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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킴 Feb 07. 2021

한예리를 응원한다


영화 <미나리>의 질주가 대단하다. 아카데미 작품, 감독, 각본상 등의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윤여정은 가장 유력한 여우 조연상 수상자로 예측되고 있다. 경쟁자들을 살펴보니 징글맞도록 연기를 잘하는 글렌 글로스와 올리비아 콜먼, <맹크>에서 인생 연기를 펼쳤다는 아만드 사이프리드가 눈에 띈다. 와우~ 소리가 절로 나온다. 대단하고도 대단하다. 우리나라 배우가 이들을 제치고 수상자로 호명될 상상을 하니, 벌써 마음이 들뜬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스티븐 연이 아시안 최초의 남우주연상 후보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과 함께 연기한 한예리는 어떠한가. 그녀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은 영화제에 후보로 올랐던 것이 다였다. 미국 내 여우 조연상을 휩쓸며, 자신의 기록을 스스로 갈아치웠던(현재까지도 그러한) 윤여정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없는 성과였다. 그러다 그녀가 점차 주목받기 시작했다. 겉으론 차분해 보이지만, 실은 좌절과 분노의 감정을 삭이며 살아가는 여주인공을 찰떡같이 소화했으며, 상대 배우들과도 훌륭한 연기 앙상블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후보를 운운하는 기사까지 등장한 걸 보니 이제 그녀의 존재를 알아본 듯하다.


아카데미를 예측하는 사이트를 몇 군데 둘러보니, 윤여정은 1순위, 스티븐 연은 중간, 한예리는 하위 그룹에 올라 있다. 아쉽지만 이만하면 대단한 성과 아닐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론과 평단의 관심은 윤여정과 스티븐 연에게만 쏠려 있었으니까. 단, 봉준호 감독은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한예리의 연기를 칭찬했었다. 그래서인지 한예리에 관한 미국 기사에 그의 연기 평이 종종 인용되곤 한다. 아카데미 상을 받은 감독에게 인증받은 덕인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현재의 기세를 몰아 그녀가 승승장구하길 바란다. 윤여정과 스티븐 연이라는 쟁쟁한 배우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니까.


연기란 상호적이라 상대 배우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밤하늘의 별이 서로 도와 빛을 내듯이, 배우 또한 자신의 연기를 잘 받쳐줄 상대가 필요한 것이다. 이 점에서 <미나리>의 세 배우가 보여준 앙상블은 대단했다. 실제 인물들로 보일 만큼 감정 호흡이 훌륭했었다. 푼수스럽지만 사랑 많은 엄마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있음에도 무모하게 꿈을 좇는 남편,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힘든 삶을 끌어가는 딸이 사실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영화는 그들에게서 뿜어 나오는 팽팽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고, 덕분에 관객은 세 사람의 연기 배틀을 감상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세 사람의 중심에 서 있던 것은 바로 한예리였다.



<미나리>의 가족 중,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아내인 모니카뿐이다. “내가 잘할게”라는 말을 반복하는 할머니는 아직도 철이 덜 드셨고,  남편은 자신의 꿈인 농장일에 위험한 열정을 쏟는다. 오직 모니카만이 두 발을 땅에 붙이고 힘겹게 삶을 살아낸다. 그야말로 존버 정신으로 버텨보지만, 무작정 참는 게 아니라 감정을 폭발했다가 원래의 상냥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반복한다. 건드리면 부서질 듯 연약해 뵈는 그녀이지만, 내면은 강한 인물인 것이다. 이 역할을 한예리는 섬세하면서도 입체감 있게 그려냈다. 사실 윤여정과 스티븐 연의 캐릭터가 워낙 강해서 자칫 묻힐 수 있는 배역이었음에도, 자기 몫을 똑 부러지게 해냈다. 차분하면서도 저력 있는 그녀의 에너지가 중심을 잘 잡고 있어 영화가 더 안정적일 수 있었다.


최근 한예리의 연기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긴 했지만, 아직도 미국 내에서의 관심은 윤여정과 스티븐 연에게 집중돼 있다. 안타깝긴 하지만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스티븐 연은 인지도가 있는 배우이고, 윤여정도 미국 드라마에 출연한 경험이 있잖은가. 그러나 한예리는 <미나리> 이전의 경력이 전무하다. 그녀는 아카데미에 후보에 오르지 못할 것이며, 이번에는 이름을 알린 것을 가장 큰 성과로 봐야 할 것이다. 이에 반해 윤여정의 수상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본다. 아카데미에서의 연기상은 후보에 오른 작품만을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간 배우가 쌓아온 필모그래피라든지 사회적 분위기와 인종 문제 등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요즘은 다인종을 품다 못해 블랙 워싱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으니, 아카데미의 선택은 당연히 아시아의 여배우가 되지 않을까? 더구나 그녀는 올해 여우 조연상을 싹쓸이해 버렸으니!



내가 지금까지 봐온 한예리는 다른 등장인물들과 조화를 잘 이루면서도 맡은 배역을 세밀하고 입체적으로 만들어 온 배우다. 그런 쉽지 않은 연기를 신인 때부터 해왔기에, 나는 줄곧 그녀를 주목해 왔다. 예컨대, 영화 <코리아>에서는 매서운 승부 근성을 지녔지만 여리고 순박한 면이 있는 북한 탁구 선수를 연기했고, <해무>, <최악의 날> 등에서도 캐릭터가 가진 다양성을 잘 표현해내, 관객에게 복잡한 감정을 갖도록 만들었다. 맡은 배역을 단선적으로 연기하지 않아, 관객이 인물에 대해 생각하고 헤아려보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 능력이 <미나리>에서 다시 발휘되었고, 호평받았다. 솔직히 결과가 아쉽지만 이 정도면 훌륭한 출발이라고 본다. 그녀가 이를 발판으로 더 좋은 성취를 이뤄내길 바란다. 연기는 물론 상복도 터지길!


빵 아저씨의 손길이 닿았으니 잘 되겠지? 할리우드 금손의 손길이 스쳤으니......



뱀 다리 - Bread라는 이름 때문에 빵 아저씨라는 별명을 가진 브래드 피트는, 배우뿐 아니라 제작자로서도 유명합니다. 그의 영화사인  PLAN B가 많은 히트작을 내서 할리우드의 금손으로 불리기도 하죠. <미나리>는 PLAN B에서 제작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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