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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 아 무개 Dec 16. 2019

구 십 구 쩜 오

어른이 된다는 것



바람이 어느덧 꽤 쌀쌀해졌다.

사람들은 지금을 가을이라 부르는 듯하다.

가을.


나는 가을이 좋다.

여름과 겨울 사이, 그 중간쯤의 경계에서

가장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날이랄까

언제 찾아온지도 모른 체

잠시 왔다가 사라져 버리는 가을이

좀 괘씸하긴 하지만 그래도 좋다.

아아아ㅏㅏ아아아아아ㅏㅇ

그래서  좋다.



내 나이 열아홉

열아홉과 스물 그 사이, 어느 중간쯤의 경계에 온 듯하다.

이 시기가 마냥 행복하진 않지만 이 시기를 조금이나마 좋아해 보려 한다.

가을보다도 더 괘씸하니까. 잠시 왔다 사라지고 다신 찾아오지 않을 테니...

하지만 감히 짐작해보자면 대부분의 어른들처럼 아마 좋아지려던 찰나에 이 시기는 지나갈 거다.



몇 발짝만 가면 어른이란다.

어른

나에겐 꽤나 가슴 떨리는 단어다.



난 이제 곧 다가올 어른이란 세계에서 좀 더 나은 어른이고 싶다. 좀 더 나은 어른이 뭐냐고 묻는다면... 좋은 어른이라고 하면 설명이 좀 될까..? 잘 모르겠다.

새삼 예능프로 '어쩌다 어른'이란 말이 이렇게 공감될 줄 누가 알았겠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어른이 될 것 같은 생각에, 지금이라도 조금씩 생각해보려 한다. 이 모든 것이 내 열아홉과 스물 그 중간쯤 경계의 흔적이 될 테니.


2017년 9월즈음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더럽혀지더라도 흰 것을,

오직 흰 것들을 건넬게.


더 이상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게.

이 삶을 당신에게 건네어도 괜찮을지.


- 한강 <흰> 중,




오늘 2020년 나의 흔적들을 남길 일기장을 구매했다.

2019 일기장에는 연필로 끄적일 수 있는 상자가 30개조차도 남지 않았기에 산 것이다.


벌써 열아홉의 내가 윗글을 쓴 지 두 해 하고도 2개월가량의 시간이 흘러 버렸다.

약 30일 정도가 흐르면 '스물두 살'이라는 타이틀을 다는 나는 정작 2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게,

지금보다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어른 어른 어른 어른 어른 어른 어른 어른...


술 먹고 담배를 피니 어른이지 않을까, 혼자 생각한다.


약 일주일 전, 우연히 한 택시기사 아저씨를 만났다.

20분간 택시가 잡히지 않아 심장 박동수가 최고치를 찍던 그때, 극적으로 한 택시가 와 올라탔다.

차고지가 목적지 근처라 다행이라며, 오던 콜도 다 거절했다가 나를 태웠다는 아저씨와의 대화가 시작됐다.



" 한국당 어떻게 생각해요? "



경복궁을 거쳐 온 택시가 시위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그대로 발이 묶여 버려 화가 난 기사님의 아주 함축적이고 날카로운 호흡이었다.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나는 한숨 섞인 웃음만 내쉴 뿐이었다. 상대는 60대 할아버지셨으니 그 질문이 내겐 꽤나 날카로우면서 공격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나의 경계심은 약 몇 초만에 허물어졌다.



" 똑똑한 젊은이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가야지. 저런 식으로 무슨 정치를 한다고. 이제 정말 여자들이 나설 차례예요. 여자가 남자보다 똑똑하잖아. 저들은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어휴..."



60대. 남성. 택시기사 아저씨이다.

어른이다.

멋있는 어른이다.


정치색깔만을 보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적어도 기사님은 나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목적지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진 또 다른 어른과의 대화는 나를 더 나은 어른이 되도록 해줬다.


내년, 아니 적어도 남아 있는 2019년은 더 똑똑하게, 현명하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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