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흐리고 몸살 기운이 있다는 남편 말에 뜨끈한 국물이 필요한 것 같아 국수집엘 갔다. 여수에서 잡은 멸치로 국물을 우려낸다는 이 국수집은 국물도 맛있지만 겉절이가 일품이다. 이 집에 가는 목적이 절반은 국물이요 절반은 김치인 까닭이다.
칼국수와 멸치국수 각 한 그릇과 주먹밥, 튀김만두를 주문하고 앞접시에 푸짐하게 담아온 김치와 함께 뱃속이 불편할 정도로 잔뜩 먹었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뒤를 돌아보고 싶어졌다. 출입문 근처가 조금 소란스러웠던 걸까. 나는 출입문을 등지고 앉아있었기에 소란스러움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뒤를 돌아보아야 했다.
부산함의 주인공은 바로 두 아이와 아이들의 엄마였다. 얌전히 의자에 앉아있는 유치원생 정도 되어보이는 첫째 아이, 아장아장 걸음마 연습을 하는 둘째 아이, 둘째를 번쩍 안아들고 의자에 앉힌 후 아기용 의자를 가지러 간 엄마. 사실 그리 소란스럽지도 않았다. 손님이 드나들 때 으레 있을 법한 정도였으니.
아기용 의자를 가지고 온 엄마는 둘째를 바닥에 내려놓고 식탁 의자를 하나 뺀 후 아기용 의자를 넣으려 하였다. 둘째는 바닥에 닿자마자 이리저리 걷기 시작했고 좁은 식당에서 아이가 어딘가에 부딪칠까 염려 된 나는 나도 모르게 일어나 아이 엄마 쪽으로 다가갔다.
"식탁 의자는 밖에 가져다 둘게요."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나는 식탁 의자를 들고 출입문 밖 테라스에 가져다 두었다. 내가 돌아오길 기다린 아이 엄마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고, 둘째 아이는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마치 선물이라도 주는 듯 내게 내밀었다. 얼떨결에 받아 들고 나니 아이가 입에 넣고 씹던 빨대였다. 빨대에는 아이의 치아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 귀여운 선물에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제가 버릴게요. 주세요."
아이가 쓰레기를 건네주어 미안한지 아이 엄마가 식탁 아래 쓰레기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아이에게 고맙다고 말하려고 허리를 숙였는데 그 순간 아이가 두 팔을 벌리고 내게 다가왔다. 이건 분명 안아달라는 신호다. 낯선 내게 안아달라니? 눈이 동그래진 채 나는 일단 아이를 안아 올리고 아이 엄마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기 잠시만 안고 있어도 될까요?"
"네. 그런데 무거우실텐데..."
"하나도 안 무거워요. 엄청 가벼워요."
아이는 정말 가벼웠다. 그리고 내 품이 익숙한 것 마냥 폭 안겨있었다. 조카를 업어 키운 경험이 있어 아이 안는 것이 익숙한 나는 아이가 불편하지 않게 자리를 잡고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안길 땐 쉬이 안기더라도 금방 내려달라 발버둥칠 줄 알았는데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설마 그새 잠이 든건가?
편하게 잘 안겨있는 걸 핑계삼아 나는 아이를 계속 안고 있었다. 그래봤자 일 분 정도지만.
아이 머리카락에선 아기 특유의 냄새가 났다. 우유 냄새가 살짝 섞인 듯한 그 냄새는 아기들에게서만 맡을 수 있다. 외출하기 전 깨끗하게 씻었는지 아기 냄새 외에 땀냄새 조차 나질 않았다. 그 조그만 생명체를 안은 그 짧은 순간 세상이 고요해지고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무도회에서 오직 자신들 둘 뿐이라는 듯 서로를 바라보는 그런 장면과 비슷하달까.
가볍지만 생명력이 느껴지는 몸, 특유의 냄새. 내 품을 낯설어하지 않는 편안함. 아이는 그 자체로 평온했다. 그 평온함이 내게도 전달된 걸까. 우리가 머문 시공간이 순식간에 고요해질만큼?
'그만 가자.'
남편의 말에 이상한 경험에서 빠져나오며 아이를 엄마 품으로 돌려주었다. 왠지 모를 아쉬움이 뒤따랐다.
순수한 아이들만이 전달해줄 수 있는 평온함을 느낄 있어 아기와 함께있을 때면 엄마들이 자신도 모르게 행복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 경험을, 이 느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언젠가 의도치 않게 또다른 아이를 안게 될 때 이 느낌이 되살아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