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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Sep 20. 2022

통일의 전제 조건

세상통합

철학이나 과학이 하고자 하는 목표는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이 크든 작든 어떤 통일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자연을 논하든 인간사회를 논하든 논리적으로 통일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쉽지 않다. 통일적 법칙이 발견되려면 그 현상에 대하여 이해가 우선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해가 전제된 상황이라고 해서 통일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전 학문을 하나의 법칙 아래 포섭한다는 시도 자체는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 될 듯하다. 이해는 많은 시간 동안 그것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발전을 꾀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학문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선대 학자들의 연구가 방대한 양으로 존재해서 학문 통일의 퍼즐을 풀 수 있도록 상황이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통일을 위한 모든 여건이 만들어졌다고 누구나 학문 통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는 마치 뉴턴이 발견한 중력 법칙이 도출될 만큼 여러 진실의 조각이 다 마련된 당시의 상황이라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뉴턴이니까 가능했던 것이겠고 아리스토텔레스이므로 가능했을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통일의 전제 조건은 무엇일까? 자연 현상이든 인간사회이든 세상은 항상 변한다. 지구상의 어떤 것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한다. 떨어지는 물체나 애가 커서 어른이 되는 것이나 나무로 의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등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런데 변화(또는 운동)는 정적 상태(정지)를 전제로 한다.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정지 상태가 어떤지를 먼저 이해하여야 한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밀레투스학파는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따졌다. 만물이 물, 공기 또는 아페이온으로 되었건 그들의 질문은 정적이다. 만물 구성의 근본 물질에 관한 의문은 자연을 통일적으로 보려는 첫걸음이다. 전기나 열 현상 등 자연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서 정적인 상태에서의 이해가 먼저 수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정지 상태에서의 상황을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간과 공간이 균질한 특정 상태의 정지를 먼저 아는 것은 현상 이해로 나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만물의 구성 물질은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내고 이들은 변화한다. 강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것처럼 세상 모든 것 또한 변한다. 설령 만물이 그 무엇으로 되어있어도 그 질문 자체로는 자연이나 인간에 대한 올바른 답을 구할 수는 없다. 그것들의 변화한다는 사실에 준거하여 변화를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철학이건 과학이건 무엇을 이해하기 위하여 항상 정적 상태의 담론을 먼저 사유하거나 탐구했다. 정지가 이해되었으면 이를 바탕으로 변화의 이해로 들어간다. 정지를 마탕으로 변화가 이해되고서야 통일을 구축할 수 있다.


단계는 철학이든 물리학이든 비슷하겠지만 물리학에서 한 가지 예를 들여다보자. 19세기에 이루어진 전기와 자기 현상에 대한 이해는 정지와 운동의 순차적 이해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이다. 18세기 중반에 전기를 모으는 장치인 라이덴병이 발명되고 병 안에 축적된 전기를 이용하여 전기에 대한 여러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양과 음의 두 종류의 전기는 많은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전기는 서로 밀치고 다른 전기는 서로 끌어당기고 전기의 양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모두 다르다. 전하 사이에 미치는 힘 또한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18세기 말에 쿨롱이 발견한 법칙은 두 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두 전하의 양에 비례하고 그것들 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여 만유인력의 법칙을 닮았다. 그런데 쿨롱의 법칙은 두 개의 전하가 정지해 있는 상태에서 전하 사이에 미치는 힘의 법칙이다. 라이덴병은 정지해 있는 전기를 모아 놓은 도구였으므로 병에서 방출되는 전하는 일정 시간 동안 도선 등에 전기를 흐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방전되곤 했다. 전기를 지속해서 흐르게 할 수 없었던 라이덴병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정전기의 성질만을 알 수 있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쿨롱의 법칙은 정전기 연구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기념 법칙이 되었다. 사람들은 전기를 지속해서 공급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즉, 정전기의 이해로 말미암아 다음 단계로서 전기가 흐르는 상태에서의 현상 탐구가 중요했다. 


1800년에 전기를 지속해서 흐르게 하는 전지가 발명되었다. 전지의 발명은 전기 현상의 이해에 기폭제가 되었다. 전지는 흐르는 전기인 전류에 관한 연구를 촉발하였고 전류는 단위 시간당 전하의 흐름으로 규정되었다. 전하의 운동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낳았다. 전류가 흐르면 반드시 자기장이 유도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전기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없다. 전하가 시간에 따라 변하면 자기가 유도된다. 전류가 자기를 유도하는 법칙이 앙페르의 법칙이다. 앙페르의 법칙이 알려진 지 20년 후인 1831년에 이와는 반대 현상이 발견되었다. 즉,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기장이 전류를 유도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패러데이 법칙의 발견은 전기와 자기가 독립적이 아니라 서로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함의하고 있었다. 이처럼 전기와 자기의 변화에 대한 일련의 이해는 정지 상태의 전기 및 자기 현상의 이해를 전제로 한다. 정지가 이해되지 않거나 정지가 먼저 화두가 되지 않고 변화가 선행하는 일은 없다.


전기로부터 자기를 생성하고 역으로 자기로부터 전기가 생성되므로 전기장과 자기장을 통일시키려는 노력이 전개되었다. 맥스웰에 의해 완성된 전자기 방정식은 두 개의 정적 방정식과 뚜 다른 두 개의 동적 방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전기와 정자기, 전류와 자기장, 자기장으로부터 전기가 유도되는 방정식들이다. 맥스웰방정식은 물리학에서 힘을 통일하여 이룬 최초의 통일장 이론이다. 미래에 다른 힘을 통일하리라는 희망은 커져만 갔다. 그런데 정지와 운동의 선행 관계는 철학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미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도 정지, 운동 및 통일은 뚜렷이 나타난다. 인간과 자연 모두를 통일적으로 학문화한 인물이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의 놀라운 연구 결과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고 지난 200여 년 동안 밀레투스학파로부터 플라톤까지의 놀라운 성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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