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디자인 - 잘못은 항상 디자이너와 그의 디자인에 있다
우리는 종종 물건을 잘못 사용한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다. 지금까지 많은 디자인들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간과해 왔다. 사용자인 인간에게 마치 컴퓨터처럼 정확한 값을 입력하고 출력하길 기대하고, 그들이 실수하면 “땡! 틀렸습니다.”, “땡! 잘못 눌렀습니다.”하고 인간을 조롱하는 듯한 메시지를 보내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바보라고 느끼게 만들곤 했다.
그러나 사용자는 절대 바보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잘못한 것은 사용자가 아니다. 인간을 억지로 기계에 맞추려고 한 디자인이 잘못된 것이다. 도날드 노먼은 그의 책 The Deaign of Everyday Things에서 이 점을 지적한다.
Google에 "Norman Doors"라고 검색해보면 재미난 결과를 볼 수 있다. 도널드 노먼은 그의 책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에서 '미시오'인지 '당기시오'인지 늘 헷갈리게 하는 문을 잘못된 디자인이라며 조목조목 불평한다. 이 책을 통해 노먼의 문에 대한 불평불만이 너무나 유명해진 까닭에, 사람들은 불편한 문을 아예 'Norman Doors'라고 부르고 있다.
위의 문 사진을 보자. 이 문은 밀어야 하는 문일까 당겨야 하는 문일까? 분명 'PULL'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씌여 있으니 당기는 문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문을 마주치면 당기기보다는 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럴까?
위 사진에는 'PULL', 즉 '당기시오'라고 씌여 있다. 그러나 손잡이의 디자인은 밀기 편하게 납작하고 평평한 형태이다. 손잡이의 평평한 판 부분은 손바닥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넓다. 당기기보다는 밀기 쉽게 생긴 손잡이다. 우리는 문을 밀 때는 손바닥으로 밀고, 당길 때는 손잡이를 손으로 쥐며 당긴다. 밀어야 하는 문의 손잡이는 넓어야 직관적이고, 당겨야 하는 문의 손잡이는 손으로 움켜쥘 수 있는 형태여야 직관적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위의 사진에서는 서로 다른 두 Signifier가 충돌하고 있다. 손잡이의 넓고 평평한 형태는 'pushing'이라는 Affordance를 나타내는 Signifier이다. 한편, 'PULL'이라는 영어 Sign은 'Pulling'이라는 Affordance를 나타내는 Signifier이다. 이처럼 이 디자인에서는 서로 다른 Signifier들이 서로 충돌하며 사용자의 혼란을 불러오고 있다.
따라서 위의 사진과 같은 문을 마주쳐 당겨야 하는데 얼떨결에 밀었다면, 그것은 당신의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디자이너의 실수다. 혹은 잘못된 형태의 문을 설치하고 그것을 당기도록 요구한 건축가나 건설업자, 건물주, 건물 관리인의 실수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사이버관에서 찍은 엘리베이터 사진들이다. 이 건물에는 총 세 대의 엘리베이터가 있다. 하나는 홀수층, 하나는 짝수층, 나머지 하나는 전층 운행을 한다.
문제는 학교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 사실을 모르고 홀수층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채 짝수층 버튼을 누른다는 것이다. 가지 않는 층 버튼을 눌러봐야 눌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당황하여 계속 버튼을 연이어 누르게 되고, 보다 못한 학생들이 엘리베이터의 비밀을 알려주곤 한다. 학생들이 친절하게 알려주기에 큰 문제는 아니지만, 나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는 사람들이 종종 같은 문제를 겪는 걸 보면 이것은 사람의 잘못이기보단 디자인상의 문제이다.
사진을 보면 분명, 엘리베이터 옆에는 층 운행과 관련한 안내 Sign이 붙어 있다. Signifier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Signifier는 글씨 크기가 너무 작고 가독성이 떨어진다. 처음 사진을 통해 보면 알 수 있지만,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쉽게 지나쳐버릴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내부에는 운행하는 층수에 대한 정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 우리는 닫히기 직전의 엘리베이터에 뛰어와 탄다. 종종, 다른 사람들이 버튼을 먼저 누르면, 뒤에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폰을 본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주의 깊게 주변을 관찰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큰 글씨로 흰 바탕에 빨간색으로 쓰인 경고문 구조차 가끔은 우리의 시야에 포착되지 못한다. 하물며 조그마한 검은 글씨로 어두운 바탕에 써진 문구라면, 인지하지 못한 채 지나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Sign은 아름답기 이전에 눈에 띄어야 한다. 눈에 띄지 않으면 인지할 수 없다. 홀수층 운행 엘리베이터에 잘못 타서 다급하게 4층 버튼을 누르고 있는 당신에게 잘못은 없다. 잘못은 충분히 눈에 띄도록 운행 층수 정보를 표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다.
인터넷을 사용하다 보면 404 에러를 종종 마주하게 된다. 404 에러 페이지는 사용자가 존재하지 않거나 실종된 페이지에 접근하고자 할 때, 사용자에게 해당 페이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페이지이다. 대부분의 경우 '404 Page Not Found'라는 형태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기존의 404 에러 페이지가 사용자로 하여금 실수했다고 인식하게 해 사용자를 실망시키는 데에 있다. 404 페이지는 보통 딱딱한 형태의 영어 표현과 무엇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복잡한 기술적 용어로 표현된다. 사용자 입장에서 404 페이지를 마주하는 것은 굉장히 불쾌하고 실망스러운 경험일 수밖에 없다.
요즘 몇몇 사이트에서는 이러한 404 에러 페이지를 재미있게 구성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를 통해 사용자의 실망감을 줄여주거나 사용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시켜주고 있다. 몇몇 사례들을 살펴보도록 한다.
사용자를 안심시키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알려준다. 실망감과 분노감으로 가득 찬 마음이 조금은 안정될 것 같다.
페이지가 연결되지 않았음을 레고를 이용하여 코드가 뽑힌 것으로 시각화해 보여주고 있다. 레고 인형들의 표정과 제스처 하나하나가 코믹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화난 마음이 누그러진다.
물론 기대하던 페이지가 뜨지 않는다면, 이는 실망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404 페이지라면 그 실망스러움도 조금은 줄어들 것 같다. 이처럼 디자이너는 사소한 것에서도 사용자를 배려해 그의 만족감을 높여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사용자도 당연히 실수를 한다. 그렇지만 UX에서는 굳이 사용자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전제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더 도움이 되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적당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두고 이것도 '사용자가 실수해서', 저것도 '사용자가 잘못해서'라며 책임을 사용자에게 돌려봐야 UX는 발전하지 못하고, 제품이나 서비스는 개선되지 못하며, 시장에서 고객들에게 외면받게 된다. 잘못을 사용자에게 돌려봐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용자의 불만만 늘어날 뿐.
반대로 잘못을 디자이너, 개발자, 혹은 기획자 자신에게 돌리면, 불편은 개선되고 고객만족은 증대되며 자사의 제품 및 서비스의 경쟁력은 증대된다. 잘못을 디자이너 자신에게, 제품이나 서비스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되는 발상이다.
UX 디자인이란 결국 사용자의 불편을 줄이고, 사용자가 실수하지 않게, 생각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나아가 사용자를 만족시키고 사용자가 긍정적인 경험을 얻어나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UX를 디자인할 때는, '사용자는 결코 실수하지 않는다'를 마음속에 항상 생각하며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음은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에서 디자이너들에게 하는 조언을 번역한 것이다.
사용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잘못 사용하더라도 사용자를 비난하지 마라.
사용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것을 개선 가능한 부분을 나타내는 Signifier로 받아들여라.
컴퓨터 시스템에서 에러 메시지들을 없애라. 대신 도움말과 가이드 메시지를 충분히 제공하라.
도움말과 가이드 메시지를 통해 문제가 바로 해결될 수 있게 하라. 사용자가 계속해서 일을 진행할 수 있게 하라. 진행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지 말고 부드럽고 지속 가능하게 하라. 결코 사용자가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시작부터 다시 하게 하지 마라.
사용자가 사용한 방법이 부분적으로는 맞다고 가정하라. 만약 잘못된 방법을 사용했다면, 가이드를 제공해서 사용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도와라.
본인이 소통하는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도날드 노먼의 이 몇 가지 지적들만 지켜지더라도 디자인은 지금보다 훨씬 사용자에 친숙하게 발전할 것이다.
참고문헌 및 출처: Donald A. Norman,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 2013, Basic 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