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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아이 갖기(2)

주 1회 셀프청탁 에세이

by 기맹드

※소설 형식을 띠고 있으며, 구가 섞여 있니다 :)




나팔관 조영술은 생각보다 아팠다. S의 사려 깊은 동생이 '통증 예고'를 해주었지만 도움은커녕 공포심만 키운 꼴이 되었다.

오래된 건물 지하 특유의 한기를 느끼며 S는 영상의학실에서 아랫도리를 벗은 채 한동안 누워 있었다.

체감상 20분이었는데 실제로는 5분이나 되었을까.

위내시경을 마취 없이 비수면으로 받는다는 작은 자부심은 S가 신체적 고통과 불편함을 마주할 때마다 용기가 되어주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눈물이 주르륵 나올 정도였다.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끅끅댈 때마다 온몸은 흔들렸고, S가 운다는 걸 알게 된 촬영사들은 '곧 뺍니다. 끝나가요.' 하면서도 말을 지키지 않았다.

생살이 찢기는 고통 가운데서도, '닭똥을 본 적은 없지만 이게 바로 닭똥 같은 눈물일 거'라는 확신을 하려 드는 자신이 웃겨 더 비참했다.




지상층으로 올라와 수납을 하려는데 퉁퉁 부어있을 얼굴을 들키기 싫어, 바로 데스크로 갈 수 없었다.


'시험관 처음인가 보네. 초짜네. 그거 갖고 울어 왜.'라는 인상을 받기는 싫었다.

이 세계도 암묵적으로 아마추어와 프로 나뉠 테니까.

이 세계에 최대한 적응한 척하고 싶었다.

S 자신에게도 '괜찮아'라는 사인을 보내고 싶은데 도저히 낙관적인 에너지가 생기지 않았다.


남편 Y에게 아픈 내색이라도 해야 좀 나아질 것 같았다. 건물 밖으로 나가자 쨍한 여름 햇살 덕에 햇빛 샤워를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S는 방금 전 지하 1층에서 느꼈던 서러운 감정선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Y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나 아픈지 알아?
차가운 곳에 누워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자궁도 없는 자기가
뭘 알아!!"


GPT가 그려준 사진. 좀 부담스럽다.ㅋ


남편 Y는 어쨌든 시험관 시술의 과정이 '진행'되어 가고 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사정없이 언어구타를 날리는 S에게 꺼이 드백이 되어주다가도, 미래지향적인 말들 마무리하였다.

S는 자존심이 강했고 자신이 약해 보이는 것을 꺼려하는 생을 살아왔지만, Y에게만은 어리광을 부릴 수 있었다.

자신이 나약해져도 되는 사람이 세상에 엄마 말고 또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통화로 고통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이 정도 생색이면 됐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감정에도 수지타산이 있고
고통에도 등가교환이 있다면,
아마 이런 경우일 거야'




그렇게 사전검사를 거치고 여행을 다녀온 후, 앞으로 얼마나 지난할지 알 수 없는 시험관 시술 과정에 드디어 돌입했다.

시험관 시술은 여자몸으로 하는 거대한 생체실험 같았다. 축약하자면, 세포를 어렵게 꺼냈다가 집어넣는 과정이었다.


난임상담실에서 받은 '시험관 아기 갖기'라는 안내용지는 마치 저 멀리 아이슬란드나 남극으로 떠나기 위한 여행안내서 같이 느껴졌다.

약간의 두려움은 있었지만 그보다 큰 설렘과 자극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연임신이 되었다면 절대 대받지 못했을 떤 마술쇼에 나란히 입장한 것만 같았다.

'요새 많이 한다고들 하지만,
정말 내가 하게 될 줄이야.
신기하다'



S는 의사가 일러준 대로 생리 이틀째에 병원을 방문했고, 의 시계에 맞추어 아홉날을 보냈다.

난임상담실에서는 셀프로 주사 놓는 방법을 알려준다며 S의 뱃살을 꼬집어 '피하지방'에 직으로 바늘을 꽂았다. S는 이 특별한 경험에 약간의 호기심이 일어 짐짓 웃음을 보였는데, 그런 모습이 Y와 난임상담사에게 자칫 가벼워 보일까봐 걱정이 스쳤고 장 입꼬리를 내렸. 그리고 그런 본인이 조금 가증스럽기도 했다.



다행히 아프지 않았지만 의사 처방에 따라 주사가 두 개, 세 개로 늘자 배꼽 주변과 허벅지에는 구멍이 숭숭 흔적이 생, 살짝 자기 연민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심각하거나 쉽게 심란해 하지 않도록 기분을 관리했다.

그렇게 과배란유도 과정이 끝났고, 난자채취하는 날이 당도했다.




채취날에는 Y도 무척 긴장을 했는지 갑자기 손톱을 깎질 않나, 옷을 이것저것 바꿔입질 않나, 동분서주한 모습을 보였다. S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난임상담사가 해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남자도 당일에는 정자 채취를 순조롭게 해내야 하는데, 생각이 많고 컨디션이 안 좋으면 성공 못하는 남자들도 있요."


아내를 걱정하는 마음은 벽히 접어두고, 야한 동영상을 보며 쾌락의 정점에 스스로 도달해야 하는 남편의 역할도 오늘 쉽지만은 않겠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나서며 Y에게 가볍게 물었다.

"자기, 오늘 필승팬티 입었으니까
잘할 수 있지?"
"당연하지."


일찍 가보겠다고 처음 입한 길이 예상외로 막혀, 결국 10분이나 늦었고 난임상담사에게 볼멘소리를 들었다.

덕분에 Y와 제대로 된 인사도 못한 채 술실로 거의 끌려가다시피 했는데, S는 때 Y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못한 게 굴욕침대에 누워있는 내내 쉬웠다.



베타딘으로 소독하고 따뜻한 물을 몇 번 끼얹는 식으로 세정이 이루어졌. 여자의 생리기관은 남자의 것보다 위생에 취약하다고, 생물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 기억다.


두 발이 끈에 고정되고 산소마스크까지 씌워지자, 비로소 몸뚱아리만 남은 무기력한 존재을 실감했다.


이윽고 담당의사가 들어오고, 간호사가 말했다.

"환자분 이제 졸리실 거예요. 수면유도제 들어갑니다."

Y는 지금쯤 야동 잘 보고 있을까?
우리 둘 다 잘 되겠지?

작은 방에 홀로 갇혀 신만의 싸움을 하고 있을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며, S는 이상 버티지 않고 스르륵 잠들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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