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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ya Feb 12. 2018

촌스러운 여자

  나는 세련되지 못한 사람이다. 아니 더 정확히 촌스럽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외모도 그러할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 먹는 음식, 발길이 가는 곳 또한 그러하다. 아름다운 스카이라운지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와인을 곁들인 음식보다는 시골 장터에서 먹는 구수한 국밥 한 그릇에 더 끌린다. 꼬부랑글씨가 쓰인 메뉴판에 주눅이 들어서인지 그런 곳에서는 왠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불편함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평생을 하고 있는 일이 그 꼬부랑글씨를 가르치는 것인데도 말이다. 아마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갖춰 입어야 한다는 선입견에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내 옷차림이 낯섦을 거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시어머니는 맏며느리인 나를 당신처럼 세련되고 고급지게 해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하셨지만 영 내켜하지 않는 내 모습에 포기하고 둘째에게서 위안을 받으시는 것 같았다. 

고급 옷으로 치장을 한들 별 표가 나지 않을 내 외모와 그 돈에 배고파 고통받는 아이들의 얼굴이 자꾸 어른거리니 선뜻 질러대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마음만 불편하지 그 아이들을 위한 자비의 큰 손을 내밀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가끔씩은 그러한 내 성격에 화가 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해서 백화점에 가지만 성격이란 그리 쉽게 바뀌지도 않기에 언제나 ‘앉은뱅이 앉아서 용쓴다’는 말처럼 수도 없이 오르내리며 눈과 다리만 힘들게 할 뿐 좀처럼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다 큰 자식에  사돈 맞을 때도 되었는데 옷차림도 피부도 손 좀 보라는 타박도 여러 번 받았지만 늙으면 주름 생기는 게 당연한 이치인데 뭘 그리 야단이냐고 도리어 짜증을 내었더니 이제는 그런 충고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러한 내 성격을 잘 아는지라 어느 해 여름 남편이 순수하게 먹고 놀고 오자며 남태평양 휴양도시 괌으로 휴가 계획을 세웠다. 눈만 뜨면 아름다운 물결이 넘실대는 바다가 있고 세계의 맛난 음식은 다 있는 곳인데도 일주일간 내가 한 것은 천 날 만날 먹던 우리 음식을 직접 해 먹고 면세점의 그 예쁜 옷들을 마다하고 아웃렛 매장에서 산 청바지 하나를 건져 온 것이 유일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눈 떨어지면 간 곳이 수도원 공동묘지였다. 묘지 옆에 차를 세우고 누가 숙제를 낸 것도 아니건만 묘비명 하나하나를 읽으면서 울다 웃다 하다가 왔다. 청승도 이 정도면 병적인 수준 이건만 나는 정말로 편하고 좋았다.

 

  유유상종 끼리끼리 모인다는 속담도 있지만 주변의 지인들을 보면 그렇지는 않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 살아가야 하는 것이 현대의 삶인지라 나 역시 성격도 취향도 다른 여러 사람들과의 모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다 ‘라고 여겨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좀은 색다른 모습에 신기해하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내 모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 것 같다. 딸에게서 이러한 내 모습이 보일 때면 은근히 화가 나는 걸 보면 말이다. 돈은 버는 놈 따로 있고 쓰는 놈 따로 있다는데 엄마처럼 청승 떨며 살아갈까 봐 미리 걱정이 되어 그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습관의 산물인지 유전적 원인인지 생각해 보아도 딱히 맞아떨어지는 답은 없다. 같은 부모 밑에서 함께 자란 형제자매들의 성향은 나와는 많이 다르고  나에게 이런 촌스런 기질을 고치라고 충고하는 이들이 주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혼자 조용히 산속에서 살 팔자에 이렇게 세상의 중심에서 살아가야 하니 힘들겠다고 조소를 받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여러 사람이 모여 시끌벅적한 것을 싫어할 뿐 아니라 하루 종일 식구들과 함께 해야 할 때면 화장실의 좁은 공간에서라도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나는 자기 견해를 똑 부러지게 말하거나, 반박을 받을 때조차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 의사를 분명히 전달하는 사람을 볼 때면 거의 존경심마저 든다. 엄한 가부장 가정에서의 성장 때문에 자기주장을 못 편다고 조상 탓을 해 보지만 결국은 촌스런 나의 기질일 뿐이다.

 

  지금 이 나이에 내 주장 내세우면서 국회의원 나갈 것도 아니고 타고난 성향이 이러할 진데 나다움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남들이야 어떻게 여기든 나는 읽을 책이 있고 쓰고 싶은 글이 있기에 오늘도 행복한 나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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