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나도 모르는 사이 불현듯 나를 삼킨다
네 살 아들의 마음 일기 [무섭다]
엘리베이터에서 내 손을 끌고 황급히 나가는 아들무섭다: 위험이나 위협으로 느껴져 마음이 불안하다
어느 날 아들이 어린이집 가기를 거부했다. 처음에는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서 떼쓰는 줄 알았다. 나와 달리 아내는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아들의 말과 행동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아내 말에 따르면 유호가 며칠 전부터 엘리베이터가 무섭다며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 모습에서 아이의 불안을 느꼈나 보다. (엄마의 예민함에 엄지 척, 육아는 아이의 말과 행동에 예민하게 알아차려야 하는 것 같다)
나 엘리베이터 무서워
아이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놀이 활동을 위해 체육관으로 이동할 때 일이 벌어졌다. 일생일대 아들에게 찾아온 첫 위기였다. 체육관으로 이동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고 선생님 지도에 따라 아이들은 3명씩 짝을 이뤘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 나란히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한다. 엘리베이터 문은 열렸고 아들과 함께 다른 친구 2명은 엘리베이터에 탔다. 어떤 이유로 엘리베이터는 문이 닫혔고 다른 층으로 이동했다. 비록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던 시간은 짧았지만 (아이는 공포였을 터) 아들은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경험을 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말처럼 그 날 이후 아들은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을 불안해했다. 어떨 때는 잘 타다가도 어느 날은 무서워했다.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기억이 불안한 마음을 불현듯 일으키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으면 아내나 나의 손을 자기 쪽으로 잡아 끈다.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우리와 함께 타지 못 할까 걱정하는지 불안해했다.
아. 아. 빨리빨리 와, 엘리베이터 오잖아.
엘리베이터는 안 무서워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이미 아들에게 엘리베이터는 불안하고 무서운 대상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더 어깃장을 놓거나 떼을 쓰는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무서운 감정은 무섭지 않다고 이해시키거나 설득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처럼 아들에게 마음을 누그러뜨릴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한참 시간이 지나고 엘리베이터에 대한 불안 반응이 줄었을 때 엘리베이터를 함께 탈 일이 생기면 그때마다 설명을 해줬다.
유호야 엘리베이터는 어른과 함께 타야 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행히 날은 불안해하거나 엘리베이터 타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유호야 화살표 방향을 잘 봐 이것을 누르면 문이 열릴 거야!
만약에 문이 닫히면 이것을 누르는 거야!
울고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방법을 찾아야 해!
(4살 된 아이가 그 상황에서 우는 것은 당연한 건데... 단지, 차분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조용히 나의 말을 듣던 아들은 알았다는 듯 버튼을 눌러본다.
자연스럽게 숫자놀이를 했다. 우리가 가는 층은 몇 층이야?
버튼도 눌러보고 1, 2, 3, 4... 숫자도 알려주었다.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엘리베이터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졌다. 어제도 어린이집 하원 길에 문제의 체육관에 들러서 30분 놀았다. 아들이 겁이 많은 건지 몰라도 무서움을 잘 타긴 한다. 아마 놀이 기구를 잘 못 타는... 즐기지 못하는 아빠를 닮은 듯하다. (왜 그런 걸 닮아서 그러니) 한 번은 처가댁 양파작업을 도우러 아들과 차를 몰고 논두렁 같은 길을 갔다가 차가 빠진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 그 모습에 당혹스러웠다. 아니 과하다 싶었다. 아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겁이 많았는지... 살짝 걱정이 되지만 무서움, 적당한 긴장과 경계는 꼭 필요한 생존 능력 임이라고 위안 삼는다.
아들아 너무 겁먹지 마. 불안하고 무서운 것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어! 아들아. 너를 믿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