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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Dec 15. 2022

강함에 관한 단상

사랑한다는 말 없이 사랑에 대해 써보기

누구든 자기를 이해하기 힘든 순간들이 있는 법이다. 지금의 내가 그러듯이.


나는 여름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눈이 오게 시린 지금의 날씨가 제법 맘에 든다. 영하의 추위에 장시간 피부가 노출되어 동상 직전까지 가다가 갑자기 훈기와 맞닿으면 수축된 근육이 풀어지며 잘 움직이지 않는다. 분명 내 손인데도 불구하고 나의 뜻대로 할 수가 없다. 아마 마음도 똑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 중 가장 기초적인 몸에 더불어 마음까지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인간이란 얼마나 안타까운 존재인가.


요즘의 나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 든다. 원래 볼 수 없는 것이 가장 무서운 법이고 그렇기에 불안과 싸우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모순적인건지 이기적인건지 객관적으로 견딜 만한 상황이 오면 꼭 견딜 수 없게 불안해질 때가 항상 뒤따라 온다. 


불안도 습관이다. 쉽게 자주 불안해할수록 사람은 불안정해지니까. 불안을 이유로 주위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싶지 않다. 귀찮게 하고 싶지도 않다. 사람은 평생 본질적으로 혼자라는 사실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고, 어떤 찰나의 순간에 어떤 소중한 사람들이 존재하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살아보니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기댄다는 것은 하나의 빚이다. 그 대상이 아닌 나 자신에게. 언제든 갚을 때가 온다. 분명 그런 때가 올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사랑에 빠졌지.


나는 약한 사람이 아니다. 신체적으로 연약하지도 않고 정신적으로도 연약하지 않다(진짜 연약했다면 이런 글 같은 것은 쓰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기 때문에 완전하지 못하다. 스스로의 결함을 마주하는 일은 굉장히 많은 노력을 요한다. 내가 온전히 나만을 바라보던 그 수많은 밤과 새벽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었다.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는 금기의 영역으로 약속되었다. 그 영역은 문이 없어서 타인이 들어올 수 없다. 


무던하고 화가 없는 것 같다는 말을 간혹 듣는다. 더 정확히는 내가 질투하고 싫어하며 화를 내는 대상은 항상 남이 아닌 나 자신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거니 싶다. 남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져서 무엇 하나 좋을 것이 없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만 줘도 모자란 아까운 시간이다.


한번 무언가를 정하면 그 선택을 잘 바꾸려 하지 않는다. 상황에게도 사람에게도 모두. 자각은 오래 걸리지만 일단 한번 마음에 담기로 했으면 그냥 담고 있는다. 이해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다 소진될 때까지 계속. 평생 떨어져만가도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그냥 그런 거겠지. 억지로 덜어내려고 하니까 자꾸 사단이 난다. 


확증적 사고는 오랜 습관이다. 모든 것에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내려 하는 이 습관은 개인적으로 고치고 싶지만 아마 못 고칠 것 같다. 난 아직도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 내가 싫지는 않다. 원래 이해할 수 없고 계획에서 벗어나는 일들이 가장 재밌는 법. 안타깝지만 아름다운 것들. 사실 모든 사람은 본인의 진심을 알고 있고 그걸 입 밖으로 혹은 손가락 밑 자판에 표현하느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렇기에 나는 사랑한다는 문장 없이 사랑에 대해 써내릴 수 있고, 그건 다 내가 본질적으로 강한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가능한 일이다. 평생 불안해할 것을 감내하고 마주하는 나는 충분히 강하다. 


분명 새벽에 눈이 내린다고 했었는데. 당신과 함께 있던 마냥 고요하기만 하던 그 시간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 당신을 향한 마음을 덜어내려던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눈이 내린다. 그리고 쌓여간다. 제대로 덮을 수도 없게. 올해는 그렇게 싫어하던 여름의 공기가 코가 아리게 달아서였을까. 지금 내리는 이 눈과 겨울의 공기가 내게는 너무 차다. 


잠든 얼굴을 보며 한참 생각한다. 덜어내는 건 너무 힘든 일이야. 새벽. 그 라운지에서 수줍게 노래하던 나와 한껏 진지했던 당신. 함께 하던 시답잖은 장난들. 그 모든 분위기. 상황. 눈빛같은 것들. 이번에도 호의를 확증적으로 해석해내고야마는 나.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난 그 손을 잡을 수 없겠지.


나를 마주하는 일은 앞으로도 어렵겠지. 지나간 과거와 지금이 아닌 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모르는 법. 


그래서 영원히 알 수 없는 일들로만 가득할 나의 삶에 애착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주 영원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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