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정주행한 드라마다. 이 드라마들이 대체로 시즌 1이 2020년, 시즌 2가 2022년에 방영하였으니 늦어도 한참 늦게 본 셈이다.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지겨움을 불러오는 반복 작업을 견디고자 무작정 틀어놓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웰메이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비밀의 숲>을 첫번째로 본 건 좋은 선택이었다. 짜임새 있는 전개와 조연들마저 캐릭터에 빙의한 듯한 연기, 시청자를 홀리는 연출에 나는 미친듯이 빠져들었다.
결혼 하고 영화관에 간 게 고작 두 번일 정도로 영상매체를 크게 즐기지 않는 내가 결말을 기어이 보아야 했다. 지루했던 업무는 드라마를 보기 위한 핑계로 바뀌었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나는 TV로 만화를 보는 것보다 밖에서 노는 걸 더 좋아했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한 건 내 취향이 아니었던 걸까. 나이가 들어서는 드라마를 보는 건 시간 낭비라는 부정적인 생각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해서 TV를 보는 대신에 생산적인 무언가를 한 건 아니었지만 TV시청은 대체로 내 선택지에 없었다.
그런데 드라마를 연달아 보고나니 넷플릭스에서 우리나라 드라마가 인기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부족한 개연성은 배우들의 찰진 연기로 메워지고, 고작 한 마디를 던지며 지나가는 아저씨 역할 마저 자연스러우며, 현장감 넘치는 연출은 시청자를 그 자리로 불러들인다.
나는 드라마를 보며 권력과 맞서는 형사를 응원하고, 정의롭지 않은 법에 분노하며, 투닥거리면서도 서로를 아끼는 형제애에 눈물 흘렸다.
나는 왜 갑자기 드라마에 빠진걸까?
드라마로 대표되는 TV시청을 나쁘게 보는 대신 즐거움을 찾았기 때문인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가 주는 가장 근본적인 즐거움인 '재미' 말이다. 그런 재미를 애써 외면하는 대신 순수하게 즐기니 단조롭고 지루한 내 삶에 생기가 도는 것 같다. '덕질'을 하는 이유도 이해하게 되고, 다음 시즌을 기다리는 마음도 알겠다. 요즘 내가 <구미호뎐 1983> 덕질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새롭게 드라마에서 재미를 찾은 건 우연이었지만, 내 고정관념과 닫힌 삶의 패턴이 내 삶을 얼마나 무료하게 만드는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삶에 재미를 더하는건 크고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을, 열린 마음으로 돌아보면 구석구석 숨어있는 소소한 재미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은 드라마 속 세상에 머물러있지만 현실로 돌아온 후에는 내 삶을 풍요롭게 해 줄 또다른 재미를 찾아나설 것이다. 어쩌면 길을 가다 마주치는 꽃에 이름을 불러주거나 공원에서 만난 새에게 인사를 하는 것도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