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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oist Nov 21. 2019

카메라의 절대적 지위

<환상의 빛>, 고레에다 히로카즈 (1995)


오늘은 <환상의 빛>을 이야기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 <환상의 빛>은 카메라의 시선으로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형식이 내용을 전달하기에 이른달까요. 크게 3가지로 그 특징을 짚어봅니다.


1. 횡으로 흐른다


초반, 주인공 유미코의 남편 이쿠오를 따라가는 카메라는 늘 옆으로 흐릅니다. 한 방향이 상정되어 있는, 마치 선형적인 방식으로 죽음에 다가가는 시간을 표현하는 듯합니다.


이쿠오와 나열되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열차입니다. 열차가 선로를 따라 지나가고 그 옆길로 이쿠오는 자전거를 타고 열차를 따라갑니다. 전찻길 가에 위치한 이쿠오와 유미코의 집이 비춰지면 어김없이 화면을 횡단하는 '움직임'이 포착됩니다. 끝내 이쿠오의 자살이라는 소식이 유미코에게 전해질 때도 역시나 그렇습니다. 기관장이 이쿠오의 마지막을 목격한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철로 한가운데를 따라 전차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고 합니다.


즉 이쿠오를 좇는 카메라는 일정한 방향성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2.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향한다


이 작품에서는 '명암'이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목이 이미 암시하카메라는 늘 '빛과 그늘'을 배우의 위치에 세웁니다.


이쿠오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슬픔은 마음 한 켠에 묻고 다시 새 삶을 살기 시작한 유미코의 무대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실 그곳에서의 이야기는 평범하고 차분하기만 합니다. 남편과 유미코, 아이들 네 가족이 천천히 일상에 적응하고 공간에 스며드는 장면이 열거되죠. 그런데 그 속에서 도드라지게 보이는 빛의 존재감은 환상성을 부여합니다. 아이들은 맞은편 빛을 따라 터널을 통과하며 놀고, 유미코는 지하계단 입구를 타고 들어오는 빛 사이로 청소하고, 어두운 방 안에서 밝은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등. 거듭 던져지는 빛의 이미지가 영화의 리듬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어둠을 비집고 들어오는 빛이 우선인지', '빛을 잠식하는 그늘이 우선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모호성은 유미코의 감정선에 대해 '슬픔이 과연 잦아든 것인지', '아픔의 기운을 더해가는 것인지'도 확신을 보류합니다.


3. 멀리서 무심히 바라본다


더불어 카메라는 움직이기를 자주 멈춥니다. 대개 카메라는 인물을 따라다니기 마련이지만 여기선 아주 먼 위치에 고정되어 피사체의 움직임을 가만히 담아내는 프레임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물론 다분히 의도적입니다.


인물을 포함하면서 배경이 온전히 드러나는 사이즈인 롱숏, 그중에도 극단적일 정도로 인물의 크기는 줄이고 배경을 화면 가득 채우는 익스트림 롱숏은 주로 장소의 스케일을 스펙터클하게 조망하도록 쓰이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거대한 환경에 압도된 '인간의 미미함'을 이해하도록 익스트림 롱숏을 사용합니다.


관객은 로 인해 유미코가 슬픔을 폭발시키는 표정은 끝내 볼 수 없습니다. 우연한 사건에 의한 슬픔도, 필연적인 일상에 의한 즐거움도, 뭐 그리 대수이겠냐고 반문하게 만듭니다.



결국 '그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삶과 죽음의 원리에 의문이 들지만 이내 물음을 거두고 다시 꿈틀거릴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 그래서 이토록 잘 짜인, <환상의 빛>의 형식미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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