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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MNI Sep 13. 2020

인어공주

수술 후 가장 큰 후유증은 불면증이었다. 밤낮이 바뀌어 동이 트고야 겨우 한두 시간 남짓 잠드는 생활이 이어졌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니 회사 생활에 집중할 수가 없었고, 결국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일을 그만두면 스트레스가 줄어 불면증이 좀 나아지겠거니 했다.


아니었다. 내가 타고난 집순이인 것을 간과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하된 면역력 때문에 코로나19 감염 우려까지 겹쳐 집에서 보내는 시간만 늘어났다. 이미 잠든 정신과 달리 눈은 말똥말똥하니 글도 써질 리 만무했다. 수술 후 약 3개월가량 나는 엉망인 패턴으로 엉망인 생활을 했다.


가뜩이나 부족하던 비타민D는 결핍 수준까지 떨어져 부갑상선호르몬 수치만 높였다. 비타민D를 영양제로 먹는게 아니라, 처방받아 먹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건강식품 회사에서 건강 관련 칼럼을 쓰면서도 몰랐던 점이다.


"저.. 밤낮이 아예 바뀌었어요. 밤에도 낮에도 잠을 통 못 자요. 하루에 고작 한두 시간?"

"호르몬 수치 낮은 약으로 바꿨으니까 좀 잘 수 있을 거예요."


주치의 선생님은 친절하게 거짓말을 했다. 잘 수 있을 거라더니 나는 그 이후로도 열흘가량을 못 잤다. 술을 마시면 좀 잘 수 있지만, 술이 먹고 싶지 않아졌다면 누가 믿을까? 비타민D 생성도 도울 겸 대낮에 자전거도 타보고 뽈뽈거리며 열심히 돌아다녀 보기도 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냥 더 피곤한 채로 밤을 꼴딱 새우기 일쑤였다. 결국 신경정신과를 찾아 약을 지어 먹고서야 제때 잠들 수 있게 됐다.


불면증이 내 생활을 망가뜨렸다면 내 기분을 망가뜨린 건 음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수술 전부터 병원에서는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수술 후 한 달간 노래방은 절대 가시면 안 돼요. 큰 소리 내는 것도 금지입니다."


아마 목을 건드리는 수술이라 그런 듯했다. 술을 마시면 유쾌한 기분으로 노래방에 가고 가끔 기분 전환 삼아 홀로 코인 노래방을 찾기도 하지만, 노래방을 자주 가는 편이 아니라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큰일이었다. 노래방을 가지 말라고 했지, 노래방을 가지 못하게 될 거라고는 안 했으니까.


코로나19가 조금 잠잠해졌을 무렵 친구와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찾았다. 수술 후 두 달은 되었을 시점이다. '야, 마스크 쓰고 노래 불러. 위험하니까 마이크도 각자 써.' 꺄르르 웃으며 평소 부르던 노래를 예약하고 마이크를 잡은 순간부터 난 웃음을 잃었다.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전.혀.


나는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니다. 고음을 지르는 노래는 원래 키가 올라가지 않아 부르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 내가 예약한 노래는 십여 년간 불러오던 18번 애창곡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그 노래조차 키가 올라가지 않았다. 어느 시점부터 목이 탁 하고 막히고 목소리가 끊기는데, 마치 인어공주가 된 기분이었다. 뻐끔뻐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그보다 낮은 노래를 시도했지만, 나는 또 어김없이 인어공주가 되어 버렸다. 억지로 노래를 부르려 하니 듣기 싫게 갈라지는 목소리가 났다. 너무너무 슬펐다. 노래를 잘하진 않지만, 이 정도로 음치는 아니었는데.


누구 하나 내게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한 적 없다. 오롯이 내 의지로 수술을 결심했고 그 선택이 옳았다. 그날로 백 번 돌아가더라도 나는 백 번 같은 선택을 하겠지만, 숙면과 노래 부르는 즐거움을 잃어버린 지금은 조금 많이 속상하고 슬프다.


며칠 전, 차 안에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다 내가 인어공주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아, 이제 이 노래도 못 부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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