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이사한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취미가 생겼다. 근처 마트를 가거나 편의점을 다녀오는 길에도 괜히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언젠가 담벼락 아래 밥그릇이 놓인 것을 본 이후부터다. 밥그릇 앞에 선 여성은 '나비야' 다정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고 주차된 차량 아래서 무언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고양이었다. 그러니까 담벼락 아래 밥그릇은 고양이 사료 그릇이었다.
골목마다 고양이를 위한 밥그릇이 놓여 있었다. 고양이들은 사람이 지나가든 말든 식사에 열중했다. 혹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와 다리에 꼬리를 감쌌다. 이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쓰레기봉투의 냄새를 맡다가 인기척이 들리면 후다닥 어둠 속에 숨던 게 당연했다.
알고 보니 이곳 사람들은 길고양이에 꽤 친절했다. 지자체에서는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지원하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있는 고양이 옆에 멀찍이 자리 잡고 손을 뻗어 등을 쓰다듬는 이들을 쉬이 볼 수 있었다. 고양이도 싫지만은 않은지 거리를 유지하며 등을 내준다. 그래, 지구는 동물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지. 혹시 고양이가 있을까 싶어 차량 아래나 거리 귀퉁이를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여러 번 땅바닥에 시선을 꽂다 보니 비둘기가 보였다. 나는 비둘기가 싫다. 도시 생활에 찌든 깃털이라던가 뾰족한 부리와 같은 생김새 때문이 아니다. 다리 때문이다. 비대해진 몸을 지탱하는 얇디얇은 다리 말이다. 비둘기의 발을 보지 못하게 된 건 아주 어렸을 적으로 기억한다.
골목 어귀를 뒤뚱뒤뚱 걷는 비둘기에게서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왜지. 자연히 다리에 시선이 갔다. 비둘기의 발이 없었다. 그러니까 비둘기는 한쪽 발이 잘린 채 발목으로 걷고 있었다. 한쪽은 발로, 한쪽은 발목으로 절뚝이며 걷는 비둘기를 본 이후로 비둘기의 다리를 보면 눈을 질끈 감는 버릇이 생겼다.
눈을 질끈 감는 건 단순히 보기 싫어서일까? 외면하고 싶은 인간의 이기심을 마주하기 때문 아닐까? 지난밤 과음한 인간이 토악질한 것을, 인간이 버려둔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비둘기가 건강할 리 없다. 비둘기가 먹을 수 없는, 소화할 수 없는 음식물이 허다하겠지. 과다한 유해물질 섭취로 비대해진 비둘기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인간이 얼마나 유해한 존재인지 생각한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 때문에 발목이 잘린 채 절뚝이는 건 더욱더 보기 버겁다. 새 주제에 날지 않고 걷는다는 손가락질은 비둘기가 아니라, 인간을 향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고기를 먹고 일회용품을 사용한다. 지구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상과 지구를 망가뜨리는 행동의 괴리 속에서 나도 이 지구에 유해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때마다 재활용품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것으로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나마 더는 우습고도 이기적인 생명.
길고양이가 도둑고양이라는 오명을 벗고 인간과 더불어 사는 이 동네처럼 언젠가는 비둘기와 공존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 뚱뚱한 비둘기도, 발목이 잘린 비둘기도 없기를. 새답게 푸른 하늘을 훨훨 날기를. 그리고 내가 조금이나마 지구에 도움이 되는 존재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