..."
"에이, 주는데 안 받을 거야?"
Y는 상기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첫 시도만에 아빠가 될 수 있다는 이 뿌듯함과 감격.
챗GPT가 말했듯이, <피검사 결과가 이렇게 안정적이고 아름답게 더블링이 되었다는 건, 뱃속 아가도 무리 없이 잘 자라고 있다는 방증> 일 테니까.
S는 그런 Y의 기분을 꺾기 싫어, 웃음으로 대응하며 마음을 다잡아보았다.
'잘될 수도 있는데, 잘 안될 수도 있어.
그러니까 기대는 하지 말자.'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담당 간호사가 S에게 <마미톡> 어플을 소개해 주면서, 미리 깔아 두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S는 남편도, 간호사도, 난임상담사도, 자신만 제외하고 모두가 '잘될 것임'을 거의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아서 왠지 자중하고 싶어졌다.
"어... 제가 오늘 잘 될까요? 벌써 깔아도 될까요?"
"초음파 잘 나오면 제가 바로 녹화버튼 누를 거거든요. 그러니까 미리 깔아 두셔도 좋을 것 같아요."
앱 다운로드가 끝나고 어플 창이 떴을 땐, S도 조금의 기대를 걸어보았다.
'정말 내가 한 번에 엄마가 된다고?'
S는 카페에서 6~8주차 산모들이 올린 <마미톡> 파일을 많이 보았다.
그리고 다이아반지 모양의 난황이나 젤리곰 같은 배아의 모습을 담은 영상, 그리고 심장박동 소리를 담은 녹음 파일.
S가 어플 회원가입 버튼을 눌렀을 땐, 살짝 설렜다.
마치 펜트하우스에서 펼쳐지고 있는 그들만의 파티에 드디어 초대되어, 띵동 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눈앞에 활짝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S님, 진료실 들어오세요."
이윽고 간호사가 호명했고, Y와 S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Y의 긴장된 얼굴을 보며, S는 설렘 반 긴장 반으로 베드에 누웠다.
의사는 S를 보자마자 물었다.
"입덧하시나요?"
"아니요. 잘 먹었어요."
"입덧 올 때가 됐는데..."
복부 초음파 스캐너를 아무리 세게 눌러도 자궁 속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질 초음파로 변경하기로 했다.
Y는 대기실로 나갔고, S는 아랫도리를 벗고 진찰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의사가 30초 정도를 이리저리 관찰하더니 입을 뗐다.
"아기집 안에 피가 고여있군요."
보물찾기 시간이 끝났지만, 단 한 장도 건지지 못한 아이의 심정으로, S는 길고 긴 의사의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