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알찬이랑 헤어지기로 했어."
"까분다. 안 속아."
"정말이야!"
내 새끼가 울음을 터트린다. 순간 목구멍이 뜨거워진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남편은 딸과 나를 모두 진정시켜야 했다. 딸아이는 울음을 그쳤다가 다시 울기를 반복하며 힘들게 말을 이어갔다. 너무 사랑하지만, 결혼은 안될 것 같아 힘든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절대 못 헤어진다더니 이게 웬 반전이란 말인가! 그날 우리 부부는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두 아이는 아스팔트 틈새에 핀 민들레 같은 커플이었다. 양가 부모는 물론 이모, 삼촌까지 반대하는 만남을 오 년이나 지속해온 것이다. 딸아이 남친의 지순한 사랑이 이를 가능케 했는데, 그 정성에 감동한 나는 알찬이라는 한국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이제 촌스런 그 이름을 부를 일이 없겠다 생각하니 코끝이 매워진다. 그리고 내가 모질게 굴었던 첫 만남이 생각난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왔던 날. 불만이 머리끝까지 찬 나는 귀로 스팀이 나올 지경이었다. 일단 만나보라는 딸의 성화에 못 이겨 식사 초대를 했지만, 절밥 먹고사는 손님의 밥상을 차리다가 부아가 나 버린 것이다. 같은 채식이라도 동물권이나 환경 보호를 위함과 종교적인 이유로 하는 건 다르지 않은가. 인도인 부모, 그것도 삶 자체가 힌두 교리와 완전히 밀착된 부모에게 엄한 교육을 받고 자란 알찬이는 육식은 물론, 불가에서 금기하는 오신채 또한 먹을 기회가 없었다. 그런 녀석이 한국 애와 사랑에 빠져 마늘을 먹기 시작했으니, 알찬이 부모는 내 딸이 못마땅해 죽을 지경이었을 게다. 자신들의 자식을 타락시킨 속세의 팜므파탈로 봤으려나?
그날, 이런 생각을 하다 심통이 잔뜩 오른 나는 마늘을 때려 넣고 점심을 차렸다. 어떻게든 잘 보이려 애쓴 알찬이는 깨끗이 그릇을 비웠고, 내 요구에 따라 인터뷰(사실은 취조)에 응했다. 말이 인터뷰이지 사실 내가 준비한 것은 탐문 수사였다. 이민 1.5세대인 아이가 자신의 문화에 갇혀 사는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여러 민족이 각자의 색을 지키며 사는 캐나다이지만, 그의 부모는 아무리 봐도 도가 지나쳤으니까. 게다가 그들 관습에 의하면 알찬이는 결혼 적령기(이십대 중반)였고, 부모는 중매결혼을 종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아이가 아직 학생인 데다, 졸업 후에도 결혼에 앞서 커리어를 쌓으려는 내 딸과 뭘 어쩌자는 것이냔 말이다.
빨간 공책이 생각난다. 내가 질문할 열 가지 문항을 적어놨던 공책. 그것을 펼치자 두 아이의 입에선 경악의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고, 스트레스를 두들겨 맞은 딸의 피부엔 발진이 올라와 연고와 얼음주머니를 대령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렇지만 계획한 일은 마쳐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상황에서도 나는 질문을 해댔고, 이 일로 인해 알찬이는 '빨간 공책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 후일 그 트라우마는 나와 가까워지며 극복됐지만, 딸은 우리를 코끼리와 생쥐에 비유하며 놀려대곤 했다. 190이 넘는 키에 덩치까지 큰 지 남친이, 작은 체구의 엄마에게 쩔쩔매는 모습이 우스워 보였나 보다.
착한 순둥이가 내 딸에게 지극 정성을 쏟아주는데, 싫다 할 엄마가 있을까? 둘 사이에 있는 거대한 문화 장벽만 아니라면 알찬이는 환영받아 마땅한 아이였다. 그렇지만 나는 샤갈의 그림 속 연인들처럼 붕 떠있던 두 아이에게 땅에 발을 디뎌보라 충고하곤 했다. 같은 민족끼리 만나도 충돌하는 것이 남녀 관계인데, 아예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둘의 앞날은 빤한 결말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들이 각자의 자리로 빨리 돌아가길 바랬다.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별의 고통은 더 할 테니까.
그 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아이들은 지상으로 내려왔다. 딸이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게 되고, 알찬이는 노총각(걔네 문화권에서)이 되자, 현실을 제대로 보게 된 것이다. 둘은 미래에 대해 아주 구체적인 대화를 나눴고, 심지어 결혼 카운슬링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 결과, 현실적이고도 슬픈 결정을 내렸다. 서로의 앞날을 축복해주는 성숙한 이별을 맞기로. 라떼는 사랑하면 죽어도 못 헤어지고, 오래 사귀면 무조건 결혼을 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이렇게 쿨할 수 있구나!
이루어졌다 해도 힘들었을 사랑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내 딸은 이런 무모한 연애를 다신 할 수 없으리라. 인생에서 가장 예뻤던 나이에 걸맞은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한치의 계산도 없이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했고, 서로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됐으니, 이만하면 행복한 결말 아닐까?
단지 나는 내 아이의 마음에 난 생채기가 잘 아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리고 설사 상처가 너무 깊어 자국이 남는다고 해도, 그 아픔이 성장을 위한 자양분으로 쓰였으면 좋겠다. 두 아이 다 서로를 쉽게 잊지 못하겠지만, 그리움이 일 때마다 상대에게 고마운 마음을 보내줄 것으로 믿는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인연을 만날 것이고, 과거의 추억으로 가득 찬 기억 창고는 서서히 새 단장을 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