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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륜 Jul 27. 2021

아름다운 실패를 위해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 요조


요조님!

작가님의 책을 읽고 나서야 들어보았어요. 뮤지션 요조의 노래를. 한 사람은 곧 한 권의 책이라는 말처럼, 요조님의 책과 노래로 당신을 알게 되어 반갑습니다. 책 제목을 보고 예술가로 살아가는 일에 어떤 실패들이 있었나 궁금했지요. 글과 음악의 경계를 섞어내는 삶이 잔잔하게 읽혀지고 마음에 와 닿았어요. 당신이 부르는 노래처럼 말이죠. 누군가 노래를 들어주고 책을 읽어주어야 존재하는, 가수와 작가라는 직업은 마주 쳐 울려 소리 나는 손바닥 같아요.  가끔 그 손바닥이 어긋나서 “짝!” 소리는 없이 아픔만 남을 때나, 허공 속을 혼자 휘젓듯이 외로울 때도 있지 않았나요? 청춘의 한 가운데서 모든 불확실함을 자신 안에 받아들이면서 삶을 사랑하고 있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당신은 실패가 자연스러운 시간 속에서, 슬퍼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네요.



나는요,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릴 때마다 청춘을 부러워합니다.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는 내 뒤에서 소리가 들리지요. “지나가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청년들이 쌩_하고 나를 앞서갑니다. 몸에 딱 붙는 라이딩 저지를 입은 그들의 몸에는 군살이 하나도 없어요. 낭랑한 목소리가 맑은 공기를 울리고, 질주하는 은색 바퀴가 봄 햇살 아래에서 반짝이죠. 빠른 속도만큼 부러운 건 넘어질 생각 따위 전혀 없는 자신감이랍니다. 그들에게 위험한 건 나처럼 중년의 아줌마가 자전거길인 줄 모르고 어슬렁 걸어 들어오는 돌발 상황 정도겠죠. 자전거에서 몇 번 넘어져본 나는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바퀴를 보며 생각했었어요. ‘저들에게도 겁 나는 것이 있을까?’



요조님!

별을 무서워하는 당신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질투의 마음은 공감으로 조금 걸어갔어요.  ‘겁나는 대상이 다를 뿐이구나, 아름다운 별을 생각해도 오소소 소름이 돋을 수 있구나.’ 상실감과 두려움 사이를 오가는, 어쩔 수 없는 감정 가운데서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시를 읽는 당신. 별 앞에서 두려운 마음 그대로 생생하겠다는 그 다짐이 나는 참 좋았어요. 실패를 사랑하려면 나에게서 도망치지 말아야 하니까요.


겁이 난다는 사실이 겁이 나고 그 겁이 또 겁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나는요,

시인의 입을 빌려 힘을 얻는 뮤지션 요조님처럼 나도 겁나는 것을 조심스럽게 꺼내 봅니다. 예전에 나는 높은 곳에 서 있는 것이 겁나서 산 위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쳐다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어요. 남편에게 이끌려 북한산 백운대에 올라간 후에 두려움이 조금 사라졌어요. 네 발로 기어서 바위 바닥만 보면서 애쓰고 기어 올라간 효과가 있었죠. 산 정상에 도착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하늘 가까이에 있다는 기분이 두려움 보다 더 생생했지요. 이제 양손에 등산용 지팡이를 붙잡고 가끔 산에 갑니다. 네 발로 가뿐하게 뛰어 올라오는 개들을 부러워하면서요.


자전거는 나를 부러움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친구가 되었어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질주하던 자유가 다시 나에게 찾아왔다고 느껴져요. 나는 요조님 나이 즈음에 몸이 부서지는 지도 모르고 일을 했어요. 땀이 흐르지 않는데 몸 속의 수분이 말라가는 기분, 밤에 자리에 누우면 내일 아침에 눈 뜰 자신이 없는, 그런 날들을 보냈죠. 사십 대를 불혹의 시대라고 하잖아요. 공자님이 세상 일에 미혹되지 않았다고, 그 말씀이 맞는 걸까요. 아님 내가 그만한 깜냥이 아니라서 그랬을까요.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아침에 업무를 보다가 갑자기 결심했어요. “이제 그만하자.” 그대로 일을 접고 사표를 썼죠. 그리고 책들을 읽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어요. 말 그대로 백조가 되어서 자유로운 날개를 펼치고 살게 되었죠.



요조님!

달리기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를 읽으며 맞장구를 쳤답니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숨이 턱까지 차 올라서 달리는 것을 멈추었더니 이때다! 하는 듯이 얼굴에서 땀이 일제히 솟구쳐 턱으로 흘러내렸다는 사실.



그 땀이 어떤 온도였을지 잘 알아요. 내 속에 숨어있던 에너지를 깨워 일으키는 느낌이죠. “하면 할수록 나아진다는 확실함. … 적금처럼 나는 착실하게 훌륭해졌다. 그런 황홀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고 했잖아요. 적금이라는 비유가 얼마나 적절한지요. 몸을 쓰며 땀을 흘리는 소비는 영혼의 통장에 잔고를 채우는 거죠. 달리는 만큼 날씬해지는 건 몸이라기 보다 내 생각에 붙어있던 두터운 지방들 같아요. 하지만 무릎이 아파지고 허리도 말썽을 일으키지요. “요즘 달리고 있거든요.”라고 소개하며 사랑에 빠진 기분 이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저도 PT를 받았어요. 칠십 대 할머니가 되어도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Between Us> 라는 제목의 작품 앞에서 불확실의 영역으로 자신의 몸을 깨닫는 요조님. 맞아요, 우리는 달리는 것을 사랑하지만 불확실한 내 몸을 받아들여야 하는 삶을 살아요. 달려도 몸이 아프고, 동굴 속에 숨어도 마음이 아파요. 그래도 빗 속을 뛰어가는 쪽을 택한다면 웃을 수 있으니까 달려보는 거지요.



나는요,

자전거를 타고 강을 따라 달리는 시간을 사랑해요. 단순하게 반복하는 동작으로 앞에 놓인 길을 향해 나아가죠.  때로는 산 고개를 넘어갈 때도 있어요. 온 힘을 모두 써서 허벅지를 쥐어짜는데, 그 때는 앞을 보지 않아요. 고개를 숙이고 페달을 돌리는 내 발만 봐요. 그리고 박자를 맞춰 숨을 쉬면서 주문을 외워요. “결국, 헉헉!! 내리막 길이, 헉헉!! 나온다, 헉헉!!” 주문을 백 번쯤 외우면 정상에 올라가요. 그리고 허벅지를 쉬게 해주는 내리막이 펼쳐집니다. 두 발을 페달에서 떼고 바람을 가르며 즐기는 시간이 시작된 거죠. 어떤 때는 예상하지 못하는 눈과 비가 내려요. 우박도 맞아봤어요. 헬멧을 두들기면서 하늘에서 뭔가 계속 내려올 때, ‘왜 난 이 고생을 사서하고 있는지’ 계속 질문하면서 앞으로 갑니다. 아! 온 몸이 축축하게 젖었는데 신기하게도 슬프지는 않은 거예요. 언젠가는 마른 몸이 다시 햇살을 누빌테니까! 길 위에서, 두 바퀴 사이에서, 차가운 안장 위에서, 떠오른 많은 생각들이 내가 당하고 있는 상황에 머물러있지 않도록 이끌어 주었다고 믿어요.



요조님!

키우던 고양이에게 손가락 물린 친구의 투정을 귀여워하다가, <죽은 자의 집 청소>를 하고 있는 작가의 시를 경청했다는,   복잡한 아픔들을 들여다보는 당신의 이야기를 읽으니 또 지난 나를 돌아보게 되네요. 두 삶 모두 우리를 둘러싼 일들이고, 한편은 우리가 다 파악하기 어려운 먼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마음이라고 했죠. 나는 30대를 그러지 못했어요. 내 속만 들여다보고, 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마흔이 넘어 자전거를 타고 세상을 돌아다니고 난 후 우물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다양한 책을 읽은 후 쉰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남들의 목소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눈이 늙어 돋보기 도수는 높아지고, 병을 앓은 귀가 조금씩 청력을 잃어가는 중인데 말이죠. 나는 젊음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을 부러워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스스로 찾아가며 몸으로 사귐을 깨달아가고, 관계를 맺어가며 깨우쳐가는 직업은 나이의 젊음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징그럽고 외롭고 고독한 삶의 대목'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죽고 싶을 만큼 매일같이 겪는 불평등과 차별들, 아무리 좋게 말해도 듣지 않고 변하지 않아 결국 얼굴이 꾸깃꾸깃 구겨진 채로 거리에 나온 노동자들과 여성들, 장애인들, 그 밖의 약자들. … 무엇이 당신의 얼굴이 이렇게 구겨지도록 만들었는지를 묻는 것. 최대한 자주 그 구겨진 얼굴을 따라 옆에 서는 것, 책방을 운영하면서 힘들고 귀하게 배운 태도이다.



요조님!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책방을 운영하는 고생을 하며 소중한 마음을 배우고 있다니 감히 기특하다는 말로 응원을 보냅니다. “자신이 묽은 사람인 동시에 아주 미숙한 인격을 가졌다”고 겸손하게 채식 생활을 실천하는 당신은, 강하지만 부드러워 시원하게 넘어가는 봄바람 같네요. 실패는 ‘햇살이 가득하지만 바람이 부는 날의 라이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습니다. 요즘 날씨가 그렇거든요. 햇살에 부서지는 나뭇잎에 설레어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여지없이 맞바람을 만나 곤혹을 치루는. 그럴 때는 허벅지가 터지지 않게 천천히 바퀴를 굴러가면 되요. 마지막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다가 첫 나비를 만날지도 몰라요.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면 더 좋겠지요.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로 고개를 젖히고 새털 구름을 바라보는 사이, 바람이 흐르는 땀을 씻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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