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색스, <의식의 강> 리뷰
목요일, [단숨에 책 리뷰]
열아홉 번째 책 : <의식의 강>
우주 대폭발(빅뱅)이 만들어 낸 에너지가 여러 방식으로 조합하고 분해되어 지금의 우리가 만들어졌다. 이 문장을 생각하면 괜히 위로받는 느낌이다. 이 말은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이 그의 딸 샤샤 세이건에게 해주었다는 말이다. 이 문장을 생각하면 내가 영원한 존재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주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최근에서야 알게 된 거지만 과학은 참 재밌는 것 같다. 내가 일찍 이런 과학의 재미를 알았더라면 아마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말이다. 나를 '과포자'로 만들었던 고등학교 화학 시간이 아쉽다. 우리는 문과와 이과가 다르다고 말하지만, 궁극적인 의미에서는 문과와 이과가 하나 되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인문-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고민하는 질문들 내놓는 대답들 그대로, 과학도 내놓을 수 있다. 결국은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 우리는 어디에서 왔느냐, 우리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법칙은 뭐가 있느냐, 우리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느냐 같은 질문들에 답하는 일이었다.
이번에 읽은 올리버 색스의 <의식의 강>도 이와 비슷했다. 올리버 색스는 영국의 신경의학자다. 이 책은 그가 남긴 열 편의 에세이를 엮은 것이다. 책에서는 과학, 의학 얘기를 하지만 결국은 인간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관한 얘기는 인상 깊었다.
우리는 직접 겪은 기억과 남이 말해줘서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을 헷갈릴 때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2차 대전 당시에 겪은 사건과 겪지 않은 사건을 혼동했던 경험을 얘기하면서 말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뇌가 사실은 정보의 출처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타인이 말하고 생각하고 그린 것 등을 종합해 1차 기억인 것처럼 생각하는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무의식 차원에서 표절시비도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대중음악계에서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지 않는가. 여기까지만 들으면 부정적인 얘기 같다. 하지만 올리버 색스는 색다른 시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본다.
그는 이런 능력 덕분에 나와 타인은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타인이 얘기해주는 것을 내가 실제로 겪은 일처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우리는 일종의 공동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마음에 들어가 볼 수도 있고, 타인과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오묘한 일이지 않는가. 뇌가 정보의 출처에 관심이 없고 기억을 혼동하는 것이 이렇게 긍정적일 때도 있다니 말이다. 이는 철학책에서 인간에게는 공감능력이 있다는 것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이다.
과학을 통해 위로받는 경험을 할 때도 있었다. 요즘 시대는 독창적인 것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시대다. 자기소개서에다 경험을 하나 쓰더라도 독창적인 뭔가를 한 사례가 아니라 남이 이미 했던 것을 모방한 것 같은 느낌을 쓸 때면 '나는 그동안 뭐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는 이 얘기도 이런 방식으로 답변한다.
아이디어는 늘 떠돌아다닌다. 왜 남의 것을 차용하거나 모방하거나 베끼거나 영향받는가가 문제가 아니다. '차용하거나 모방하거나 베낀 것을 갖고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다. 다시 말해서, '남의 것을 완전히 소화시켜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 자신의 경험, 생각, 느낌, 입장과 혼합하여 얼마나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157쪽)
그러면서 지금 당장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왜냐하면 "어떤 문제가 의식적 사고에서 벗어나 마음이 텅 비었거나 다른 일에 한눈이 팔려있는 동안에도, 뭔가 능동적이고 강렬한 무의식(또는 잠재의식, 또는 전의식)이 작용하는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다른 일을 하다 보면 우리의 뇌는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문득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얘기도 과학적 사유에다 인문학적 사유를 더한다. 독창 이전에 모방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면서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사회 운동가인 수전 손택의 얘기를 차용한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정신적인 대식가이자 여행가"라고 표현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좋은 글을 보면 수 없이 흉내 내는 연습을 했다. 모방 과정을 통해 훗날 독창적 사유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깊은 통찰을 위해선 망각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선 앙리 푸엥카레라는 수학자의 경험을 빌려온다. 앙리 푸엥카레는 언젠가 "특별히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려고 씨름했지만,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자 크게 좌절했다."라고 한다. 그리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지질탐사를 떠났는데 "여행 도중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경험을 얘기했다고 한다. 사실, 우리도 비슷한 경험 다들 있지 않은가. 갑자기 샤워하다가 혹은 자기 전에 안 풀렸던 문제의 아이디어가 딱 떠오르는 느낌 말이다.
어째 이 이야기를 읽으며 '그러니까 그대, 쫄지 말라'는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특별하지 않다고 하찮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과정으로 가기 위한 모방이었다고 생각하고, 그 속에서도 분명 새로운 의미는 있었을 것이며, 지금 생각나지 않는다 해도 우리 뇌는 계속해서 답을 찾고 있을 것이므로 망각, 숙성하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얘기를 할진대 어찌 과학이 재미없다고 할 수 있으랴. 이전에 <모든 순간의 물리학>에서도 얘기했지만 과학은 참 오묘하다. 오죽하면 스티븐 호킹은 <시간의 역사> 말미에서 이런 얘기를 했겠는가. 우주의 원리는 이전에는 과학자와 철학자가 함께 고민하던 것이었는데, 현대 과학이 너무나도 복잡해지면서 철학자와 과학자의 이런 교류가 없어졌다고. 우주의 원리가 밝혀지는 것은 신의 섭리를 아는 것이며, 인간 이성의 위대한 승리가 될 것이라고. 다시 철학자와 과학자가 우주와 인간의 삶을 함께 논할 수 있도록 자신은 물리학 책을 쉽게 써보려고 노력했다고. 그러니까 본질은 과학과 인문학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문/이과가 서로를 무시하는 농담을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거두고 다시 생각해야 한다. 결국은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