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사람, 빌라 계단에 개인 소유 화분을 줄줄이 늘어놓고 키우는 사람, 사유지에 무단 주차를 하고도 배째라는 사람, 임산부 자리를 양보해달라는 임산부에게 되려 큰소리치는 사람... 우리가 '진상'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종류와 수가 점점 늘고 있는 느낌이다.
개인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예전이었다면 묻혔을 각종 진상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 뿐이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예전에는 요즘처럼 뻔뻔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잘못한 사람이 오히려 더 당당하고 내가 하겠다는데 당신이 어쩔거냐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적반하장은 법의 힘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 더 많이 일어난다.
공권력 들어오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불편하지 않도록 선을 지키는 것을 우리는 공공질서 또는 예의라고 한다.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는 기존 진상에 더불어 별의별 신종 진상이 업데이트 되는 요즘, 이런 사회가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했다. 엊그제쯤이니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이다.
자정작용을 잃은 사회는 힘이 센 사람, 목소리 큰 사람, 돈 많은 사람, 염치 없는 사람 위주로 돌아갈 것이며 여기저기서 시끄럽고 크고 작은 소동이 있을 것이다. 그런 혼란이 점점 커지다 비뚤어진 세상을 바로잡겠노라며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구원자가 등장하겠지. 구원자는 사회를 개혁하는 듯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독재자가 되고, 정신차린 시민들은 독재자를 물러나게 하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오고, 피를 먹은 민주주의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돌고 도는게 아닐까? 하는게 나의 상상이었다.
그리고 어제밤, 계엄령이 선포됐다.
가짜뉴스일거라 생각했고 그러길 바랬지만 윤석렬 대통령이 전면에 나선 이상 거짓일 수가 없었다.
"계엄령을 해제하라는 구호를 다시 듣게 될 줄이야."
어이없음과 허탈함과 기가막힘이 뒤섞인 묘한 표정으로 남편이 말했다. 나 역시 내가 사는 동안 이런 일을 겪을 줄을 예상치 못했다. 엊그제 나의 상상은 그저 상상일 뿐이었는데, 마치 실현이라도 된 듯 현실로 다가와있었다.
'목숨 걸고 밖으로 뛰쳐나가야하는 상황이 오면 어떡하지'
상상이 너무 진지했던걸까. 나는 벌써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다. 숨죽이고 있어야할지, 행동을 보여주어야할지 나름대로 지침을 정해야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서울시내에 탱크가 들어와있고 무장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해서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는 두려운 소식이 계속 들려왔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들은 국회를 막고있는 무장군인 앞에 용감하게 맞서고 있다는 긴박한 상황까지 보도되었다.
새벽 한 시쯤 됐을까. 남편이 말했다.
"진짜 계엄할 생각은 없었나봐. 그럴거였으면 인터넷부터 끊었어야지."
듣고 보니 그랬다. 무언가를 할 작정이었다면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해치우고 국민들에게는 계엄령이라고 뒤늦게 통보했겠지.
이제서야 약간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회 요구로 계엄이 해제되었고, 무장군인들도 철수한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이제 두려움이 사라지고 여느 날과 다름없는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 1호 3항은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로, 나의 업무와 직결된다. 비록 비상업 출판사긴하지만 출판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긴 하니까. 우리가 만든 책을 일일이 검열받는다는 상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
잠시였지만 "언론출판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라는 교과서에서 보던 말들이 쟁취해야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책 한 권 내는 것 조차도 자유라는 이름이 보장해주는 거였다니. 인쇄 공정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던 출판이 자유라는 이름 위에 서 있던 거구나.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던 자유가 언제든 빼앗길 수 있는 권리라는 걸 경험으로 배운 날이다. 모르고 살 만큼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고작 40년 유지되온 민주주의가 언제 다시 암흑기를 지날 지 모르지 이렇게라도 배워두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중년인 나도, 미래 세대를 이끌어나갈 우리 아이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