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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Oct 01. 2024

달리기를 하면서

최선은 어디&언제까지? 발심은 언제부터?

#20241001 #달리기 #최선 #발심


 군인과 군무원들은 매해 한 번씩 체력검정을 받아야 한다. 나도 받아야 해서 신청 기간이 되자마자 바로 신청했다. 


1. 내 생각대로 윗몸 일으키기, 팔굽혀펴기, 달리기 순서로 했다. 윗몸 일으키기를 할 때 쉬지 않고 쭉 하다가 60개 넘어서 한 번 쉰다고 누우니까 그 뒤로는 힘이 더 안 들어가져서 생각보다 못했다. 

 팔굽혀펴기는 ‘열심히’ ‘가라’로 했다. 더 내려가라는 소리를 3번은 들은 것 같은데, 못 들은 척하면서 그냥 했다. 4개만 더했으면 특급이었는데, 당시에는 ‘이만하면 됐지’ 하고 넘겼는데, 조금 더할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3km 달리기 시작하기 전에 ‘적어도 걷지는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는데 중간에 몇 번은 걸었다. 같이 뛰는 분들의 페이스가 좋아서 나도 덩달아서 (나한테는) 좋은 기록으로 마쳤지만, 7초만 빨리 들어왔으면 2등급인데 아쉬웠다. 

 달리기도 그렇고 팔굽혀펴기도 그렇고, 특히나 팔굽혀펴기는 조금만 더 마음을 냈다면 더할 수 있었는데 (등급 구간별 개수를 정확하게 몰라서 더 안 했는데) 아쉽다. 근데 어차피 달리기 점수가 제일 높아서, 팔굽혀펴기가 특급이었어도 달리기가 3급인 이상 어차피 최종 등급은 변하지 않는다. 


2. 이게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서 속으로 반야심경(般若心經)도 몇 번이나 외었는데, 신체적으로 다가오는 통증이,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다리는 무겁고 땀은 땀대로 나고 콧물도 나고, 이런 것에 집중해서 그런 건지 당시에는 ‘이게 다 헛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주 생생한 현실이었는데? 이런 걸 이겨내려면 확실히 체력도 있어야겠다 싶었다. 

2-1. 달리기를 하다가 힘들어서 반야심경도 외고, ‘이게 다 헛것이다.’ 생각하려고 했지만, 힘든 건 여전히 힘든 거였고 잘 안 됐다는 말씀을 아버지께 드렸다. 아버지께서는 (수행자도, 보살도 중생이랑) 똑같이 힘든데 참는 거라고 하셨고, 참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금강반야바라밀경』 「이상적멸분 제십사」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욕바라밀을 말씀하시면서 전생에 가리왕에게 사지가 갈기갈기 찢긴 얘기를 해주신다. 그때의 그 보살(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은 나라는 생각, 사람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이 없어 상대를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않았다고 했다.* 사지가 막 잘리는데도 원망하는 마음을 안 냈다면 그 참는 마음은, 이게 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은 얼마나 강한 건가 싶었다. 나는 고작 15분 남짓한 달리기도 힘들어서 쩔쩔매는데. 


3. 3km를 달리는 동안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도 아프고, 배도 아프고 힘들어서 중간에 몇 번이고 걸었다. 그때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수행(修行)에 있어서도 내가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 먼저 치고 나가는 사람들의 등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조바심도 났다. 근데 정작 발심(發心)은 안 되어서 답답하고. 나는 해야 할 일을 하고는 있는 건지, 할 수 있는 만큼은 하고 있는 건지 싶고. 

 앞서가는 사람들에게 질투가 나는 내 마음이 참 못났다 싶고, ‘나도 해야 하는데’ 하면서 마음이 안 나는 게 답답하기도 하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절실하지 않아서’라고 하는데, 나는 얼마나 더 괴로워야 그런 마음이 절실하게 될까? 

 <얼마나 닦아야 거울마음 닮을까>라는 찬불가가 있다. 사실 얼마나 괴롭든 괴로움은 끝이 없을 거다. 걸려있는 그 한 마음만 뒤집으면 되는 것일 텐데 그게 참 쉽지 않다. 괴로움을 통해서 자기 마음이 매여 있는 것을 고치고, 좋게 마무리하고(좋은 인因으로 남기고), 이 세상이 공空하다는 것을 자꾸 생각해야겠다.



* 如我昔爲歌利王割截身體,我於爾時,無我相、無人相、無衆生相、無壽者相。何以故?我於往昔節節支解時,若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應生瞋恨。

내가 옛날에 가리왕(歌利王)에게 몸을 갈기갈기 찢길 적에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었기 때문이니라. 만약 내가 옛날에 몸을 찢길 적에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있었더라면 성을 내어 원망하였을 것이니라. 『금강반야바라밀경』 1권(ABC, K0013 v5, p.981b02)

https://kabc.dongguk.edu/content/view?dataId=ABC_IT_K0013_T_001&gisaNum=0001R&solrQ=query%24%EA%B8%88%EA%B0%95%EB%B0%98%EC%95%BC%EB%B0%94%EB%9D%BC%EB%B0%80%EA%B2%BD%3Bsolr_sortField%24%3Bsolr_sortOrder%24%3Bsolr_secId%24ABC_IT_GR%3Bsolr_toalCount%2459%3Bsolr_curPos%2412%3Bsolr_solrId%24ABC_IT_K0013_R_001_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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