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탈모인의 성지 여행

알고보니 당진면천읍축제를 앞두고 있었다

by hohoi파파

“탈모는 용서 못한다.”


이번 면천 여행은 내 의지로 간 여행은 아니었다.
아내가 보내서 간 것이다.

어느날 아내가 캡쳐한 인스타그램 이미지 사진을 보냈는데

처음엔 맛집에 줄이 길게 서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탈모인 성지라 불리는 의원이었다.

머리카락이 점점 얇아지고 숱이 줄어든다는 건 느끼고 있었지만 잘 버텼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말에 떠밀리듯 날을 잡고 홀로 당진으로 떠났다.


콩수집 사장님은 무표정하다.

손님이 들어와도 그 흔한 “안녕하세요” 인사조차 없다.
느긋하게, 겉절이를 담은 찬그릇과 작은 물통을 챙길 뿐이다.

그릇을 테이블에 놓으면서도 “뭐 드시겠어요?”라는 말은 없다.
손님이 “콩국수 주세요.” 하면
짧게, “네.”
그게 전부다.

처음엔 불친절하다고 느꼈지만,
이상하게 그 무심함이 정이 가고 편안했다.
가게 안에서 손님과 몇 마디 나누는 모습에는 묘한 다정함이 느껴졌다.

어느 손님이 “김치 싸가도 돼요?” 묻자
“싸가요.”
무심하게 툭 건네는 말 한마디에 시골스러운 츤데레가 배어 있었다.

운 좋게 계절 한정 메뉴인 서리태 콩국수를 맛볼 수 있었다. 내일까지 판다고 하셨다.


면천은 당진면천읍축제를 앞두고 있었다.
행사장 곳곳에 부스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한쪽 끝자락에는 거대한 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1100년 가까이 살아온 은행나무였다.
천연기념물 제551호로 지정된 나무라고 한다.

천년을 넘게 버텨온 나무는 압도적이었다.
가을이 짧아서인지, 너무 오래 살아서인지,
잎은 샛노랗게 물들지 못했고
푸른빛과 붉은빛이 섞인 채 끝이 바짝 말라 있었다.

나는 한참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행사장 길 건너편에는 [오래된미래] 서점이 있었다.
2층 주택에 기와 지붕이 얹힌,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올 법한 오래된 가옥이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입구에 걸린 액자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코너 한켠에는 노무현 대통령 관련 책들이 놓여 있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벽면에는 지역 작가들의 작품이 책 표지로 전시되어 있었고,
이색 그림책들도 눈에 띄었다.
‘오래된 미래’라는 이름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아래쪽으로 조금 더 걸으니 공출판사가 나타났다.
누군가의 집이었을 법한 황토벽 한옥 건물.
출판사 안이 궁금했지만 오픈된 공간은 아니었다.

다음 일정을 위해 차에 올라타야 했다.
3.10 학생독립만세운동기념관에 들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예전에 아내와 함께 당진에 왔던 날이 떠올랐다.

드라마 촬영지였던 합덕성당을 보러 갔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신리성지에 들렀다.

그날 들렀던 부추 탕수육 맛집은 결국 영업하지 않아 맛보지 못했지만
빵집은 이미 대형 카페인 2호점이 생겼다.

라테 한 잔을 시키고 잠깐 한숨 돌렸다.

아내에게 가지 못한 콩국수 집 사진을 보여주니

“여긴 어째 찐 가게 같네.” 하고 웃었다.

초원사진관이 아니라 초원콩국수.
여름 한철만 영업하는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2026년 4월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만약 머리카락이 난다면 6개월 치 약을 처방 받았으니

1년에 두 번쯤은 다시 당진에 오게 될 것 같다.

오전 8시 30분 두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발해

퇴근 시간에 맞춰 오후 4시 30분에 집에 도착한 여행,

오래 머물지 못해 더 아쉬웠던 여행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새싹꿈터샘의 뇌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