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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디엠의 어려움

주 1회 셀프청탁 에세이

by 기맹드

30대의 나는 평일에는 회사, 주말에는 산에서 모든 시간을 보냈다.

설악산과 지리산만 족히 서른 번 이상 다녀왔다.


지리산 하산길에 늘 맥심커피 타먹던 장소


뭐가 그리 불안하고 복잡했던지, 몸을 힘들게 해야만 정신이 비로소 가벼워지는 경험을 계속 반복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토요일 아침 버스를 타고 설악산 한계령 입구에 도착한다. 혹은, 남부터미널에서 금요일 밤에 출발하는 야간버스를 타고 중산리에 도착한다. 10kg가 넘는 1박 2일 배낭을 메고 4시간을 오르고 나면 국립공원 대피소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고기를 구워 먹고, 한잔 하다가(지금은 음주가 금지되었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추위와 어둠을 헤치고 정상까지 올라 해를 기다리다가, 인증샷을 찍고 노래를 실컷 듣다가 하산을 준비한다. 힘들게 올라온 길을 3시간 동안 다시 내려가,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면 일요일 해가 지기 시작한다.

그런 식으로 나의 주말은 채워졌다.

혼자 가는 지리산과 설악산은 완전한 자유이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고행이다.

사서 하는 고생길.


40대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가.

30대에 산에서 온갖 불안함을 달래고서 지금은 안정을 찾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도 똑-같다.

지금도 마음이 불안하면 우직한 산에게 가 어서 안기고 싶다.

등산화를 신고 끝없는 계단길을, 돌길을, 산길을 오르고 싶다.

그렇게 몸이 좀 힘들면 이상하게 마음이 위로된다.

'몸이 힘든 게 낫네.'



대청봉에서 찍은 인생샷 중 하나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세종시에서는 <한글런>이라는 달리기 행사를 열었다.

우리 부부와 동생네 부부는 함께 참여해서 10.9km를 달렸다.

유산 몸조리 후 약 한 달간 달리기 훈련을 꾸준히 해왔었는데도, 행사 당일은 참 힘들었다.

그래도 늘 그렇듯이 꾸역꾸역, 완주를 했고 목표한 페이스를 달성했다.


좌) 나 우) 동생


그날 밤, 일기를 쓰면서 생각했다.

뛰는 행위는 건강하게 늙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정신적인 괴로움을 잊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다.

30대의 등산을 대체하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난 무엇 때문에 평생, 이렇게 극한의 고통을 사서 하는 것일까.

과거에 대한 후회, 자책.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 두려움을 잊기 위해 하는 행동치곤 너무 힘들고 과한 것 아닐까.


나에게 운동이란, 카르페디엠 하기 위한 도구이다.

어떻게 하면 과거에 대한 후회와 자책을 잊고 마음을 조금 가볍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현재에 충실할 수 있을까.


Seize the day

Carpe Diem.

나는 과연 이룰 수 있을까.


오늘처럼 과거에 대한 자책과 괴로움 때문에 나 자신을 갉아먹고 시간을 버리는 날이면, 이런 생각이 더욱 절실하다.


육체의 소모와 신체의 피로를 통해
불필요한 생각을 차단시키는 방법은
더 이상 그만.

어떻게 하면 더 현명하고 지혜롭게 '지금, 여기'에 집중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까.


명상을 정말 해봐야 하는 걸까.

반야심경을 공부해야 하는 걸까.

휴 그것보단 차라리 운동이 나은 거 같은데.


내일도 나는 왠지 뛰러 나갈 것 같다.

신랑에게 등산 가자고 조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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