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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Apr 07. 2024

설거지를 하다가

부추쪼가리와 중생상(衆生相)

#20240407 #설거지 #중생상


 설거지를 하다 보니 수세미에 붙은 부추쪼가리가 보였다. 문득 이 부추는 이제 어떤 운명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설거지하던 중이었으니 세제에 씻겨졌고 깨끗하니 도로 먹을 수 있나? 아니, 이 부추쪼가리는 먹을 수 없다. 입에 들어가는 기회를 놓치고 싱크대에 놓인 이상 이제 이 친구의 운명은 음식이 아니라 쓰레기가 되었다. 깨끗해져도 먹힐 수 없는 운명. 


 예전에 훈련소나 독신자 숙소에서 세탁기를 돌리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더랬다.(22. 세탁기를 돌리며) 세탁기에서 옷과 함께 세탁되는 먼지. 하지만 깨끗하다고 우리가 그 먼지를 고이 모셔두진 않는다. 아무리 깨끗해도 먼지는 먼지일 뿐이다. 아무리 깨끗해도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이다. 


 문득 우리 마음도 그러지 않을까 불안해졌다. 아무리 닦고 닦아도 본질은 그대로인 게 아닐까? 각자가 갖고 있는 인식(認識)에 갇혀서 더 큰, 더 나은 존재가 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지금 내가 나름 나아지겠다고 노력하는 것들이 사실 크게 의미가 없고, 언젠가는 벽에 부딪히는 게 아닐까? 끝과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게 어쩌면 금강경에서 말하는 중생상(衆生相; 중생이라는 생각)일까? 




 우리나라 옛날이야기들을 보면 주인공이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찾아 저승을 찾아갈 때가 있다. 주인공은 저승을 찾아 헤매다가 누군가를 만난다. 그 사람은 주인공에게 ‘저승 가는 길을 알고 싶으면 일을 하라’라고 하며 일을 시킨다. 대개 그 일들은 더러운 옷이 새하얗게 될 때까지 빨거나, 장작을 팬다든가, 물을 긷는다든가 하는 등의 일이다. 주인공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3년씩이나 걸려서 해내고 길을 알아내 저승으로 떠난다. 


 3년이라는 시간은 대략 1,000일이니까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인 듯하다. 보통 기도일의 단위는 21일, 100일, 1년, 3년이니까. 더러운 옷이 새하얗게 된다는 건, 탐진치(貪瞋癡) 혹은 오욕(五慾) 혹은 사상(四相)으로 물든 마음이 청정해진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마음이 청정해지니 능력이 생겨서 육신통(六神通)의 하나인 신족통(神足通)이 생겨 저승에도 다녀올 수 있는 게 아닌지? 그러니까 노력하면 바뀔 수(얻을 수) 있다는 얘기이지 않나? 




 우리는 부추쪼가리 같은 존재지만, 언젠가는 부추쪼가리가 아닐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더 나은 존재가 되려는 모든 노력이 의미가 없지 않나? 내 운명이 다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 노력이 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닦고 닦다 보면 거울 같은 마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맑은 거울에는 금딱지도 장애가 될 뿐이라고 배웠다. 금딱지도 장애가 되는데 하물며 어둡게 하는 더러운 것들이랴. 이 길이 맞나 싶고 헤매고 방황하고 헷갈리고 아닌 거 같아도 결국은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 없음을. 



p.s. 환자들을 보다 보면 가끔 정말 착한 분들이 있다. 어떻게 저렇게 살지? 어떻게 저렇게 많은 일을 하지? 어떻게 저렇게 남을 위할 수가 있지?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나는 남을 챙기기보다 자기 자신부터 챙기라고 권한다. 나는 내 눈앞의 이 사람이 덜 괴롭기를 바라니까. 근데 문득, 내가 오히려 그들의 마음에 한계를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나’라는 생각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면 괜히 ‘나’를 생각하게 한 건 아닐까? 괜히 마음에 경계를 짓게 만든 것은 아닐까? 근데 정신과 의사인 나를 찾아왔다는 거 자체가 이미 괴롭다는 얘기니까, 그런 사람들은 이미 자신과 남의 적절한 구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사람이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좋아서 한 선택들이 스스로 혹은 남을 이롭게 하는지에 따라 이기적이다, 착하다 얘기할 순 있겠지만, 어쨌거나 어떤 만족이 있으니까 그렇게 행동하는 게 아닐까? 이기적인 마음이었든 이타적인 마음이었든 간에, 남을 위하는 마음을 낸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게 노력한 사람들이 더 밝은 사람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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