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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도장깨기

주 1회 셀프청탁 에세이

by 기맹드


5년 전에도 알아봤었던 치아 교정을, 이제서야 정말로 실행하게 되.었.다.


앞니 두 개가 툭 튀어나와 있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서로 점점 접히려고 하는 모양새인 것이,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져서 미관상 흉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동네에 충청도권의 프랜차이즈 치과가 있는데 사람들이 두루 친절하고 교정할인 이벤트 중이라,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지르게 되었다.


상악 확장 장치


오늘은 상악궁 확장 장치를 입천장에 끼웠다.

다른 치과에서는 '발치'를 권했었다.

동생 왈, "언니. 자연치아 값어치가 개당 5천만 원이야. 절대 뽑지 마."


나는 비뚤어지긴 했어도 작고 소중한 내 '멀쩡한 이빨'을 '뽑는다'는 상상은 감히 하지 않았기에, 발치를 꼭 해야 한다면 그냥 생긴 대로 살겠다는 주의였다.

하지만 이 병원에서는 발치보다 상악궁의 확장을 권했다. 쉽게 말해, 철도를 깔기 전에 먼저 영토를 넓히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영토를 넓히는 것. 결국은 입천장 면적을 확장하는 것이다.

뭐 말하자면 베란다 확장 정도가 될까? 베란다까지 거실로 만들어서 거실 평수를 늘려서, 거실에 가전제품과 가구들을 많이 배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지금 내 입에서는 그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혐샷까진..아니겠죠?ㅋ


이렇게 아플 줄 몰랐다.
이런 고통을 알았다면 다시 생각해 봤을 것이다.


집에 오는 동안 그 생각을 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종류의 고통이 있구나.


살만큼 살았고, 겪을 만큼 겪었다 생각했는데, 빙산의 일각이고 자만이었다.

나는 고통 분야에서는 아직 애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고통이

뜨거운 물에 데어 피부가 벗겨졌던 중2 여름방학 때의 '화상 추억'만큼 잔인하고 뒷골이 서늘해지는 고통은 아니다.


입천장 zone을 쇳덩이에 뺏겨버린 혀의 발악과, 그로 인한 침 삼킴의 어려움, 이에 수반되는 아래턱의 얼얼함, 날뛰는 혀의 상처 등이 기본값의 고통이다.


거기다, '3개월간 이 갑갑함에서 절대 탈출할 수 없다'는 막막함과 운명론이 나를 숨막히게 한다.


상악골이라는 뼈의 인위적인 이동과 천장피부의 연신, 확장 등이 내 두개부까지 통증으로 전해져 입맛도 없고, 의욕도 없다.

3개월 뒤에는 이 장치를 제거하는 대신, 새로운 고통이 시작된다. 하지만, 치아에 철도를 깔아서 또 다른 '뒤틀리는' 고통을 맞이할 것이라는 미래의 모습은 아직 생각해 줄 여유조차 없다.


아기를 낳는 고통, 추위나 더위로 인한 고통, 돈을 잃은 고통,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고통, 죽고 싶은 고통 등 인간이 살면서 맞이할 고통은 참 다양하고 다채롭다.


결국 산다는 건 다양한 고통을 도장깨기하는

여정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힘들 줄 모르고 시작한 바디프로필도 결국은 해냈고,

생각보다 진이 빠졌던 집 인테리어도 어찌어찌해냈고,

시험관도 한 번 했고 유산 수술도 잘 지나왔으니,

치아 교정도 어떻게 뭐... 잘 지나가겠지 하는 '막연한 낙관'으로 지금의 고통을 승화해보려 한다.


고통은 사람을 참 숙연하게, 겸손하게 만든다.


며칠 전 배꼽이 빠지게 웃었던 나를 떠올리며,

"그날의 행복은 오늘 이 고통으로 결제되는구나." 싶다.


어떻게든 잘 버텨보자.

다 지나가는 거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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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