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크 한글학교 이야기.
2023-2024년 학기는 2023년 9월 16일 토요일에 개강하였다.
막 2년 차로 접어드는 우리 학교는 재외동포학생 열한 명을 바듯하게 맞추어서 매주 토요일 오전마다 한국어와 한국문화 수업을 한다. 지난해에 프랑스 지방정부 내무부 법률행정처에 어소시에이션 등록을 하고 파리에 있는 프랑스한국교육원에도 한글학교인가신청을 넣었으나, 프랑스 쪽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당해 공식 인가룰 받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다시 서류를 꾸려서 스페인 한국대사관 측에 재신청을 하고 공식 인가를 지난 2023년 10월에 드디어(!) 받았다. 바스크나라는 스페인 동북쪽과 프랑스 서남쪽 국경에 걸쳐 있는 굉장히 자그마한 땅이다. 여기서 쓰는 언어는 현지에서는 에우스케라 Euskara라고 불리는 바스크어, 그리고 스페인령에서는 스페인어가 공용으로, 프랑스령에서는 프랑스어가 공용으로 쓰인다. 우리 한글학교는 스페인령 바스크나라에 있는 작은 도시의 주민센터에 자리를 잡았다.
이 도시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 Camino de Santiago로 불리는 순례길이 통과하는 곳이기도 해서 가끔씩 커다란 조가비를 큰 배낭에 붙이고 걷는 순례자를 만나기도 한다. 차로 15분 거리에 미식과 영화로 유명한 휴양도시 도노스티아-산 세바스티안 Donostia- San Sebastian 이 있다.
내가 이곳에 깃들어 산 지는 햇수로 16년째. 바스크나라의 한 연구소에서 일하는 남편 때문에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 2 년, 길어야 3 년 이렇게 생각했으나, 사람 일이 마음 같이 되지는 않는 법. 30대를 오롯이 임신, 육아로 가열차게 보낸 나는 원래 했던 일들-미술관 노동자- 과 멀어졌다. 생각과는 달리 체류기간이 길어지는 동안, 나는 소개로 띄엄띄엄 알음알음했던 한국어 교사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다행히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았고, 아마도 이 일은 길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글학교의 재외동포 제자들 외에도, 나에게는 현지인들 제자가 열 명 남짓 있다. 그들에게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나도 또한 그들에게 배우는 바가 있고, 그들 덕분에 생각과 삶의 지평을 넓히는 경험을 하곤 한다.
바야흐로 한국어가 '핫'한 시대가 되었다. 외국에서 십수 년을 사는 동안 벌어진 이 놀라운 일 덕분에 나의 소득이 소박하게나마 생기는 감사함 이외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자 또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소회는 벅참과 기쁨, 그리고 걱정까지 여러 층위를 넘나 든다. 이 "흐름"이 과연 언제까지 또 얼마만큼 지속될까 하고.
잔 생각이 많은 성격이라, 늘 조심한다. 내가 하는 말, 행동을 자체 검열한다. 사실 한국어, 한국문화, 더 나아가서 한국 자체에 대한 이들의 관심이 고맙지만 또 무서운 일임을 늘 되새긴다.
자, 이제 교안을 짜야한다. 아이들은 성인들보다 가르치는데 공이 더 든다.
글을 써보아야지, 그래야 흩어지는 일상을 글자로 모두어 가둘 수 있을 테니. 그냥 흘려보내면 없던 일처럼 되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두서없이 시작했다. 부디 이 일이 지속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