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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륜 Jul 28. 2021

왜 우리는 언제나 너무 늦게 사랑하는 걸까

사랑의 기억 / 김진영


길 위에서 라이더들은 자신의 모습을 흘리고 다닌다.

내 앞에 가는 할아버지는 자전거에 스피커를 달아놓고 흘러나오는 트롯트 음악에 맞춰 느긋하게 페달을 돌리고 있다. 무릎을 좌우로 적당히 벌리고 핸들에 몸을 기대느라 어깨가 솟아있는 폼이 허벅지 근육 따위 생각하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동네 산책을 나온 듯 보인다. 나는 기어를 바꾸고 빠르게 추월한다. 맞은 편 길에서 힙합 리듬이 점점 크게 다가온다. 로드 바이크를 탄 근육청년이 젊음의 열기를 뿜으며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 아이들 자전거까지 끌고 나온 가족들과 바구니에 봉제인형 같은 강아지를 넣고 달리는 사람들까지. 휴일 오후 하천 길을 따라서 다양한 인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삶이 앞으로 계속 굴러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보이는 시간.


봄날의 오후는 살아있는 것들로 가득해 서럽다.

꽃잎이 흩날리는 햇살 속을 달리면서 생명의 시작과 끝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작년 산수유 새싹이 올라올 즈음 시아버지는 병석에 누웠고, 계절이 돌고 또 돌았다. 주인 없는 빈 집 창 밖으로 단풍은 화려하게 물들어갔다. 밤새 쌓인 함박눈이 소리 없이 녹아 내리던 겨울아침, 시아버지는 마지막 호흡을 내쉬었다. 죽음이 바퀴가 회전하듯 점점 다가왔어도 가족들은 이별이 낯설었다. 봄빛이 겨울의 흔적을 지워버렸지만 내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은 눈물의 아지랑이 너머로 본 시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이었다. 내 마음을 아는 듯 지인이 보낸 한 권의 책이 도착했다. 이제 고인이 된 철학자 김진영의 『사랑의 기억』. 그가 20여 년 전 독일 유학 시절에 쓴 아포리즘 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떠난 지 2년 반이 되어가는 남편을 기억하는 아내의 글이 실렸다.


젊은 철학자는 일기장 위에 아우 잃은 슬픔을 흘려놓는다.

우울증으로 공부를 중단하고 귀국해서 일 년째 투병 중이던, 그 해 추석을 기억해낸다. 그가 익사한 듯한 낮잠에서 깨어날 때, 방문을 열고 들어온 아우. “형, 밖으로 나와. 햇빛이 너무 좋아.”  새파란 하늘이 너무 현란해서 죽고 싶었던 그와, 생명의 환희가 담긴 대추를 따던 동생. 그 날 형제에게 남은 시간은 비밀처럼 감추어져 있었다. 암은 활달하던 젊은 아우를 띠 두른 사진틀 속 죽음으로 가둬놓았다. 형의 상실감은 꿈으로, 빈 의자로, 불면의 밤을 지난 새벽녁으로 그려진다. 어떤 날은 조금 긴 시처럼, 어떤 날은 네 개의 단어로 짧게 쓰여졌다. 느닷없는 질문이 가슴에 찍힌다. “왜 우리는 언제나 너무 늦게 사랑하는 걸까.”  나는 한 장을 쉽게 넘기지 못하고 행간 사이에 잠시 머물며 내 마음을 끼워가며 느릿느릿 읽었다. 눈물 흘리지 않아도 이미 울고 있다.


누군가의 죽음에 전혀 익숙하지 않던 내가 결혼 후 시부모님의 마지막 모습을 십 년 사이로 지켜보았다. 아픈지 일주일 만에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황망했던 새벽도, 오랫동안 누워계신 시아버지의 마지막 아침도, 한 순간에 사라진 생명은 갑자기 멈춘 회전 같다. 다시 움직일 수 없는 박제된 바퀴. 철학자는 한 줄로 정의한다.


 삶, 살 만해지면 너무 조금 남아 있는 것  

이제 남겨진 자에게는 사랑의 기억뿐이다. 그의 또 다른 한 줄이 기억을 진하게 칠한다.


흔적, 지울수록 더 또렷해지는 것.  

이제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었던 두 사랑의 흔적을 내 삶에 품고 살아가야 한다.


아름다운 것은 모두가 ‘먼 것’이다. 너무도 가까운 것. 그러나 소유할 수는 없는 것. 그것만이 아름답게 멀다.  

사랑의 기억이 아름다운 것은 멀기 때문이구나.


지난 밤 아우의 꿈에 시달렸던 철학자는 젊은 아빠여서 다행인 시간으로 다시 돌아온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걷는 산책. 꼬물거리는 손의 간지러움으로 행복하다. 잠깐 꽃을 흔들고 풀을 만지고 돌을 주웠다가 다시 개울에 던지는  방향을 잊어버리지 않는 자유로운 길이다. 봄날 자전거 위에 앉은 이들도 저마다의 길에서 삶을 회전하고 있다. 작은 하천 사이로 흔한 풀꽃들이 무성하고 버드나무가 흔들거리는 동네. 두 바퀴를 굴리는 페달 위 발바닥의 단조로운 움직임. 살아있는 그들이 흘려놓은 흔적은 너무나 당연해서 아름답다. 사소한 삶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때에야 사랑스러운 기억으로 추억된다. 생생하고 싱그러웠던 순간들을 가장 깊은 곳에 감추어 놓았다가 가슴 시린 어두운 밤에 조심스레 꺼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겨울 찬 바람 속에서 봄볕의 따스함을 그리워하듯이.


철학자 김진영의 글은 시보다 단단하고 노래보다 아름답다. 첫 사랑을 추억하는 글을 읽으며 나는 몰래 탄식을 하고 말았다.


… 첫 사랑의 순간 속으로 추락했다…
그 바보 같은 순간 추락의 놀라운 가벼움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 텅 비임의 가벼움. 혹은 가벼움이라는 이름의 아연한 중력. …
그러나 그 봄날의 놀라운 가벼움을 나는 두 번 다시 체험할 수 없었다. 그 누군가가 또 있어 나의 모든 것이 다 빠져나갔어도 그 첫사랑의 기억만은 마지막까지 내 몸 속에 남아 있었으니까.  

죽음의 그림자에 애통하던 마음이 첫 사랑의 가벼움을 떠올리며 위로 받는다. 사랑의 기억은 우리를 봄볕으로 슬쩍 밀어준다. 봄은 불면의 밤에 깊은 망각 속으로 숨었던 철학자를 조용히 부푸는 기쁨으로 발걸음이 들뜨게 만든다.


봄, 두 개의 세계 안에 산다는 은밀한 기쁨.
  

오후의 햇살이 따가워질 즈음 맞바람을 만났다. 새 잎이 무성해진 나뭇가지가 멋지게 반짝거렸지만 굴러가는 나의 두 바퀴는 초라해졌다. 허벅지를 높이 들어보지만 무릎에 힘이 빠져 앞으로 가기가 쉽지 않다. 보이지 않는 바람은 언제나 나를 이긴다. 느려진 자전거 위에서 나는 이 하천 길을 매일 걸었던 시아버지의 가버린 봄날을 떠올린다. 굳어지고 있는 다리를 지팡이에 의지하며 생명의 소중함 위를 내딛던 노인의 시간. 길 위에 시아버지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 사랑이 내 가슴에 봄빛으로 남았다. 해가 서쪽 산에 걸쳐 능선을 빛낼 때 집으로 돌아왔다.





덧붙임
위의 글은 <월간길벗> 6월호를 위해 쓰여졌습니다. 폭염 중에 이 글을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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