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병원에서 아이 갖기(3)

주 1회 셀프청탁 에세이

by 기맹드

※ 소설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D




"자기야, 몇 시야?"


두 시간 만에 잠에서 깬 S의 시야에 처음 보인 것은 남편, 그리고 링거 약병이었다. Y는 S의 손을 잡으며 "어디 불편한 곳 없어?" 물었다.

커다랗고 따뜻한 Y의 손 만지며, S는 이 익숙한 촉감을 낯선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몸 좀 어때? 어디 불편한 곳 없어?"

"괜찮아. 아직까지 마취가 덜 깼나 봐요. 아프진 않네"


Y는 S가 몸을 바꾸지 않고도 화면을 볼 수 있도록 핸드폰 그립톡을 이리저리 틸트해 눈앞에 세팅해 주었다.


S는 어제 의사가 해준 말을 떠올렸다.

채취는 난포를 찔러 성숙 난자를 여러 개 빼내는 시술이고, 각서도 쓸 만큼 후유 장애가 남을 수 있는 위험부담이 있는 과정이라고 했다.

난소에 피가 차는 현상은 2주 안에 자연스럽게 주변 혈관으로부터 흡수된다고 했다.


S는 건강에 있어서만큼은 지금껏 큰 일을 겪은 적이 없었고, 그야말로 '평균'이나 '보통'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살아왔기에, 이번 시술 또한 '내 난소가 잘 회복될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시험관 횟수가 늘수록, 여러 번 찌를수록, 난소의 질은 저하될 수밖에 없어요."


S는 배꼽 주변을 만지며, 어쩌면 죽을 때까지 대면할 수 없을 두 난소에게 미안함을 고했다.

잘 버텨줘. 얘들아.
미안해.

담당의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S님 시술 잘 끝났어요. 난자 총 다섯 개 나왔고, 하나는 비정상 난자라서 폐기했습니다.

푹 쉬세요. 이온음료 많이 드시고요."


다섯 개라니. 나이가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열개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그래도 초음파 상 일곱 여덟 개 정도는 예상했는데.'

아쉬운 마음이 가득 들었다. 하지만 Y에게 내색하기는 싫었다.

결과 하나하나에 아쉽기 시작하면 이 긴 여정을 더 이상 헤쳐나갈 수 없을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 출발선을 떠난 지 100미터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42km를 다 뛰려면 좀 더 의연해질 수밖에.

어차피 난자도 하나,
정자도 하나만 괜찮으면 되는 거 아냐?


시험관 루트를 타기로 한 이상, 부정적인 마음은 생길 때마다 잡초 뽑듯 냉큼 뽑아버려야 했다.




"S야, 너는 결혼하면 애 갖고 싶어?"

"글쎄... 애 자체보다는, 난 자궁을 갖고 태어났으니까 한번 써먹어 보고는 싶어."


누가 물어보면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매달 하는 생리 갖고는 궁을 사용다고 할 수 없다 S였다.

그래서 S에게 결혼은 자궁을 써볼 수 있는 기회기도 했다.

이러한 생각이 좀 엉뚱해 보일진 몰라도, S에겐 여자로서의 존재를 인식하는 나름의 접근법이었다.


의기양양하게 '자궁 써보고 싶다'라고 말하고 다녔던 결혼 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S는 스스로가 꽤 천진난만했다는 뒤늦은 평가를 내렸다.

자궁의 존재와 쓸모를 입증하기 위해 몸이 이렇게 힘들고 너덜너덜해질 줄은 몰랐을 테니까.




S는 묵직하고 저릿한 느낌 때문에 좀처럼 앉아있기 힘들어, 채취 당일은 내내 누워있었고, 이튿날부터는 서서 일하기 시작했다.


채취 3일 전, 사장은 신규 용역 공고를 발견하고 웬만하면 입찰에 시도해 볼 것을 권유다. S는 몸 걱정은 됐지만, 한편으론 일 좀 한다고 될 일이 안되진 않을 것이라는 운명론적인 생각을 하며 제안서를 작성했다.


작년에 일반 책상이 아닌 모션데스크를 고르는 바람에 예산을 초과했었는데, 사놓고 모션 버튼을 눌러본 적이 한 번도 없어, '구매결정이 과연 합리적이었는가'를 두고 Y와 S 둘 다 서로 모른 척 쉬쉬 하는 중이었다.

"이럴 줄 알고 산건가. 너무 다행이다."

"그러게. 이거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듯."


Y는 S가 불편하지 않도록 부엌의 냄비와 접시들을 조심히 다뤘고, 설거지 할 때 틀어둔 유튜브도 이어폰을 끼고 봤다.

점심과 저녁은 물론이고, 계절과일과 음료를 준비해 간식으로 조달하기도 했다. 가끔 들어와 S를 웃겨주는 것도 Y의 역할이었다.

그렇게 밤 11시까지 Y의 살뜰한 뒷바라지를 받으며 '일하는 내가 일류다'의 자세로 이틀간 제안서를 얼추 완성했다.


3일 뒤, 배아 이식하는 날이 왔고 의사는 부부를 진료실로 불러 경과를 설명해 주었다.

"정상 난자 4개를 ICSI 기법으로 수정시켰고, 그중 3개가 3일 배양에 성공했어요. 등급은 각각 상중하입니다. 산모 나이가 40세 이상이기 때문에, 3개 다 이식할거에요."


의사는 배아 사진을 보여주었다.

배아는 동그란 투명막 안에 올망졸망한 원 8개가 겹쳐져 있는 모습이었다.

"나이가 있는 난자들은 수정란 투명막이 좀 두꺼워요. 그래서 한쪽을 좀 커팅해줬습니다. 뚫고 나와야 착상이 되거든요."


'이래서 자연임신이 안된 것일까.
알을 깨고 나오고 싶어도 껍질이 두꺼우면 어려울테니까.'


이식날은 이상하게 신이 났다. 희망과 긍정이 부풀어 올랐다. 난소가 다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통증이 안 느껴졌다. 불안할게 없었다. S는 순수한 마음을 갖고 그저 잘되리라 되뇌었다.


S는 수술실 앞에 걸음을 멈춘 Y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잘 넣고 올게!"


이식 과정은 수면마취 없이 이루어졌다.

'빼는 건 어려워도, 넣는 건 쉽나 보네.'

몇 분이 지나자 수술실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지하 1층 배양실에 있던 배아를 의사에게 전달하러 직접 온 것이다.

"S님 3일 배아 3개, 전달드리겠습니다."


인류에게 몇 남지 않은 씨앗을 건네는 듯한 엄숙함과 긴장이 느껴졌다.

아직 세포에 불과할 뿐인데, S는 일순간 뭉클해지며 '나의 배아'가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는 이식 과정을 마치고, 누워있는 S에게 인사를 전하며 수술실 문을 빠져나갔다.

"세 개 모두 잘 들어갔습니다.
좋은 생각만 하세요."

'이제 할 수 있는건 다 했나보다.'

좋은 생각만 하라는 의사의 말이 S의 코끝을 찡하게 했다.

좋은 생각하기를 지령으로 받은 S는 가슴이 웅장해졌다.


A매치 축구 경기에서 관중석의 거대한 태극기를 봤을 때처럼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역대 전적으로 보나, 선수 구성으로 보나 절대 이길 수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이번 경기만큼은 왠지 잘될 것 같은 순수한 마음.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부터 뻗어나가는 희망.

내 나라니까 그냥 한국을 힘껏 응원하고 싶은 그 진심.

'나도 이제 그 마음이 필요한 걸까.'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12화병원에서 아이 갖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