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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덕 CONATUS Apr 15. 2018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 책임

122_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변명 보험입니다

2주일 전 상하이에 출장을 갔다가 인천으로 귀국하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이륙하고 나서 조종사가 기내 방송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기장입니다. 저희 항공사를 이용해주시는 고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희 비행기는 상하이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인천공항까지 가는 항공편입니다. 목적지까지 최선을 다해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런데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최선을 다했지만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 아닙니까. 활주로를 이륙한 비행기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해야 합니다. 그것이 조종사의 임무이자 사명입니다. 따라서 조종사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가 아니라, 반드시 목적지까지 도착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제가 이 예를 든 것은 항공기는 다른 것과 달리 하늘을 나는 것이고 이륙하는 순간 반드시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현재까지의 전제조건에서 말한 것입니다. 항공기는 종합과학기술의 결집체라 조종사 한 사람의 책임으로 완벽한 이륙과 착륙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하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조종사는 없습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를 새겨보려는 의도임을 밝힙니다. 


이런 일은 항공사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그렇지만 그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했던 회사는 아직도 건재하고, 그 제품을 취급하고 팔아서 이익을 챙겼던 유통기업들도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관련된 제조업과 유통업체는 여러 곳입니다. 유통업체 가운데 한 곳에서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는 메시지를 보면 고객의 아픔에 공감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쓰여 있습니다. 생명을 앗아간 제품을 판매하고 나서는 피해를 본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한다고 합니다. 공감이란 무슨 말입니까. 단 한번, 한 개 밖에 없는 생명을 잃은 고객에게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공감한다는 말입니까. 또 이 회사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노력이 최선을 다하는 것인지, 최선을 다하는 노력의 결과가 무엇인지 무엇으로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요. 더욱이 대표이사의 공표가 아니라 홍보실 직원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홍보실 직원이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을까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책임을 질래야 질 수가 없는 법입니다.


드러커는 경영의 결과란 '삶의 변화'로 측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훌륭한 경영의 결과는 '삶의 긍정적 변화'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그 삶은 구성원의 삶과 고객들의 삶이어야 합니다. 유통대기업들이 목숨을 잃거나 큰 후유증을 않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자기들의 매장에서 구입한 고객들을 상대로 실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이제 폐기해야 합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끝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한다는 말은 고객이 입은 상처를 끝까지 치유하겠다는 약속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2018년 12월 사립유치원 협회장이 공개적으로 한 말 속에서도 앞으로 유치원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정치인들도 불법행위가 걸리면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고, 감옥까지 갔다온 대기업 경영자들도 같은 말을 합니다. 이것은 모두 변명보험에 가입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이타심을 발휘하겠다고 한다면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고 해야 합니다. 개인을 비롯한 모든 공동체는 이기심으로 시작해서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없습니다. 


어떤 기업이 훌륭한 기업인지 알아차리시기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 대신에 피해를 입은 고객들에게는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다시 해야 합니다. 그것이 고객들로부터 제발 지속 생존해달라고 응원받을 수 있는 기업의 자격이자 기준입니다.


신고되어 인터넷에 공개된 것만으로도 지금까지 239명, 비공개 통계로는 훨씬 많은 사람들의 사망원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기업이 여전히 건재한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만, 이것은 '고객이 있는 한 기업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시장원칙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낡은 것,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모조리 시장과 고객이 구성원인 사회가 떠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제는 타인의 처분에 생명을 맡기는 고객이 아니라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 현명하고 용감한 고객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이라는 도구를 활용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데카르트 선생님이 우리에게 한 말,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것을 기억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어달라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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