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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ya Oct 22. 2018

여행을 하며

  공항과 터미널엔 언제나 약간의 흥분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결혼을 앞둔 딸아이가 모녀만의 여행을 제안했다. 아들과 목욕탕에 가고 함께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아버지들의 로망이라면 딸과의 여행은 엄마들의 로망이기도 하다.

  그런 로망은 내가 바라던 바는 아니었지만 결혼 전의 여러 가지 번잡하고 지저분한 일들을 덮어버리기엔 충분했기에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스페인의 한 작은 도시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앉아있는 여러 국적,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에는 그러한 흥분과 두려움이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나 같은 이방인의 얼굴에서도 충분히 읽어냈을 그런 감정이었겠지만 속내는 두려움이 흥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올여름. 그렇게도 길게 이어지던 더위는 한 지인의 부모님을 같은 날 미지의 여행길로 데려가셨다. 70세가 되던 해부터 은퇴자의 삶을 시작한 그 부모님을 맏딸의 효심으로 병원 가는 일과 생활 전반을 수발 들어온 지인은 30년 가까이 이어져온 그 일들로 너무나 힘들어했다. 

가끔씩 자기 아이들에게는 고아가 되는 기쁨을 안겨 주고 싶다는 진담 같은 농담을 들으며 그 마음을 공감하곤 했었다.

 마지막 몇 년을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어머니와 여러 번의 눈 수술로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자식들이 힘이 들까 봐 그 사실을 숨기고 힘든 생활을 하신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그렇게라도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병간호가 힘이 들어 빨리 돌아가셨으면 하는 두 마음으로 죄책감이 무거웠다고 했다.


자기 인생에 커다란 등불로써 자리한 아버지가 마지막 몇 년을 죽음을 거부하는 초라한 범부로 보여서 마음이 아팠다고도 했다. 같은 날 4시간 차이를 두고 아내를 먼저 보내고 마지막 길을 떠나신 아버지의 삶을 그 딸은 사랑과 존경심으로 보내 드렸다.


  촛불도 꺼지기 직전엔 더 밝은 빛을 발한다는데 한 생명의 종말을 준비하는 데는 꽤 많은 인내와 아픔이 있는 것 같다.

죽음은 단지 옷 한번 바꿔 입는 것일 뿐이라고도 하지만 태어날 때 주변 모두의 축복으로 이 세상에서의 시작을 함께 하듯, 죽음 또한 마음과 몸의 준비 의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같은 생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여행도 이러할 진데 모든 것이 낯선 다른 생으로의 여행은 약간의 흥분보다는 두려움이 좀 더 크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지금 타국의 소박한 터미널에 앉아 여행의 즐거움에 들떠있는 딸아이를 마주하고 있다. 젊고 예쁜 저 얼굴을 바라보며 지난날 삐거덕대던 딸과의 관계를 되돌아본다. 진짜로 혼자만 가야 할, 그 두려운 여행에 지금처럼 이 아이와 함께는 할 수 없을지언정 이 아이의 사랑만은 함께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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