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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킴 May 15. 2020

영화 원작의 주인공을 스크린에서 만난다는 것

문자 너머의 등장인물을 상상하게 되는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는 배우에 의해 구현된 외모와 캐릭터를 보게 된다. 개개인이 달리 가지고 있는 환상을 한 사람의 배우가 완성해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인 것이다. 따라서 관객의 만족도가 낮을 수밖에 없고 캐스팅 논란이 자주 있어왔다.


물론 비비언 리와 콜린 퍼스처럼 원작의 인물들이 환생했다는 평가를 받은 경우도 있긴 하다. 그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과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를 완벽히 표현해냈다는 극찬을 들었으니까. 그렇지만 많은 배우가 본인에게 맞지 않는 배역을 맡았다는 이유로 자주 도마에 올려진다. 특히 관객이 원작을 잘 알고 있거나 히트작을 리메이크한 경우엔 더더욱.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비비안 리

최근 인어공주 역에 흑인 배우를 기용한 디즈니는 촬영 시작 전부터 심한 반발에 부딪혔다. 배우의 외모가 인어 공주의 사랑스러운 이미지와 거리가 먼데다, 북구의 오래된 스토리에 흑인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추측해보건대, 아마도 디즈니는 <메리 포핀스>의 성공을 다시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책에서는 차갑고 엄격했던 메리 포핀스를 상냥한 천사로 탈바꿈시켜 공전의 히트를 친 전례가 있잖은가. 새롭게 탄생된 메리 포핀스는 줄리 앤드류스의 사랑스러운 이미지와 아주 잘 어울렸고, 그녀의 탄탄한 연기가 더해져 관객의 호응을 끌어낸 바 있다. 그렇다면 디즈니가 또 원작과 다른 캐릭터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기존 인어공주의 이미지와 접점이 안 보이는 배우를 영화 속에서 어떻게 그려내고 관객을 이해시킬지, 기대와 의문을 동시에 가져본다.


원작과 달랐지만, 공감이 갔던 영화 속 인물들


영화 <일 포스티노>의 주인공은 원작인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와 많이 다르다. 소설 속 인물은 철없고 경박하며, 샘솟는 남성 호르몬을 주체 못 하는 열일곱 살 소년이지만, 영화에서는 순박한 노총각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대하는 태도 또한 성적 욕구가 앞서는 소설 속 인물과 달리, 영화에서는 지고지순하다. 그렇지만 관객은 영화 속 인물에게 동화되고 감동받았다.


<일 포스티노>

사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널리 읽힌 원작이 아니기 때문에, 관객이 온전히 영화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그 점을 고려해도, 영화는 소설을 읽은 사람 또한 캐릭터에 수긍할 수 있는 완성도를 보여줬다. 어린 소년이 시인 네루다를 통해 시와 정의에 눈을 뜨는, 즉 성장 소설적 성향이 강한 원작을 우편배달부와 시인의 우정에 중점을 두고 각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편배달부의 순수한 캐릭터가 강조되었는데, 이것이 배우의 이미지, 그리고 연기와 잘 맞아떨어졌다. 영화 <일 포스티노>를 평할 때, 아름다운 어촌의 풍광과 주인공 마리오의 어눌한 모습, 그리고 착한 눈동자가 자주 거론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비슷한 예로 영화 <어톤먼트>가 있다. 소설 <속죄>는 2차 대전을 겪어내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지만,  영화에서는 슬픈 러브 스토리에 비중을 두었다. 그리고 이 비극의 주인공으로 제임스 맥어보이를 캐스팅했다.


사실 그는 원작의 주인공인 로비와 외모가 다르다. 소설에서는 키가 크고 건장한 체구의 강한 남성이었지만, 제임스 맥어보이는 보통 키와 체구에 얼굴선도 갸름한 편이며 촉촉한 눈매를 지녔다. 영화에서 그는 자신의 외모와 어울리는 섬세한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바로 이것이 억울한 운명에 휩쓸리는 역할과 너무나 잘 맞았다. 그리고 관객들의 가슴을 아프게 후벼놓고 말았다. 원작과 전혀 다른 외모의 배우를 캐스팅해도 관객을 납득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어톤먼트> 제임스 맥어보이


아무리 훌륭한 배우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연기력이 훌륭한 배우임에도 배역과의 싱크로가 처참하게  무너질 때가 있다. 연기자의 외모와 분위기가 역할과 너무 다른 경우이다. 아무리 원작을 달리 해석했다 해도, 맡은 역할과 겉도는 배우에게 감정 이입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프랑소와 사강의 소설을 다시 읽으며 영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보았다. 과거 여성 팬들의 모성애를 들끓게 만든 앤서니 퍼킨스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잉그리드 버그만, 그리고 샹송 가수이자 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브 몽탕이 출연하는 화려한 캐스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나는 그 영화를 힘겹게 끝냈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인공 폴 역에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잉그리드 버그만과 안소니 퍼킨스

지적이고 세련됐으며 강하면서 동시에 여린 면도 있는, 그리고 여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39살의 돌싱녀 역할에 중년의 잉그리드 버그만은 잘못된 캐스팅이었다. 그녀의 중후한 외모와 무거운 연기는 나의 팬심으로도 감싸줄 수가 없을 지경이었으니까. 세기의 여배우라는 칭송을 듣는 그녀이지만 그 역할만큼은 그녀의 흑역사에 올려야 할 것 같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또한 같은 실수를 한 적이 있는데, 자신이 감독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주연까지 해버린 것이다. 나의 최애 감독 중 한 사람이며, 배우로서도 신뢰하는 그이지만 그 역할은 자신보다 젊고 매력적인 배우에게 넘겼어야 했다. 마른 체형에 건조한 피부를 가진 60대 중반의 그는, 중년 남녀의 애달픈 멜로드라마에 비주얼이 맞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좋은 연기가 그의 외모에 묻혀버렸고 감정이입을 방해하고 말았다.



특히 두 연인이 마지막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장면. 비에 흠뻑 젖은 채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워낸다 해도 무리였다. 슬프고, 안타깝고, 사랑과 격정을 다시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모습이어야 했건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아미 해머

반대의 사례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올리버 역을 했던 아미 해머를 들고 싶다. 소설 <그해 여름 손님>에서 17살 엘리오가 첫눈에 반해서 숭배하게 되는 대상이니만큼, 영화 속 올리버는 아름다운 청년이어야만 했다. 따라서 아미 해머의 캐스팅은 매우 적절했고, 그는 평소 해온 딱 그만큼의 연기로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상대가 얄밉도록 연기를 잘하는 티모시 살레메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존재 자체로 게임 끝을 외친 것이다. 영화에서 배우의 비주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랄까?


책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관객의 선입견을 안고 가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그렇지만 등장인물에 걸맞은 배우가 좋은 연기력을 보여줄 때 관객은 설득당하게 마련이다. 원작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문자로 그려져 있는 인물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과정이잖은가. 원작에 충실했든, 각색을 했든, 대본과 일치하는 배우의 외모는 중요하다. 그것은 시각예술인 영화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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