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회 셀프청탁 에세이
유산 후 수술 여파로 인한 몸조리를 약 2주 간 지내고, 회사 사무실에 복귀한 첫 날, 나는 퇴사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회사는 내가 매일 출근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용역 제안서가 탈락의 고배를 마시더라도 심한 눈치주기나 괴롭힘이 없는, 헐렁한 회사였다. 물론 업계 대비 낮은 급여라는 요소가 한 몫 하지만 말이다.
SRT를 타고 수서에 내려 강남역까지 가는 동안 나는 몇 번을 주저앉았다. 엉덩이만 땅바닥에 대지 않았을 뿐, 윗도리가 바닥을 쓸 정도로 몸을 아래로 아래로 낮추었다. 마치 요가에서 '아기자세'를 하듯이 말이다.
많이 힘들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토할 것 같았으며 선릉역에서 강남역까지 고작 4분이 우주에서 멀어지듯 아득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공황장애의 문턱까지 다녀왔다.
"저 재택근무 해도 되나요?"
안될 것을 알면서, 마음은 이미 퇴사로 정해놓았으면서, 나는 태연히 회사 대표에게 제안하듯 여쭈었다.
'생각해보겠다'는 답변은 그의 최선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날 점심 때 곧장 친한 회계사 오빠를 만나 '드디어 진짜 개업할 때가 온 것 같다'며 웃음기 없는 진담들을 쏟아냈고, 공인회계사회 구인 게시판에 올라온 개업회계사 모집 글들을 살펴보며 조건을 알아보았다.
5일 뒤, 나는 대학 동문들이 포진해 있는 회계법인에 조인하기로 했다.
가장 큰 조건은 '사무실로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내가 딴(수임한) 만큼만 일하면 된다는 것.'
일하는 장소도, 일하는 시간도, 일하는 대상도 내가 정할 수 있다는 완전한 자율성을 얻게 되자, 언제 힘들었냐는 듯 몸에서 기운이 나는 듯했다.
행복을 느끼는 세가지 조건은 자율성, 연결감, 유능감이라고 한다.
나는 이것을 메모장에 적어두었는데, 내가 행복감이 부족하게 느껴질 때 어떤 요소가 모자란 것인지 확인하기 위한 용도였다.
물론, 이제 수입은 줄어들 것이고 날 찾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전화가 덜 오고, 메일이 덜 오고, 규칙과 상벌이 없는 세계로 가서 나는 새롭게 적응할 것이다.
이제 더이상 서울로 가지 않아도 된다.
이제 더이상 지옥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
이제 더이상 기차표를 구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된다.
이제 더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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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술 하고 마음 정리가 필요했다. 임신에 대한 내 생각과 앞으로의 계획.
난 다시 임신할 마음상태가 전혀 아니었다. 용기가 없다기보다는, 임신을 압박처럼 느끼고 싶지 않았다.
임신을 해야한다는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임신하지 않아도 되는 삶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타인의 삶이 궁금했다.
검색을 타고타고 들어가다가, 추천 글을 읽다가, '장강명 작가'가 쓴 <저출산 대책을 넘어서>라는 칼럼을 보게 되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267333?sid=110
2018년 1월에 쓰여진 이 글은 나에게 '부모가 되지 않아도 돼'라는 선택의 자유를 줬다.
'맞아. 세상엔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가 너무나도 많아.
오히려 아이 낳을 이유가 없어.
왜냐하면 아이를 낳는 건 '이유없는 본능'이니까.'
그렇게 확증편향의 기운을 받으며 나는 장작가의 칼럼을 읽고,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일순간 "확" 편해졌다.
임신과 유산의 총 기간 9주 동안, 가장 마음이 편했던 날이었다.
'아. 그래. 나 임신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렇게 임신에 대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고, 나는 퇴사와 더불어 가벼워진 마음으로 살던 요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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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장강명 작가의 아내 김새섬(김혜정) 대표가 악성 뇌종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독서모임 <그믐>을 운영하고 있는 그녀는 머리에 두건을 쓴 채 편안한 얼굴로 세바시 강연을 했다.
https://youtu.be/lZGr_NisTz0?si=1jT42q4VCZluJyvo
악성 뇌종양은 진단 후 평균 14개월을 산다는, 잔인한 통계를 가진 병이다. 특이증상이 없어 주변 사람들도 잘 눈치채지 못하는, 영화감독들이 소재로 쓰기 좋아한다는 시한부 병이다.
나는 그녀의 병명을 듣고 나서 좀 많이 울었다.
그리고 장강명 작가를 떠올렸다.
나에게 그들은 임신하지 않고도 잘 살아가는 표준 부부였고, 각자의 효능감과 연결감을 만끽하며 누구보다 왕성하고 오랫동안 사회활동을 할 수 있으리라 경외심이 생겨났던 커플이었다.
내가 임신의 세계에 들어가지 않아도, 앞으로 신랑과 잘 살 수 있고, 저들 부부처럼 각자 하고싶은 일에 매진하며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행보를 보이며 난 나답게, 살 수 있겠구나 생각하던 중이었다.
난 왜 울었을까.
인생은 흐른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 아니었을까.
내가 원하는대로 물줄기를 틀 수 있지만, 그 방향대로만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호스를 잡고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어떤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거대한 드라마 속에서 나는 누군가에 의해 쓰여진대로 살아갈뿐, 삶에 대한 어떤 결론도 어떤 결말도 함부로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인생을 내가 잘 설계해 가지고, 의지를 갖고 이리저리 잘 운영하면 짠 하고 아웃풋이미지가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그건 내가 쓰는 보고서고, 당신이 만드는 요리다.
인생은 그렇게 만만하게 눈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신기루처럼 보일듯 말듯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도 하고.
구름이 솜사탕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 형체가 없는 수증기에 불과하듯
인생도 그런 것일까.
인생은 고이지 않는다.
인생은 그저 흐르는 것 같다.
며칠 전 봤던 영상에서 법륜스님이 말씀하셨다.
"행복해야지~ 하지마세요.
긍정적으로 살아야지~ 하지마세요.
그냥 물 흐르듯이 사세요."
스님. 흐르는 삶에도 눈물은 납니다. 근데 웃음도 납니다.
그래서 참 씁쓸합니다.
씁쓸한 것까지 포용하는 게, 그게 인생 사는 태도겠지요?
어렵다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