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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정산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45

by 노루

나는 뭔가 다짐할 때 일 년 열두 달을 가정하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가 돈을 모아야 할 계획이 있다면 내 월급과 남편의 월급을 모으고 한 달 생활비를 뺀 뒤 12를 곱해 일 년이면 모을 수 있는 돈을 미리 셈하고,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엔 주 1회 쓸 때 일 년에 모이는 48개의 알록달록한 글뭉치를 상상한다. 책을 한 달에 한 권 읽어서 남는 12권을 생각한다. 항상 반복되는 식은 곱하기 12. 이렇게 생각하면 나는 참 많은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내가 만들어낼 결과물은 커다랗고 거대하다. 중간에 끝나도 문제는 없다. 다시 하면 되니까.


해마다 12월이 되면 남편과 올해의 영화, 드라마를 마음대로 정해보고 올해 가장 잘한 소비와 좋았던 여행지를 정산한다. 달마다 적은 비용 정산표를 보고 올해의 수익과 지출을 따진다. 기준은 딱 1년이다. 2025년이라는 한 해 동안 우리가 해낼 것과 해낸 것을 따져보는 것이다. 생일이 12월인 내게 남편이 써주는 생일편지는 항상 그 해를 보낸 소감과 다음 해에 대한 다짐이 담겨 있어 우리들의 간략한 한 해 정리와 마찬가지다.


연말이다. 날은 추운데 노란 알전구가 하도 많이 보여서 왠지 따뜻한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다짐과 각오와 알 수 없는 좋은 기대를 하게 되는 때다. 희망인 줄 알았던 것들이 실제로는 희망이 아니었던 2025년이었다. 그래도 올 한 해를 되돌아보면 헤쳐 나온 나에게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다 쓴 달력 안에는 치열하게 바빴던 한 해의 내가 들어있다. 그 안에 들어있는 또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보며 고마웠던 기억을 다시 생각한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수고했다 여겨주지 않을 나를 일부러 또 되새겨본다. 나를 기대하게 만들었던 2025라는 큰 꾸러미가 가고 이제는 또 새하얀 2026 꾸러미가 오겠다.


나는 올해 브런치에 65개의 글을 썼다. 내년에도 최소한 48개의 글을 쓰고 싶다. 해가 밝으면 언제나 그랬듯 깨끗하고 빳빳한 새 노트를 꺼내 [2026 새해 목표]라고 적을 것이다. 또 한 치 앞도 모르고 다음을 기대하게 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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