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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이 Jul 20. 2018

효리언니, 진짜 스몰웨딩은 어렵더라고요.


실제 커플의 사례를 직접 취재해 작성한 스몰웨딩 준비 스토리입니다.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



스몰웨딩, 두 번은 못한다.

사진 출처=http://tv.naver.com/v/1833343


그래. 효리느님의 말이 맞다. 진짜 스몰웨딩은 예식장에서 평범하게 하는 거다. 천만 원 단위의 예산이 필요한 예식장이 뭐가 평범한 거냐고 반문할 누군가를 위해 우리가 진행해 온 스몰웨딩의 시작과 끝을 공유하려 한다. 스몰웨딩에 대한 갖가지 정의가 넘쳐나는 만큼 우리가 생각한 스몰웨딩은 “저렴하고 합리적으로, 또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는 웨딩”이었음을 밝혀둔다.


저렴, 합리, 원하는 방식이라는 키워드가 스몰웨딩을 수식하는 이유는 보편적인 한국 결혼식이 그와 반대되는 지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가량 진행되는 결혼식에 돈을 쏟아부어도 예비부부들을 들러리로 만드는 게 요즘 결혼식이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결혼식=웨딩홀이라는 프레임이 깨지지 않은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다. 축의금은 물론이고 굳이 장식할 필요 없는 화려한 웨딩홀에 각양각색의 음식도 마련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이효리를 시작으로 많은 연예인들이 스몰웨딩을 진행하면서 ‘결혼식=웨딩홀’이란 프레임은 깨지는 추세다. 남들보다 덜 화려하더라도, 하객이 적더라도, 좀 수고스럽더라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방식의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나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국가 차원에서도 작은 결혼식을 확대하겠다며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공공시설 대관이 대표적이다. 결혼식을 위해 공간을 내어주는 곳이 2013년 132곳에서 2016년에는 220곳(2016년 10월 기준)으로 늘어났다. 심지어 일반 결혼식장과 비교했을 때 비용이 1/10 수준으로 저렴한 편이라고 한다. 대관료가 무료인 경우도 많고 유료라 해도 10만 원 선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허례허식 없는 합리적인 결혼을 꿈꾸며 스몰웨딩 대열에 합류했다. 친지들과 가까운 친구들만 초대하는 초소형 결혼식은 부모님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포기해야 했지만 친환경웨딩만은 그대로 밀고 나갔다. 일반 웨딩홀은 선택의 폭이 제한적인 데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생화 장식 등 불필요한 낭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번 하는 결혼인데 뭘 유난이냐고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한 번 하는 만큼 철학을 담아 제대로 진행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머리 속으로 스몰웨딩에 대한 청사진을 그린 후 우린 공공시설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대관하고 싶어? 청소해.

공공기관 중에서도 인기가 많은 곳은 90일 전 신청을 받는다. 인기가 많은 야외 결혼식 역시 1월에 신청이 마감되는 경우도 있다. 고심 끝에 우리는 스몰웨딩의 메카라고 불리는 A구청의 문을 두드렸다. 보통 공공기관은 웨딩을 진행하는 공간과 식당이 떨어져 있어 하객들을 안내하기가 까다롭다. 어설프게 방향 표시만 해두었다가 배고픈 하객들이 헤매기라도 하면 단번에 불편하다는 소리가 나온다. 굶주림에 지쳐 포효했던 내 경험이다. 반면 A구청은 웨딩 공간과 식당이 가까운 건 물론 공무원들도 협조적인 편이어서 예비부부들에게 인기가 높다.


“00 구청에서 결혼을 진행하려고 하는데요. 1~2월 중으로 가능한가요?” 두근대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대답을 기다렸다.

 불가합니다.”


이유를 듣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심장이 막 터진 풍선껌처럼 쪼그라들었다. 공공기관 에너지 정책상 1~2월에 난방을 충분히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아. 그럼 난방비를 내면 되겠다 싶어 난방비를 지급한다고 했다. 그래도 안 된단다. 심지어 7~8월에도 못 한단다. 이번엔 냉방비 때문이다. 아무리 친환경을 지향한다고 해도 기본적인 냉난방은 해야 하지 않나. 선사시대도 아니고 옷만 걸치고 덜덜 떨면서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럼 봄, 가을에 결혼하면 되지 않느냐고? 무려 오프라인 접수에 선착순이다. 최첨단 LTE, 광대역 WIFI 등 인터넷만큼은 유전처럼 터져 나오는 이 나라에서 오프라인접수라니.


누굴 탓하랴. 스몰웨딩을 우습게 봤던 내 잘못이다. 재빨리 B구청으로 눈을 돌렸다. 여긴 우리를 신데렐라로 만들 작정이었다. 웨딩이 끝나면 대관한 강당의 물청소를 하고 가란다. “12시가 되면은 문을 꼭꼭 닫는다”도 아니고, 신랑신부가 마법에 걸린 것도 아니고 청소라니요. 우리가 못하면 누구라도 남아서 해야 하는데 잔칫날 청소를 대관절 누구에게 시킨단 말이냐. 피곤에 쩐 양가 부모님? 축하해주러 온 친구들? 웨딩업체?


아, 됐다. 이제 C시청으로 간다. 대중성은 물론 지리적인 장점도 뛰어난 곳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웨딩 문의 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 여기 불편해서 잘 안 하려고 하는데. 여기서 결혼하지 마세요.”


뭘 물어보기도 전에 담당자는 짜증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로 결혼을 하지 말라는 말부터 건넸다. 결혼식을 진행하면 담당 공무원들도 출근해야 된다는 얘길 들어서인지 어느 정도 이해를 해보려 했다. 헌데 답사조차 어려운 건 납득이 되질 않았다. 진행하는 행사가 있으니 슬쩍 보고만 가라는 거다. 몇 명이 들어갈 수 있는지, 버진로드 길이는 얼마나 되는지 몰래 확인해보려 했지만, 행사를 방해할까봐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답사를 한 번 더 가볼 수 있는지 문의하기 위해 다시 한번 수화기를 들었다. 통화연결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담당자 목소리가 바뀐 느낌이 들었다. 불안은 결혼을 잠식하는 것일까. 근 한 달 이상을 소통한 담당자가 퇴사했단다. “이게 말이냐, 똥이냐”를 외치기도 전에 충격적인 말도 나왔다. 그 날, 우리가 결혼할 수 없단다. 자체 행사 때문에 절대, 결단코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해서 듣다 전화를 끊었다. 소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빡침이 한순간에 몰려왔다. 너만을 바라보던 날 차버렸어. 나 완전히 새됐어! 가만히 앉아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지 자문해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결혼 예정일을 세 달 앞둔 어느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우린 대행업체와 결혼했다.

지나간 새벽을 다 새면서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하루라도 늦춰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 때문이었을까. 다음 날 아침, 우리는 하객들을 맞이할 수 있는 모처를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골라버렸다. 식장을 골랐으니 마음이 좀 편해질 거라 생각했지만 역시나 오산이었다. 해당 시설 관리교육을 들어야 했다. 공공기관인 만큼 시설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물론 필요한 교육이지만 평일에, 연차를 내고, 그 먼 곳까지 가서 교육을 듣기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이 교육은 우리가 아닌 대행업체가 대신 들어야 했다.


스몰웨딩=셀프웨딩으로 생각해온 우리에게 대행업체는 낯선 존재였다. 허나 생각해보자. 텅 빈 강당에서, 회의실에서 결혼식이 가능할까. 소박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장식은 필요하다. 우리가 스몰웨딩을, 공공기관을 택했다고 해서 곧 볼품없고 허름한 결혼을 하겠다는 건 아니지 않나. 심지어 우리는 이나영, 원빈이 아니다. 얼굴만으로 식장을 빛낼 수 없다.


물론 예비부부가 발품을 팔아 준비할 수도 있지만 불가능해 보였다. 버진로드에 쓰일 카펫, 단상 뒤 스크린을 가려줄 하얀 천, 주례사를 할 단상, 하객석 옆에 놓일 조명까지 이 모든 걸 어떻게! 신랑신부가 다 준비할 수 있겠나. 식사 역시 잔치국수나 도시락을 대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밀밭에서 가족들만 불러놓고 결혼하는게 아니라면 스몰웨딩도 대행업체를 끼고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어디 이뿐인가. 공무원들의 협조를 구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장식 설치는 물론 음악 점검, 동선 확인 등을 위해 적어도 결혼식 전날 저녁부터 준비를 해둬야 한다. 토요일이 결혼 당일이라면 적어도 금요일 저녁엔 공간에 들어가야한다는 의미다. 누가 문을 열어줄 것인가.


다른 날도 아닌 금요일 저녁, 본업도 아닌 일로 직장에 남고 싶은 사람은 없다. 결국 평일에 시간을 내기 힘든 예비 부부를 대신해 대행업체가 설득에 나서야만 한다. 결혼 준비업체 사장님들의 속 타는 사정을 듣자니 괜스레 미안함이 몰려왔다.


셀프 웨딩이 물 건너간 이상 늘어나는 비용도 감당해야 했다. 친구는 근사한 호텔에서 1800만 원을 주고 결혼 한다는데 우리는 스몰웨딩에 1900만 원이나 소요됐다. 이유는 있다. 재활용할 수 있는 꽃과 친환경 음식, 식당을 안내해 줄 안내요원 인건비에 생각했던 것보다 하객수까지 늘어났다. 견적서엔 당초 생각했던 비용을 초과하는 액수가 떡하니 찍혀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결혼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했다. 그것도 불과 7개월 전에 공공기관에서. 스몰웨딩을 올린 우리가 내린 결론은 진짜 스몰웨딩은 예식장에서 하는 거라던 효리느님의 말이 맞다는 거다. 기존 결혼식에 대한 프레임을 깨고 스몰웨딩을 결정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공간 수요가 확보되지 않아 몇몇 곳은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하고, 우리처럼 어렵게 고른다 해도 대행업체 없이는 비합리적인 예산이 소요된다.


사람과 공간에 대한 일관된 투자 없이는 스몰웨딩러들도 한동안 방황할 수밖에 없을 거다. 한 공공기관은 홈페이지에서 신청이 가능한 건 물론, 작은 결혼식을 맡는 담당자가 있어 비교적 진행이 수월한 편이다. 공간도 아름다워 최소한의 장식만으로도 결혼을 진행할 수 있다. 반면 허허벌판인 공간, 또 비협조적인 공무원들과 함께라면 대행업체 없이 무엇하나도 진행하기 힘들 거다. 증거가 필요한가. 바로 여기 있는데. 이제 우리는 스몰웨딩에 대한 정의를 정정하려 한다. “혼자서는 하기 힘든 결혼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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