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회 셀프청탁 에세이
황유민 선수의 우승을 보고,
눈물이 났다.
찔끔도 아니고 엉엉 울었다.
신랑이 '당신 딸이야?'하고 물었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짠하다.
그들은 대충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몰입과 집중력을 쏟아낸다. 진심을 다한다.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아?'
라는 남들의 물음에
"난 이렇게 사는 게 좋아.
이렇게 사는 게 나다운 거야.
난 이 길을 택했어."
라고 하는 것 같다.
화려한 말 대신
행동으로, 실천으로 보여주는 사람들.
왜 그렇게 성실하게만 살아가냐고.
왜 진심으로 하냐고.
그게 얼마나 촌스럽고 비효율적인지 아냐고.
딴지 거는 사람들이 있다.
만족을 몰라서 멈추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지쳐서 낙담하거나 무너질 때도 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서 다시 해보는 것까지가 완성이고 자신의 몫이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결과? 결과는 모르겠고요,
하늘이 주는거고요,
저는 그냥 열심히 하는거죠.
하다보면 되겠죠.
대강하는 것, 요행을 바라는 것.
그것이 어찌 보면 잔인한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부산물처럼 생겨난 '인간의 본성'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끝까지 나아가보는 것.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도 의심과 자존심에 발목잡히지 말고 한 번 가보는 방식이
적어도 아직까지는 나에겐 맞다고 생각하고, 내 마음이 원하는 한, 그 길을 택하고 싶다.
그 길을 택해 떠난 여정은
마지막에 '우승'이나 '승리', '성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꽝'이나 '길 없음'의 표지판이 있을 수도 있다.
여정을 시작하는 사람은
'과정에 최선을 다하면 결과에 미련이 없을 것'이라는 단 한 가지 믿음만을 가슴에 품고 떠난다.
얼마 전 어쩌다가 <내 새끼의 연애>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순수하고 투박한 그들의 모습이 좋아, 첫 화부터 마지막화까지 다 보게 되었다.
여성출연자 '신향'의 경우, 원하던 상대와 최종 커플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마음이 향하는 대로 상대에게 마음을 꾸준히 전했던 자신의 모습을 비참하거나 아쉽게 생각하지 않고, 그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참 예뻤다.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어요."
딸의 눈물을 스튜디오에서 지켜본 아빠 (배우 이철민) 또한 딸의 소회에 "잘했다."며 눈물을 훔쳤다.
결과를 인정할 줄 아는 품격 있는 성숙한 딸의 모습에 얼마나 대견했을까. 물론 속상했겠지만.
자존심 다칠까봐 혹은, 상대방에게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될까봐 두려워 진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안 하는 선택을 하며 어떤 것도 얻지 못한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여전히 계속 살아가야 하는 자신에게 너무 야박하게 구는 처사는 아닐까.
실패라고 못 박지 말고 하나의 과정으로 보고 자신에게 좀 관대해지면 안 될까.
남들 왜 눈치보나.
어차피 남들은 나에게 관심없다.
내 인생은 오로지 나만 관심있다.
과정은 과정대로.
그 여정 끝에 맞이할 '결과'는 결과대로.
그렇게 구분지어 받아들이고 싶다.
어차피 결과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인생에 '실패'는 없고
그저 모든 순간이 '과정'일뿐이라고 되뇌는 요즘의 나를 발견한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영원한 것은 없어.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일은
존재하지 않아.
로또가 되더라도, 당장 죽더라도
결국은 '어떤 자세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왔느냐'만이
유일하게 영원해질 사실이자 기록, 기억이니까,
아무쪼록, 나는 과정 속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다.
결과는 모르겠고, 결과는 알아서 따라오는거고,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그 과정 끝에
황유민 선수처럼 'LPGA 진출 성공'이 있었던 것도,
신향처럼 '성숙한 혼자됨'이 있었던 것도,
<실패를 통과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출판한
박소령 전 CEO도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결말을 주저없이 껴안았을 뿐,
결국 나 자신이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그 길 위의 자신 밖에 없었음을 미리 자각하는데에 완전히 성공한 사람들이다.
최선을 다한 그들에게 "성장"이라는 아름다운 왕관이 씌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