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 키드먼은 뉴트로지나 선크림을 90분마다 바르는 것이 자신의 미용 비결이라 한다. 그녀뿐 아니라 다른 모델들도 미모를 유지하는 비법으로 특정 화장품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말을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몸값 비싼 셀럽들이 출연하는 광고는 끊임없이 나온다. 대체 화장품 회사는 마케팅 비용에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붓는 것이며, 실제 화장품 원가는 얼마나 될는지 궁금해진다.
다른 한 편에서는 광고에 들어갈 비용을 제품 개발에 투자했다는 회사들이 경쟁한다. 제품 자체에 승부를 걸다 보니, 신제품이 연일 시장에 나온다. 그 결과 화장품도 패션처럼 유행을 타고, 유통 주기 또한 갈수록 빨라진다. 업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소비자들은 화장품의 홍수 속에서 결정 장애를 겪을 지경이다. 오죽하면 스킨케어가 아닌 스킵 케어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 등장했을까.
한 십 년 전의 일이다. 당시 유행하던 라놀린 크림을 검색하던 나는 황당한 사례를 발견했었다. 한국의 한 수입업체에서, 라놀린 화장품을 고가의 안티 에이징 제품으로 둔갑시켜버린 것이다. 세일한 가격이 10-25만 원 선이었고, 그 효능 또한 가격만큼 부풀려져 있었다. 같은 성분의 크림이라 해도 브랜드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순 있다. 그러나 이곳(캐나다)에서는 약국과 식료품점에서 파는 크림이라 상식적으로 용납이 되질 않았다. 그러다 할인매장에서 우연히, 정말 우연히, 똑같은 제품을 발견했다. 가격을 보니 겨우 6.99 - 15달러!(캐나다 달러) 그러니까 한국 돈으로 겨우 만원 정도인 것들을 열 배, 스무 배로 뻥튀기해 판 것이었다.
또 다른 예이다. 밴쿠버의 작은 업체에서 연어 콜라겐 크림을 제조했는데, 가격이 20불 선이었다. 당시 콜라겐 크림이 비쌌던지라 나와 지인들은 노다지를 캔 양 기뻐했다. 우리는 단체 할인을 받아 크림을 구입했고, 그걸 바르니 주름이 옅어졌다고 감탄을 해댔다. 사실 콜라겐은 입자가 커서 피부에 잘 흡수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벽돌처럼 구조가 빽빽한 우리의 표피는 콜라겐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기가 힘들다는 것이 정설이건만, 모두들 플라세보 효과를 본 것이다.
당시 이 업체는 일본 수출로 짭짤하게 수익을 챙겼다고 한다. 연어의 콜라겐을 사용해 밴쿠버의 이미지를 팔려던 그들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라놀린 크림이라 하면 뉴질랜드가 연상되듯, 연어와 밴쿠버의 연결점에서 오는 메리트가 분명 있었을 테니까.
시카 크림이 유명세를 탄 것은 호랑이 풀이라는 성분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성분을 사용했음에도 피부 재생 효과가 있다는 아유로 같은 타이틀을 달기도 한다. 시카가 특정 성분이 아닌 효능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꼭 시카 크림을 써야만 할까?
사실 피부 재생에 대해서는 시카 크림이 비타민A 크림을 따를 수가 없다. 약품이기 때문에 효과와 성분이 화장품을 압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장품을 인정하지 않는 의사들도 비타민 A의 효능만큼은 인정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물론 비타민A 크림은 처방을 받아야 하고, 사용법도 잘 지켜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비교가 안 되는 가성비와 효과를 생각해보면 굳이 비싼 화장품을 써야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화장품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나는 늘 가자미 눈을 뜨고 제품을 고른다. 그러다 보면 화장품의 맨 얼굴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비싼 제품에 방부제나 계면활성제가 많이 포함돼 있기도 하고, 같은 성분임에도 가격 차가 심한 경우가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시카 크림의 성분을 검색하던 나는, 바이엘사의 아기 엉덩이 크림(Bepanthen)을 발견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 크림에는 비타민 B5가 들어있어서 수분감을 주고 피부를 진정, 복구시키는 효과가 뛰어나다. 게다가 아기용이니 안전성은 확보된 셈이고, 가격은 시카 크림의 반의 반도 못 미친다. 피부가 아기 엉덩이처럼 고와지는 기적만 바라지 않는다면, 가성비나 효과 면에서 훌륭한 제품인 것이다. 단, 주의할 점은 약품(약품으로 나온 연고는 Antiseptic이 포함)이 아닌 것을 구입해야 한다는 것.
요즘은 명품 화장품과 중저가 제품을 비교한 기사를 쉽게 볼 수 있다. 과거 폴라 비가운이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했던 시도의 연장인 셈이다. K 뷰티가 대세라서인지 간혹 한국 화장품만 선정하기도 하는데, 에스테 로더의 에센스와 미샤의 것을 비교해 놓은 경우도 있었다. 그런 기사들은 주목을 끌기 위한 목적 또한 있으므로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지만, 분명 제품 구매에 도움이 된다. 단 성분은 잘 살펴보아야 한다.
한 예로 영국의 한 기자가 고가의 수분 크림인 라 메르(La Mer)와 니베아(Nivea)를 자신의 얼굴에 발라 실험한 적이 있다. 그 결과 니베아 쪽 수분감이 더 좋다는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나왔고, 이 기사는 전 세계로 퍼졌었다. 그렇지만 니베아에는 미네랄 오일과 바셀린 성분이 아주 많이 들어가 있어, 자연 친화적인 라 메르 크림보다 낫다고 볼 순 없다. 실험 자체가 공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떤 기사에서는 라 메르와 벨레다(Weleda) 크림을 비교했는데, 이 경우는 수긍이 간다. 천연 화장품으로 알려진 벨레다는 성분이 몹시 착하니까.
라 메르 수분 크림이 샤를리즈 테론의 애장 템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그때 내게 떠오른 생각은 "그녀의 재력이라면 더 비싼 것도 살 수 있을 텐데...."였다. 그러니까 이런 글을 쓰는 나도 경제력만 받쳐주면 더 비싼 화장품으로 갈아탈 수 있다는 얘기다. 아무리 피부의 구조가 촘촘하다고 해도, 소량의 화장품은 스며들어갈 테니까.
나는 무조건 비싼 화장품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최대의 투자로 최소의 결과를 얻는 화장품에 무리한 지출을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샤를리즈는 라 메르 크림을, 나는 벨레다를 바르는 것이 맞는 선택이라고 본다. 게다가 벨레다는 건성인 내 피부에 잘 맞는다. 제형이 너무 찐득해서 데이 크림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로션에 조금 섞어 바르면 추운 겨울에도 얼굴이 당기지 않아서 만족하고 있다.
혹자는 비싼 제품에는 좋은 성분이 들어있어서 값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고해서 모든 사람의 피부에 좋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한 예로 화장품 리뷰 사이트 ewg.org에서는 천연 화장품에 그리 높은 점수를 주지 않고 있다. 유해 성분은 없지만, 알레르기를 일으킬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화장품이란 내 피부와 형편에 맞는 것이 정답인 것이다. 어차피 얼굴의 주름을 지우고, 피부를 완전히 바꿔 줄 화장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광고가 주는 환상을 믿지 않는다.
남의 말을 안 들어서 내 귀가 작은가 보다.
**이 글에 공감하시는 분은 제가 이전에 쓴, <화장품은 나의 주름을 지워주지 않는다>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brunch.co.kr/@mamakim/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