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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단미
Jun 24. 2024
라디오가 내 친구는 아니지만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마자마 바로 언니네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남편 사무실이 있는 서교동에서 출발하여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기 위해선 서울 시내를 통과해야하는데, 금요일 저녁 서울 시내는 출근할 때보다 차가 더 많아진 듯 모든 도로는 온통 차로 꽉 차있었다.
30km도 안 되는 속력으로 가다서다를 반복하니 지루했는지 남편이 라디오를 틀었다. 혼잡한 도로만큼이나 답답한 마음을 달래주는 듯 우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홀린듯 그 채널에 주파수를 고정했다.
'사연 많이 보내주세요. 소개되신 분들께는 커피 쿠폰을 드립니다. 보내실 곳은....'
소개만 돼도 커피 쿠폰을 준다고?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문자 보낼 전화번호를 중얼중얼 외우며 얼른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커피 쿠폰이 대단한 선물도 아니고 평소같았으면 흘려 들었을 말인데 그날 따라 도전 정신이 생겼나보다.
그런데... 뭐라고 보내야하지?
뭔가 특별한 내용을 보내야 뽑힐 것 같은데 그런건 없고 그대로 휴대폰을 내려놓기엔 아쉽고... 에라 모르겠다.
'퇴근하고 춘천에 사는 언니네 집으로 가는 중인데 차가 정말 많이 막힙니다. 모두 안전 운전하세요.'
대충 이런 평범한 내용으로 보낸 것 같다. 서울에 차 막힌다는 뻔한 말을 사연이랍시고 보내다니. 커피 쿠폰은 커녕 소개조차 안 되겠군.
'지루한 퇴근길에 잠깐 재미를 찾았다는데 의의가 있는거지 뭐.'
지레 포기하고는 창 밖으로 눈을 돌려 지나는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는데 라디오에서 나오던 노래가 끝나자마자 내 사연이 소개 되는게 아닌가! 보내신 분이라며 읊어주는 전화번호 끝 네 자리는 분명 내 번호였다!
"오빠, 방금 라디오에서 나온거 들었어? 내가 조금 전에 보낸건데 뽑혔어!"
흥분한 나는 남편에게 신이나서 떠들었다.
"아싸~! 커피 쿠폰~!"
남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 마디 했다.
"뭔데? 난 하나도 못 들었어."
내 사연이 나올 줄은 몰랐으니 라디오에 집중하지 않았겠지. 상관없었다. 난 그저 재미삼아 보냈을 뿐이고, 또 남편은 듣지 못했어도 그 시간 그 방송을 듣고 있는 누군가는 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을까? 그거면 되었다.
이듬해 봄인가 상습정체구간에 들어선 출장길에서 다시 한 번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다. 사연인즉 길 따라 화사하게 핀 개나리가 이쁘다는 짤막한 내용으로, 예전만큼이나 평범하기 그지 없어 뽑히리란 기대는 여전히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 또다시 내 사연이 소개되었다. 커피 쿠폰은 따라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좋았다.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 사람이 있는 것만 같아서.
재택 근무를 하노라면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 긴 시간을 몇 마디 대화없이 보낼 때가 많다. 회사 업무는 메신저와 메일로 처리하고 가족이나 친구사이에서도 전화보다 카카오톡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목소리를 내어 말할 때가 드물다. 혼잣말이 늘어가고 수다가 그리워진다.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차가 막혀요', '개나리꽃이 피었어요'가 라디오 사연에 뽑힌건 나처럼 일상 대화가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서였을까.
트럭기사, 택시기사들에겐 라디오가 더없이 좋은 친구라고 한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 인기라고한들 운전을 하며 영상을 볼 순 없으니 라디오는 그들에게 여전히 소중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건 특별한 뉴스가 아니라 '오늘 날이 너무 덥네' '비가 와서 차가 막혀' 처럼 옆사람과 주고받을 수 있는 편한 말들 아닐까. 대화의 가뭄 속에 목말라하던 나처럼.
라디오 사연으로 평범한 내용을 담은 두 번의 선택은 잘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사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쳐줄 라디오 속 친구들에게 말을 건넨 셈이었으니. 나도 언젠간 라디오 속 너머 누군가로부터 위로받을 날이 있겠지.
라디오와 친하진 않지만 사람사는 이야기가 궁금하고 대화가 그리운 날엔 종종 무심히 라디오를 켜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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