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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물작가 윤 Oct 20. 2024

변명 한 사발과 보름달 기운 한 숟가락

선물작가의 열네번 째 편지


두 달이 지났어요. 정확하게는 열흘쯤 모자라지만, 편지를 받고 두 달이 지나갔어요.

강원도에는 봄이 오기 전이었는데, 오늘은 한여름의 보름달이 달무리를 끌어안고 나타났어요.

짠.


편지를 계속 주고받는 게 맞냐는 카톡을 미리 보기로 읽고, 카톡 답장이 아닌 편지를 쓰려고 또 일주일을 그냥 보냈어요.

그냥, 이라는 말은 사실은 아니지만, 어떻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도 기다리게 한 시간을 메꿀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여전히 해야만 하는 일은 쌓였고, 몸은 아프고, 정신은 망가졌지만, 그래서 더욱 편지를 씁니다.

해야만 하는 일들을 쌓아놓는 걸 싫어해요. 그래서 효율적으로, 최대한 열심히 하는데 약간의 완벽주의 성향은 대충해서 넘길 만한 것들도 그러질 못해요. 가장 못 하는 건 ‘창작’이에요. 시간에 쫓기고, 감정에 쫓기고, 일에 쫓기면 창의적인 건 아예 못해요. 그런데 해야만 하는 일들 중 큰 부분들이 창의적인 거예요.     


많은 일이 있었어요. 

편지를 마지막 받고 나서 정말 큰 일들이 많았어요. 무겁고 황당하고 숨이 막히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그 와중에 개인 공간과 시간도 사라져서 숨을 쉴 틈도 없었어요. 상황을 얘기하려 전화했을 때 나무님이 ‘내가 다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란 말과 ‘내가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도 안 물었잖아.’라고 했던 게 계속 마음에 남아 미안해요. 나무님은 정말 그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또 변명으로 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가, 모두 지웠어요. 배우 중 누군가는 구치소에 갔고, 그 자리를 메꾸려 제가 연기도 할 정도였답니다. 그건 많은 일 중에 하나예요. 두 달 반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삶에 대한 통제감을 잃었었어요.


지금은 새벽 3시 22분. 여전히 할 일은 쌓여 마음은 조급한데 달무리를 보고 있자니 나무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자꾸만 커졌어요. 

특히 투고하고 계약이 어긋나고, 어려운 시간을 겪는 나무님의 이야기를 차분히 단 한 번도 들어주지도 못한 게 제일 미안해요. 마음이 비어있고, 몸이 편안해야 귀를 기울일 텐데 마음이 온통 썩은 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고, 몸은 병원에서 뭐 했냐고 할 정도로 아프고, 그래요.

분명 좋아하는 일도 하고 있는데, 사람도 일도 어렵네요. 참, 많이.

언젠가 나아지겠죠? 이 나이에도 바쁠 만큼 일이 있는 건 좋은 거겠죠?

이런 막연한 희망이라도 붙잡으려는 게 답답해요. 이렇게 바쁘게 돈 벌어서 모두 건물주에게 바치고 있어요. 많이 버는 것도 아니지만, 버는 게 모두 월세로 들어가요. 심지어 혼자만이 아니라 건물을 빌린 거라 극단 식구들이 함께 그래요. 심지어 그래도 월세가 모자라요. 그만큼의 경치는 가졌지만, 경치를 볼 시간이 없답니다. 아이러니하죠? 하우스푸어를 제대로 경험하고 있답니다.     


요즘에도 커피를 마셔요?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용기도 매일 내고 있나요?

왠지 나무님은 여전히 그 자리에, 든든하게 자연의 섭리를 따라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다면서 흔들리는 듯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을 것 같아요. 자기 자신에게.

전 요즘 제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해서 부르르, 화르르, 그러다 어느새 울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나무님이 잊지 않고, 가끔 안부 전해줘서 참 고마워요.

버려도 시원찮을 인간에게, 새로운 기회처럼 오는 연락.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인간답게 살면서 잡은 기회가 있을까요?

아직 우린 9회 말까지 간 건 아니겠죠?

그러기엔 삶을 아직 다 산 건 아니니까요.

다 살았는지, 더 살 건지 알 순 없지만, 평균적으로 생각하면 아직 20년 즈음은 남았고, 아직 나무님이 얘기한 ‘통한의 역전골’을 넣을 기회가 오겠죠?

전 아무래도 ‘실패를 사랑’까지는 못하겠어요. 성공의 기반은 인내이고, 그 인내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전 매일 너무나 미지의 세계를 다니느라 목표한 곳으로 가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래서 나무님의 솔직하면서도 목표를 위해 단단히 나아가는 모습이 자극되기도 하고, 되려 제게 선물이 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래요.

나무님은 대단한 인간이에요. 착각이 아니라. 세상에 몇이나 꿈을 꾸고, 몇이나 꿈을 포기하지 않겠어요. ‘언젠가는’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고, 그런 기대를 채우기 위해 애써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인간이에요. 정말이요. 

나도 좀 얹어 갑시다!

과거에 어땠는데 지금은 이런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어땠다고 말하는 건, 과거에 머무르는 거지만, 미래에 이럴 거라고 말하는 건 나아가는 사람의 태도거든요. 더는 청년이 아닌 때는 어쩌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는 순간이 아닐까요?

우리 과거에 머무르지 말고, 현재에 포기하지 말고, 계속 망상이 아닌 꿈과 이상으로 조금 더 나아가봐요.

청춘은 꼰대의 다른 모습이죠!

우리는 아직도 나아가고 있잖아요. 아주 개미 똥꾸멍만큼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걸 포기하지 않는 게 실패를 사랑하는 거고, 인내하는 거 아니겠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제 자신도 위로받고 싶은 것 같아요.

아직 절망하기엔 이르다고, 아직 꿈꿔도 된다고, 토닥토닥.     


여전히 정신없지만, 다시 편지를 시작하며....

정신없는 편지를 보냅니다.

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무슨 얘길 하려는 거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의 이야기는 실패한 편지라도,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내 보자! 

나무님이 너무 기다리지 않게 뭐라도 하자! 가 하고픈 이야기입니다.     


11월부터 영월은 엄청 춥답니다. 심지어 지역 난방이라 가스비가 어마어마하게 비싸서 온수매트 위에 앉아 오방 난로를 켜고 앉아 있게 되어요. 하지만 겨울 풍경이 나름 멋지기도 하죠.     

아마 여유있는 커피 한 잔은 11월 정선 공연을 하게 되면, 그 이후가 되지 싶어요.

아주 한가한 겨울이 오기까지 몇 달 남지 않았네요.

벌써 반년이 지난 걸 보면요.

나무님의 남은 반년 계획은 어떤가요?

다시 투고하기 위해 글을 다듬을까요?

보름달 달무리를 보며, 오늘을 잘 보낸 자기 자신에게 뭐라고 하고 잠이 들었을까요?

이제 곧 나무님이 일어날 시간이에요.

하루하루, 열심히, 때론 덜 열심히, 가끔은 게으르게, 그래도 된다고 얘기하며 나름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나무님에게, 조심스레 안부를 묻습니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써 보겠노라고 소심하게 변명과 약조를 보내봅니다.

전 급히 디자인해서 보내야하는 작업만 하고 자야겠어요.

벌써 화요일이지 뭐예요!     


2023.07. 04. 03시 52분 영월에서 선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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