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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빈 Dec 14. 2023

쇼팽, 그 삶과 예술

 

              쇼팽, 그 삶과 예술

                               

                                                              김 한 빈

    

       

  클래식 입문  

   

  부산 근현대역사박물관 별관(구, 미문화원)에서 광복동 국제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국도레코드’(1970년대 중반~2006년 4월)라는 부산 최대 레코드점에 혹시 가 보신 적 있나요? 2층으로 올라가면 널찍한 클래식 전문 매장이 펼쳐지는데 왼쪽 벽면 부근에 몇 사람이 앉을 수 있는 ‘ㄷ’자 소파가 놓여 있고(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만), 소파 앞에는 당시 각각 2천만 원 상당의 고가 스피커 두 개가 웅장한 대리석 기둥같이 세워져 있고 그 가운데에 DVD 비디오(아마도 정확하게는 음악 감상 전용 DVD 오디오)의 커다란 모니터가 TV 수상기처럼 위치해 있었다. 거기서 해외 유수 관현악단의 연주 실황을 보고 듣는 것은 가슴 벅찬 감동이었다. 이제는 손바닥만 한 휴대폰으로도 유튜브를 통해 이를 무료로 볼 수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클래식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사부’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초심자의 취향을 잘 파악해서 천천히 단계별로 클래식의 세계로 유도해 줄 선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KBS FM2 92.7 Mz를 틀어 놓고 종일 음악을 듣는 사람도 그런 선배를 만나 체계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은 행운이다. 하지만 이제는 클래식 입문자를 위한 책자도 많이 출판되었다. 그 책에 소개된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등의 음악을 유튜브를 통해 들을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K-클래식은 다른 문화예술의 영역과 마찬가지로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다.   


   

 야상곡을 읊다    

 

  2002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제75회 아카데미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 수상,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등)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한 유대인 가족이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해체되고, 홀로코스트(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의 와중에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폴란드계 유대인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의 실화를 각색한 것이다. 이 영화의 주요 장면에 삽입되어 더욱 유명해진 곡이 바로 쇼팽의 〈녹턴(야상곡) 20번〉이다. 


 이 영화는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주인공인 유대인 피아니스트 슈필만이 쇼팽의 〈녹턴 20번〉을 생방송으로 연주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독일의 폭격으로 라디오 스튜디오가 폭파되어 그의 연주가 중단된다. 5년 후 1944년 바르샤바 봉기(바르샤바를 독일군에게서 해방시키기 위해 폴란드 국내군이 일으킨 봉기) 직후, 폐건물에 은거해 있던 슈필만이 독일군 빌헬름 호젠펠트 대위에 발각된다. 그 대위는 슈필만에게 피아노 연주를 요구하고, 슈필만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연주가 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 쇼팽을 연주한다.


  쇼팽의 〈녹턴 20번〉, 이 곡은 1830년 스무 살 때 고국 폴란드를 떠나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해서 작곡한 것으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였다. 작곡 후 누나 루드비카 쇼팽(Ludwika Chopin)에게 편지와 함께 이 곡을 헌정하였으며, 병약한 그가 폐결핵을 앓다가 39세로 세상을 떠난 뒤인 1895년에 유작으로 출판되었다. 


 <참고> 쇼팽이 고국을 떠날 때 그의 친구들이 폴란드의 흙을 은으로 된 잔에 담아 선물하였고, 그 흙은 불과 20년도 안 되어 파리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에 뿌려졌다. 유언대로 그의 심장은 고국 폴란드로 보내져 바르샤바의 성십자가 성당에 안치되었다. 


  쇼팽의 어떤 곡보다 그의 이름을 불멸로 만드는 데 많은 영향을 준 것은 깊은 밤의 정서와 섬세하고 풍부한 서정성을 담고 있는 녹턴이라 할 수 있다. ‘야상곡’이라는 뜻의 녹턴이라는 장르는 아일랜드의 피아니스트인 존 필드가 처음 만들었고, 이후 쇼팽이 정교하고 세련된 피아노 소품으로 발전시켰다. 쇼팽은 1827년부터 1846년까지 스물한 개의 녹턴 곡을 만들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녹턴 E플랫 장조, Op. 9-2>가 유명하다. 『쇼팽×김주영』 208쪽


  다음으로 쇼팽이 파리에서 활동할 당시 그의 동료들인 슈만과 베를리오즈, 그리고 리스트의 인상적이고 유명한 평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초기 낭만주의자 음악가들이 남긴 많은 글 가운데 ‘문필가’ 독일의 음악가 로베르트 슈만의 평론은 탁월한 음악적 상상력이 문학적 향기를 품은 이상적인 예다. 1831년 6월, 라이프치히의 한 악보 위에서 돈조바니의 유혹이 피아노 적 미감으로 변신한 <오페라 ‘돈 조반니’ 중 ‘자 서로 손을 잡고’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 2>를 접한 슈만은 『알게마이네 무지칼리세 차이퉁』에 쓴 평론에서 “여러분, 모자를 벗으시오. 천재요!”라고 했다. 『쇼팽×김주영』 88쪽, 제러미 니콜러스 『쇼팽, 그 삶과 음악』 83쪽 참조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쇼팽의 피아니즘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아경의 평화로운 기운이 연주 홀을 메우고 사람들은 한순간 박수 조차 칠 수 없는 순간을 느꼈다.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붓으로 쓰다듬기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피아노에 더 가까이 가고 싶어진다. 물의 요정이나 엘프가 연주하는 것처럼. -1833년 12월 15일, 「르레노바토」 중 『쇼팽×김주영』 91쪽, 제러미 니콜러스 『쇼팽, 그 삶과 음악』 107쪽 참조


  『내 친구 쇼팽』에서 리스트는 쇼팽의 예술을 접하는 감상자들의 심리와 연주자의 의식 세계 대해서까지 자신의 꼼꼼한 견해를 기록했다. 다음은 『르뷔 에 가제트 뮈지칼 드 파리』에 쓴 기사로, 과장하기 좋아하는 리스트의 연주 성향이 글에도 묻어난다.    

 

   쇼팽은 새로운 생각에 새로운 형식을 부여할 줄 안다. 조국과 관련된 야성적이고 투박한 정서는 과감한 불협화음과 기묘한 화성으로 표현되었다. 반면 그의 천성과 연결된 섬세함이나 우아함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기발한 선율과 장식으로 나타났다. 월요일에 있었던 연주회에서 쇼팽은 고전적 형식에 벗어난 작품들을 주로 연주했다. 협주곡, 소나타, 환상곡, 변주곡 대신 그날의 레퍼토리는 프렐류드, 녹턴, 에튀드, 마주르카였다. 대중보다는 자신의 지인들을 위해 연주했고, 자신의 본래 모습, 즉 비장하고 순수하며 심오한 시인이자 몽상가로서의 면모를 훌륭히 드러냈다. 쇼팽이 추구하는 것은 시끄러운 열광이 아니라 섬세한 공감이었으므로 일부러 청중을 놀라게 하거나 사로잡을 마음이 없는 듯했다. 『쇼팽×김주영』 184~186쪽   

  

  쇼팽의 본질을 이루는 단어 몇 가지를 떠올릴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이 폴란드어 ‘zal’이다. 영어로는 ‘sorrow’, ‘sorry’, ‘regret’ 등으로 풀이할 수 있지만, 모두 정답은 아니다. 단순한 ‘슬픔’ 이상의 깊이를 지닌 ‘zal’은 현재 상태의 슬픈 감정과 이미 저지른 행동이나 사건에 의해 정해져 버린 후회를 동시에 나타낸다. 1842년에 작고해 이듬해 출판한 <발라드 제4번 f단조, Op. 52>는 이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곡이다. 『쇼팽×김주영』 211쪽


 덧붙여 말하면 ‘zal’은 격정적인 비통함보다는 ‘우울함’이나 ‘애석함’에 가까운 단어다. 쇼팽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센티멘털함이 단순히 감상적으로만 느껴지지 않고 걷히기 힘든 우수를 지닌 것은 폴란드 특유의 ‘잘’이 작품의 가장 깊은 바닥에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녹턴, 폴로네즈, 마주르카 등에 녹아 있는 ‘잘’의 요소는 작곡가의 의식 세계를 솔직히 나타내고 있는 핵심이며, 쇼팽의 작품을 다른 작곡가들의 곡과 분명히 구분하는 특징이다. 『쇼팽×김주영』 279쪽     


 쇼팽의 전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소설 작가 ‘조르주 상드’다. (“남장하고 끊임없이 시가를 피우던 와일드한 여성해방론자” 제러미 니콜러스 『쇼팽, 그 삶과 음악』 146~166쪽 참조) 9년 동안 연인 관계를 지속했던 두 사람은 당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실 상드는 섬세하고 병약한 쇼팽을 돌보는 어머니 역할을 했고, 상드의 소유였던 ‘노앙’에서의 생활 덕분에 쇼팽의 위대한 음악들이 탄생했다고 한다.


 최고의 기교파 연주자로서 ‘피아노계의 파가니니’ 같았던 리스트에게는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이라는 연인이 있었다. 마리는 살롱을 꾸려 음악가(니콜로 파가니니, 조아치노 로시니 등)뿐만 아니라 문인(알렉상드르 뒤마, 빅토르 위고 등) 등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을 불러 모았다. 상드도 살롱의 단골 중 하나였다. 쇼팽과 상드의 만남에는 마리의 역할이 컸다. 150 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은 키에 통통하고 땅딸막해 보이는 체형을 가진 상드는 당시 살롱에 드나들던 미인들과 외모에서 비교할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특유의 쿨하고 단순한 말투와 조용하면서도 민첩한 행동거지에서 나오는 독특한 카리스마가 치명적인 매력으로 작용했다. 『쇼팽×김주영』 121~122쪽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삶과 그의 음악을 가장 잘 정리해 준 피아니스트 김주영의 표사의 일부분을 보자.

 “그는 이 시대의 누구보다도 대담하고 자신만만한 시인이자 살아 있는 영혼이다. 그의 음악은 꽃 속에 파묻혀 있는 대표다.” 낭만 시대를 대표하는 또 한 명의 음악가이자 평론가인 로베르트 슈만은 자신과 동갑내기인 프레데리크 쇼팽을 두고 이렇게 평했다. 프렐르드, 에튀드, 녹턴, 왈츠, 폴로네즈, 즉흥곡, 발라드 등 일평생 거의 피아노를 위한 곡만을 쓰면서 이 악기가 가진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깨우고 발전시킨 한편, 특유의 섬세한 서정과 우수, 교묘한 화성 진행을 통한 격정의 표출 등으로 낭만적 피아니즘의 정수를 보여 준 그를 사람들은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렀다. (이하 생략) 『쇼팽×김주영』 표사     


 

남구문인협회 기관지《오륙도문학》2023년 12월,  '음악을 그리다'  게재




   김한빈  

        

《문장 21》 시 등단 (2014), 평론 등단 (2017)

부산문인협회 회원, 남구문인협회 부회장. 《새글터》, 《상상》 동인

경성대 외래교수, 경성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오륙도신문> 운영위원

칼럼니스트 및 신춘문예 심사위원. 문예 종합지 계간 《문장21》 책임편집위원

숲길문학아카데미 시창작교실 운영

시집 : 『시지프스의 노래』(2022), 《오륙도문학》 작가상 수상(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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