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44
더위가 가시고 공기가 차가워지면 시장과 마트에 봉지굴이 먼저 나온다. 깨끗하게 손질된 생굴을 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3봉씩 먹을 수 있다. 신선한 바다향을 가득 품은 생굴. 마늘 고추 편썰고 초장 찍어 한입에 넣으면 입안에선 한 순간에 철썩철썩 파도가 치는 것이다. 머리끝까지 시리고 차가운 겨울 바다처럼. 그게 굴 한 알에 다 들어있다.
이맘때는 해산물의 계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우가 포문을 연다. 대하소금구이의 철을 지나, 주꾸미 갑오징어가 먹물을 뿜는 동안 광어 우럭엔 촘촘히 지방이 쌓이고 김장철 굴보쌈에 행복해하고 있으면 금세 대방어의 고소함이 코앞에 성큼 다가온다. 백합과 바지락만 넣고 대충 끓인 칼국수의 맛도 제대로 시원하게 올라오는 요즘. 하다못해 복작복작 끓는 어묵탕마저 제일 맛있는 철을 꼽으라면 지금이다. 이제 알도루묵과 양미리구이 먹는 맛이 또 제철이겠다.
바다에서 난 음식은 바다 맛이 난다. 짜고 깊은 물의 맛. 신선하고 깨끗한 맛. 해마다 그렇게 흐르면서도 고요하고 가끔은 요란하고, 그럼에도 어딘가 한결같은 바다 저 아래에서는 뚜걱뚜걱 게가 거닐고 누군가는 한 번에 몇억 개의 알을 낳고 어떤 것은 버려진 밧줄에 붙은 먹거리를 찾아 오물거리고 또 모래인 척 색을 바꾸고 먹이를 기다린다. 나는 자연의 과하지 않음이 좋고, 성실하고 꾸준히 살찌우고 몸을 불려나가는 각종의 생물들이 좋다. 그렇게 그들의 품에 쌓인 바다만의 코끝이 싸늘해지는 맛을 좋아한다. 이렇게 추운 날 아주 차가울 바다 아래에서 올라온 먹거리가 전해주는 시리고 시린 해수와 생명의 맛을 내가 여기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고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