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터 이경헌
닷밀(.mill)
혼합현실 콘텐츠 제작사. 미디어 파사드와 퍼포먼스를 결합한 ‘미디어 퍼포먼스’를 국내 최초 상용화했다. 주요 프로젝트로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의 프로젝션 맵핑’, ‘삼성 갤럭시 언팩’, ‘남북정상회담 환송공연’, ‘방탄소년단 홀로그램 스테이지’ 등이 있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정해운 대표는 3학년 선배였다. 선배의 졸업작품을 도와주면서 서로 꽤나 친해지게 됐고, 졸업하고서도 프리랜서 일을 함께 하는 사이가 됐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는 중에 갑자기 닷밀이 설립됐다.
사실 뭐 이름만 생겼을 뿐이지 별다른 게 있을까 싶었다. 회사가 이렇게 커질지도 몰랐고.(웃음) 그런데 정 대표님은 내 예상을 가뿐히 뛰어넘는 사람이었다. 어느덧 직원분들이 50명이 됐다. 나야 이름만 이사일 뿐이지, 경영에는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 그게 회사를 위하는 것이기도 하고.
하하. 뭐 굳이 내 얘기를 하고 다닐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내가 닷밀에서 하는 일은 개인작업인 경우가 많다. 팀 단위의 공동작업을 했다면 더 많은 분들과 친해졌겠지. 그런데 무엇보다, 원래 내 성격이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웃음)
굳이 업무적 직책을 얘기하면 디렉터다. ‘미디어 퍼포먼스’ 작업은 거의 도맡아서 하고 있고, 영상물 같은 비교적 소규모 작업들을 책임지고 있다. 닷밀 시작할 때부터 해왔던 작업이니 속도가 워낙 빠르기도 하고, 리듬감 있는 영상에 자신이 있어서 회사 쇼릴 영상도 꾸준히 만들어오고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비트박스와 랩을 하던 게 시작이었다. 영상에도 관심이 많아서, 대학에 입학하고 나선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친구들을 찍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막상 대학을 가니 학과 생활이 너무 바쁘기도 했고, 친구들은 하나 둘 랩을 그만하더라. 나도 그렇게 잠시 꿈을 접었고.
고등학교 때같이 랩하던 친구가 작곡가로 활동했는데, 함께 하자는 제안을 줬다. 어쩌다 보니 발매까지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어리고 순진했다. 한 번에 빵 터지길 기대하고 키치 한 음악에 집중했다. 노래가 성공하면 닷밀의 계열사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확장할 계획까지 가지고 있었으니까. (웃음) 뭐, 결론적으로 잘 되지는 않았다.
음… 사실 첫 싱글 이후로 힘이 급격하게 빠졌었다. 작업은 게을러지고 그냥 열심히 일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1년쯤 지났을 때 좋은 기회가 왔다. 원래 일본 힙합을 좋아했는데, 일본에서 나름 유명한 래퍼와 작업할 기회가 생겼다. 여자친구가 일본인이라, 일본어도 쉽게 익혔고.
일본에서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매체 인터뷰도 하고 공연 제안도 오고.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한국에서는 못한 경험들이었다. 재미있는 건, 일본 활동 덕분에 한국에서 알아주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났다는 거다. 작업에도 다시 속도가 붙었고, 뮤직비디오만 스무 개 정도는 공개한 것 같다.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니까. 모든 뮤직비디오는 내가 직접 연출하고 편집한다. 내가 닷밀에서 작업하는 영상물들도 다이내믹한 연출 분야다 보니, 매번 같은 작업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향후 작게라도 뮤직비디오 사업부를 운영해보고 싶다. 그럼 완벽한 덕업 일치가 이뤄질 수 있겠지.
예전에는 ‘한 방’ 만을 바라봤는데, 지금은 그냥 느긋해졌다고 해야 할까. 지금처럼 그냥 이렇게 하고 싶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고 싶다.
잘 되겠지. 모두가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 할 게 확실하니까. 내가 제일 문제인 것 같다. 나만 잘하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