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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eyonell Jan 24. 2024

잠.

나는 어디에서 잠자는 것인가?

어제는 전일근무(9시 출근, 익일 9시 퇴근, 즉 24시간 근무)였다.

유난히도 추운 겨울날 아침 패딩 옷섬을 두 손으로 잔뜩 여며매며 공항이 주는 따뜻한 온기 속으로 얼른하고 들어가, 꼬박 25시간 만에 오늘 아침 다시 그 길을 통해 추운 공기를 콧속 가득 마시며 퇴근한 것이다.


어제 오전 9시 스케줄을 시작으로 23시 공식적으로 업무를 마감한 후 익일 4시 스케줄을 위해 쪽잠을 청했다.

공항에는 상주직원을 위한 수면 시설이 마련돼 있고 우리는 고된 일정을 마치고 잠시 몸을 뉘인다.

잠이라고 해야할까, 잠시 눈을 붙이는 것에 그친다. 

그러다보니 이 일을 시작하고 만 3년이 다 되가는동안 쭉 수면장애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는 대다수의 야간 교대 근무자들이 겪고 있는 증상이기도 한 것....(다른 길로 새기 전에)


어제는 일이 너무 힘들었던 날인 탓에, 4시간정도의 쪽잠을 꽤나 깊게 취한 날이었다. 

그리고 퇴근해 한 숨 더 자고 이렇게 글을 잡고 있는 이 순간,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어디에서 잔 것인가?'

나는 공항근무를 위해 본래 살았던 지역을 벗어나 공항에서 차로 15분 거리에서 1인 가구로 살고 있다.

나는 어디에서 잔 것인가?


교대근무를 시작하고서 집에서 만족스런 잠을 이뤄본적이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술에 취해 거의 시간을 통으로 날려버렸다는 말이 어울릴 상황을 제한다면,

잠이 깊이 들지도 않을 뿐더러 삼십분, 한 시간마다 깨지는, 내 집에서의 잠이었다.


야간근무때 공항에서 잠을 청할때도 상황은 다를 바 없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내 맘 속에서 이 곳에서는 잠 밖에는 할 게 없어, 라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잠을 청하려 했던 것 같다. 


내게 집이, 정말 여기 운서동의 한 개 오피스텔 여기가 맞는 것인가?

열흘 중 공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공항에서의 잠이 더욱 달콤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직장과, 집의 경계가 흐릿하다.

분명 난 공항의 대문을 열고 나와 내 차를 타고 내 집으로 왔건만,

여전히 지금 내가 들어와있는 세상은 공항 속이다.

공항은 저기 10km 떨어져있지만, 그가 뻗치고 있는 세력은 여전히 내 영역을 감싸안고 있다.


일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땐, 공항에서 잠을 청하는 밤이 그토록이나 억울하고 답답하곤 했는데,

이젠, 이 집이 그집이고 그집이 이 집 같으니.....


난 어제 어디서 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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