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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Dec 05. 2022

22. 세탁기를 돌리며

상(相)으로 상(相)을 일으키지 말기, 육진불오 환동정각 

#20221205 #세탁


 내가 지금 지내는 숙소에서 빨래를 하려면 1층 세탁실의 공용 세탁기를 써야 한다. 공용 세탁기의 단점 중 하나는 남이 쓰고 있으면 내가 쓸 수 없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 세탁기가 다 돌아갔는데도 빨리 세탁물을 빼주지 않아 빨랫감을 들고 도로 방으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나는 내 빨래를 빨래 망에 담아 세탁기를 돌린다. 빨래가 한 덩어리로 되어 있어 꺼내두기가 편했는지, 아침에 수영하러 가면서 빨래를 돌려놨는데 돌아와 보니 내 빨래는 나와 있었고 누군가가 자기 빨래를 3시간짜리로 돌려놨더라. (내 빨래에 손을 댔다는 생각에) 욱해서 꺼버릴까 하는 생각도 일었지만, 그냥 꾹 참고 올라왔다. 


 며칠 뒤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근데 그날은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안 일었다. 내 빨래를 건조기 위에 올려놨길래, ‘아 이걸 뺀 사람은 빨래하고 건조기까지 돌리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탁기 위에 세탁 바구니를 같이 놓는 사람은 (자신의 빨래가 다 되면 빼놓고 돌리라는 의미니까) 그만큼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구나 싶기도 했다. 


 이 두 날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었던 거지? 지금도 별생각이 없다. 내 세탁물이 나와 있으면 그냥 가져올 뿐이다. ‘그럴 수 있지.’ 괜히 상(相)으로 상(相)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공용 세탁기의 또 다른 단점은 아무도 먼지 거름망을 비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탁기를 돌리고 나면 빨래 망 위에 꼭 먼지 세, 네 점이 있어서 털어내야 한다. 어머니께서는 공용 세탁기여도 거름망을 비우라고 하시는데, 나는 숙소관리반도 안 건드리는 건데 내가 손대기 싫어서, ‘먼지도 세탁되어 깨끗한 먼지와 세탁하는 것’이라는 궤변으로 넘어가곤 했다. 


 문득 ‘깨끗한 먼지’라는 단어에서, 우리도 그런 존재가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깨끗하게 해도 결국은 먼지인 존재.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깨끗하게 하는 것을 게을리할 수는 없지. 「신심명 信心銘」에 ‘육진불오(六塵不惡) 하면 환동정각(還同正覺)이라’라는 구절이 있다. 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정각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라고 한다. 나도 먼지이고 쟤도 먼지이지만, 내가 쟤보다 더 깨끗하다고 분별심을 내면 그만큼 깨달음은 멀어지는 거겠지. 깨달은 입장에서 깨닫지 못한 존재들은 모두 똑같지 않을까? 그 안에서 누가 더 낫다고 자랑하고 줄 세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따름이다. 



20221206 추가) 

p.s. 설명이 부족했다. 먼지 얘기하다가 뜬금없이 신심명의 육진(六塵)이 나온 건, 진(塵)자가 티끌, 먼지란 뜻이기 때문이었다. “육진불오 하면 환동정각이라”를 내가 이해하기로는 ‘이 세상을 떠나서는 깨달을 수 없다’라는 의미다, 육진(六塵)의 뜻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라고 하니, 얼추 비슷한 뜻인가 싶기도 하다. 우리가 “불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산속에 있는 절과 머리 깎은 스님들을 떠올리지만, 정작 불교의 연꽃이 의미하는 바는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과 같이, 세속을 떠나지 않되 그 속에서 물들지 않고 깨달음을 이루라는 거라고 배웠다. 다분히 불교적인 이야기에서도 적었듯, 본인이 처한 현실을 떠나지 않고,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생각 하나하나를 깨달음으로 잇고, 가는 곳곳이 도량이 되고, 행동 하나하나를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하는 게 내가 이해한 “불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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