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열다섯 번째 편지
오랜만이에요! 선물님.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선물님의 편지네요. 그동안 소식이 무척 궁금했답니다. 밥은 제때 드시고 사시는지 사람들 배려한다고 자기 배에는 아무 신경도 안 쓰고 살지는 않는지. 종종 생각이 났지만 그만큼 자주 연락을 드리지는 못했어요. 자기만의 터널을 통과 중일 때는 묵묵히 멀리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최선인 것 같아서요. 우리 서로에게 그 정도의 연결감은 늘 있지요? 태양계의 행성들이 서로 아무 관련이 없는 듯 떨어져서 공전을 해도 서로 규칙을 지키면서 아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를 보아주고 있는 것처럼요. 지구 주위를 도는 달처럼 때로는 가까이 갔다가 때로는 조금 더 멀리 갔었다, 라고 하면 될 거 같아요. 선물님을 생각했던 제 마음이요. 글이라는 게 참 희한해서 이렇게 마음을 표현하고 나니까 순식간에 선물님과의 물리적 거리가 사라져버린 거 같아요. 대전의 한 지하 책방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어느새 영월의 야외 카페에서 선물님과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시공간을 초월해서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마음이 만나고 있는 거겠죠? 사춘기 같은 감성이지만 이 또한 진심이니 날 것 그대로 편지에 실어 봅니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전~ 혀요. 너무 오랜만에 편지를 주셔서 어떤 식으로 첫머리를 시작했는지 구성은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나요. 그래도 일관성을 갖추기 위해 예전 편지 파일을 열어 보다가 새 창이 뜨자마자 꺼 버렸어요. 그게 다 뭔 소용이에요. ‘과거는 지나갔으니 과거라 부른다. 과거의 좋은 점은 이미 끝났다는 점이다.’ 등의 격언을 떠올리며 새로운 마음으로 편지를 적어 내려갑니다.
선물님의 편지를 받고 노래가 떠올랐어요. 그리 유명한 노래는 아니지만 이 노래 들어보셨을라나요?
‘그대여 지쳤나요. 하루하루를 뒤쫓다가. 그래요. 이상한 일이예요. 우린 되는 일이 없나요.’
긱스 Gigs의 ‘챔프’라는 노래 가사예요. 긱스는 이적 등 그 당시 굉장히 화려한 멤버로 구성됐는데 대중적으로는 그렇게 인기를 끌지 못하고 사라졌다고 들었어요. 되는 일이 없다는 노래를 불러서 그랬을까요? 저도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아서 가끔 흥얼대는 데 말이죠. 흠. 참 미안하지만 선물님의 일화가 꼭 이 가사 같았어요. 구치소라는 단어가 웬 말인가요. 일상에서 좀처럼 듣지 못하는 단어인데요. 그다음 이야기도 참 희한해요. 사라진 배우를 대신 해서 주연배우를 맡았다고요? 선물님, 전문 글쟁이 아니었던가요? 구구절절 적어주신 사연을 읽으면서도 고개가 갸우뚱했어요. ‘이게 무슨 소리야?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엉? 이게 대체 뭐야??’하면서 웃프게 읽었답니다. 요지경 인생을 사신 것 같아 뭐라 첨언할 수도 없고. 선물님에게는 아주 고달픈 시간이었겠지만 그 삶을 그대로 극작에 올리면 아주 볼 만할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좀 웃기기도 했어요. 웃어서 미안해요. 그래도, 누가 이렇게 영화에나 나올 법한 삶을 살아요? 마침 가장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하고 싶은 ‘창작’이라고 하셨으니 아예 선물님 삶을 그대로 스토리라인으로 옮겨도 좋을 거 같아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면서요. 이 요지경 중에도 직접 쓴 극작도 계속 올라가고 곧 작사가도 되고 에세이랑 그림책도 쓴다니 뭐 나쁘지는 않은 것 같네요. 결국 선물님도 희극의 주인공일 거라 믿어요. 우리도 좀 발 뻗고 아무 걱정 없이 살아 봅시다요!
저는 선물님과 소식을 주고받지 못한 사이에 열심히 상담을 하고 살았고요. 무엇보다 생존 스킬을 늘리려다가 늘어지는 스킬을 더 늘렸어요. 번아웃이 온 건 아니었지만 아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며 좀 더 느리게 삶을 살기로 했어요. 실제로 그렇게 살았고요. 쉬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은 자영업자의 삶을 살다가 일주일에 하루는 무조건 나를 위해 쓰자며 하루를 통으로 쉬기 시작했어요. 그러고 보니 어쩌다 우연히 타인에 의해 주어지는 비는 하루 이외에는 몇 년 간을 매일 일을 하고 일 생각을 하며 살았더라고요. 몇 년 동안 공식적인 쉬는 날이 없었어요. 웬만하면 내담자의 일정에 맞추어서 휴일을 반납했고, 그렇게 살아도 별로 힘든 걸 못 느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알게 모르게 침식되어 갔던 거 같아요. 점점 마음이 딱딱해지고 완고해지고 가족들에게도 더 엄격하게 대했던 거 같아요. 선물님과는 반대로 너무 통제력을 발휘하고 살았고, 그러면서도 더 통제하려고 애썼던 거 같아요. ‘살맛나는 세상’에 살고 싶으니 내가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겠다고 매일 일기에 적으면서도 정작 나 스스로 가슴 팍팍하게 굴며 내 삶이 재미없어지게 했던 거예요.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 나에게 의식적으로 쉼을 주었어요.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 몇 자 끼적이기도 했고, 대전 갑천을 따라 1시간 이상 자전거를 타기도 했고, 좀처럼 가지 않던 구시가지까지 일부러 가서 TV에 여러 번 나왔다는 허름한 맛집에서 육개장도 먹어 보았어요. 그거 참 희한해요. 아주 어렸을 때는 배도 잘 안 고프고 먹는 행위도 귀찮아서 삼키면 하루 종일 버틸 수 있는 알약이 개발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먹는 취미도 생기나 봐요. 아주 맛있더라고요. 국물이 아주 맑고 담백하고 시원한 육개장이었는데 걸쭉하지 않고 뒷맛까지 깔끔해서 참 신기했어요. 다음에 선물님이 대전에 오면 그곳으로 한번 모시고 싶네요.
이렇게 ‘나도 사람이다. 나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모드로 삶을 전환해서 살고 있어요. 뭐가 먼저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와중에 게슈탈트 심리치료 교육을 듣고 ‘살아있는 것 자체의 기쁨’에 대해 더 많이 느끼고 생각하게 됐어요. 나도 늘 똑같이 하는 말인데 더 큰 선생님께 똑같은 말을 들으니 죽비처럼 울리더라고요. 제 삶을 다시 돌아보며 존재 자체로 깨어있는 시간, 내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고 느끼는 시간이 참 부족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능력 있고 좋은 심리상담사로 살려고 애썼던 시간이 대부분이었지요. 나란 존재는 심리상담사이기 전에 사람인데 말이지요. 그냥 ‘사람’. 더 무슨 말이 필요해요. 선물님도 사람, 나도 사람. 우리 모두 사람일 뿐인데요. 선물님도 ‘사람’으로 살고 있나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다는 느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지금 저는 인생을 리셋 중이에요. 제 삶의 전환은 앞으로도 계속 될 거예요. 지금이 딱 그 타이밍인 거 같아요.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요. 무엇을 좇아가는 삶이 아니라 내가 먼저 성큼 내딛는 삶. 주어진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게 아니라 내 멋대로의 목표를 향해 신나게 뛰어가다가도 놀멍쉬멍 가는 삶. 저만의 페이스를 찾으려고요. 그런 면에서 요새 삶은 정말 살맛나는 삶이 되고 있는 중이랍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내가 허용해주고 있으니까요. 전에는 나부터 나서서 내 인생을 잡도리했지만요. 전에는 새벽 4시에 기상해서 꿈을 이루려했다면 이제는 주 4일제를 통해 꿈을 이루려 해요. 생각만 해도 좋네요. 주 4일제라니! 그러니 저에게 ‘대단한’ 인간이라느니 같은 말은 해주지 마세요. ‘통한의 역전골’ 같은 것도 관심에 없어요. (통한의 역전골? 제가 그런 단어를 썼었군요! 기억이 안 나요 하하. 너무 오래 편지가 끊겼기 때문인지 아니면 제 삶의 태세 전환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냥 사람으로 살래요. 지금 이대로도 살맛나게.
지난주에는 4박5일 명상을 다녀왔어요. 거기 다녀온 후 블로그에 쓴 글이 있는데, 리셋 중인 제 마음을 잘 담고 있어요. 행갈이도 쓴 그대로 두고 선물님께 그대로 보여드려요. 제가 받은 명상의 기운을 느껴보세요.
깊은 산속에서 진행된 명상.
수려한 산세, 상쾌한 공기, 촉촉한 비, 물소리를 누리며
4박 5일을 보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긴 시간을 할애해서
온전히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갖고 왔습니다.
명상의 특이한 체험들은 뒤로 하고
마음에 남은 것은 한 문장입니다.
“나이어도 된다.”
지금 이 모습 이대로 나이어도 된다.
이 모양 이 꼴대로 사랑스럽고 존귀하다.
나를 나로 살지 못하게 하는
모든 메시지를 거부하려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계기로 마음은 강렬하게 일어나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다른 어떤 기능도 역할도 내게 요구하지 말라.
나에게 어떤 강요도 간섭도 하지 말라.
나는 오직 나이고 싶다!”
내면에서도 나를 옭아매는 메시지들.
외부에서 끊임없이 침범하는 메시지들.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라는 모종의 암시들.
어떤 형태의 자기계발이든 심리치유든
그 은밀한 유혹 전부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진동했습니다.
마음은 소리쳤습니다.
“나는 오직 내가 될 거야.”
지금 내 모습으로는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없을 거라는 생존의 협박에도
그 마음은 굴하지 않고 소리쳤습니다.
내가 아닌 것은 다 허상일 테니.
그 말이 진리임을 알아도 그리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자기를
좁은 감옥에 가두듯 살아갑니다.
언제 어떻게 그리됐는지도 모르게
마음은 무미건조해집니다.
'나'의 생기를 잃고 '나'의 호흡을 잃고
세상이 알려준 법칙을 따라가려 애씁니다.
그 길에 답이 있다는 듯 착각하며
열심히 좇아가보지만 그곳에 도달해도
꿈꾸던 '그것'은 없습니다.
무지개를 잡을 수 없고 구름을 잡을 수 없듯이
눈에 분명히 보이는 듯했던 것들이 허상임을
신나게 헤맨 뒤에 알아차립니다.
진하게 방황을 하다 보면 알게 됩니다.
“'그것'은 어디에도 없구나.
'그것'은 애초에 없었구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오직 '나'만이 있구나.”
그런 '나'를 나는 돌보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게 어떤 '나'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살았습니다.
성격 검사를 하고 정신 분석을 해도 그 '나'는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 방법은, '대상화된 나'는 이미 내가 아니기에 처음부터 그른 길입니다.
그런데 이조차 실컷 헤맨 뒤에야 알 수 있다는 게 참 우습습니다.
허상임을 알기 위해 그토록 헤매야 했다니.
그렇다고 내가 '나'를 발견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발견할 수 있는 나', '발견되는 나' 같은 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나'만이 있습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지는 장맛비처럼
가슴으로 여실히 다가오는 '나'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자
새끼를 잃은 어미가 외치는 가장 큰 절규와도 같습니다.
가슴 깊은 그리움으로.
“오직 나로 살겠다.
내가 나이지 못하게 하는
다른 모든 것을 거부하겠다.”
하늘에서 끝 모르고 내리는 비처럼
눈물도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내가 나일 수 없다면
도대체 누가 나이겠는가!”
심리상담에서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늘 이것입니다.
상담센터 소개문 마지막도 '그대 자신이 되세요 언제나!'입니다.
결국 이 메시지는 나를 향한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나 자신에게 수렴됩니다.
“나이어도 좋을까?”
“'나'이어야 합니다.
'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 이외에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나'가 되지 않으면
세상만사가 아무 소용없습니다.”
좌종이 울리고 보이지 않는 소리가 공간을 메운 뒤
아스라이 부서지고 무너지고 사라지는 끝자락에
텅 빈 충만감이 가득합니다.
나는 '나'로 좋습니다.
여기까지예요. 그냥 사람으로 살려는 저의 몸부림. 이게 최우선이에요. 그래서 남은 반년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굳이 답을 하자면 ‘사람답게 잘 먹고 잘 쉬자’는 게 저의 계획이에요. 이미 투고 같은 건 잊고 살고 있어요. 나는 글 쓰는 사람이나 작가라는 타이틀보다 사람이 먼저 되어야겠어요. 내가 시시각각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요.
선물님이 제 답장을 어떻게 읽으셨을지 궁금하네요. 제 편지를 읽고 조금 더 살맛이 나면 좋겠어요. 지난 번 선물님 편지를 받은 지도 2주가 넘었으니 선물님은 또 다른 삶의 굽이를 넘고 있겠지요? 이번 굽이는 조금 더 완만하길 기원해보아요. 답하셔도 좋고 아니어도 좋지만 우리 서로 질문을 주고받았던 거 같아서 질문 하나 남깁니다. 선물님도 인생에 리셋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절대 리셋하지 않고 싶은 부분도 있나요? 리셋할 수 있는 선물님만의 방법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참, 서두에 꺼낸 긱스의 챔프 노래 있지요. 되는 일이 없다는 가사는 뒤에 이렇게 이어져요.
‘꼭 두들겨 맞은 듯이 상처뿐이어도 차마 쓰러질 수 없는 이유를 알기에. 다시 일어나 주먹을 쥔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그대의 마음에 그대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이 거친 세상에 자유를 꿈꾸는 그대가 바로 승자예요.’
2023.07.22. 오전 7시 40분 대전에서 그냥 사람 나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